시-시조·신문.카페 등 236

[2030 플라자] 의사가 치료할 수 없는, 病보다 아픈 삶

[2030 플라자] 의사가 치료할 수 없는, 病보다 아픈 삶 “퇴원하겠다” 고집하던 할머니, 알고 보니 청소 일 잘릴까 걱정 때문 의사는 치료에 전념하는 환자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분 더 많더라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입력 2022.05.26 03:00 그림=이철원 인턴 시절 병원은 내게 직장이자 삶의 공간이었다. 항상 수술복에 의사 명찰을 걸고 의사의 자아로 살았다. 병원은 대체로 의사 중심으로 돌아간다. 의사가 오더를 내면 다른 직종이 수행하고, 환자는 의사 스케줄에 맞추어 진료를 받거나 수술대에 오른다. 효율적 시스템이지만 의사는 병원의 많은 일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기 쉽다. 당시는 외과 인턴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회진과 브리핑에 참석한 뒤 수술방에 들어가거나 병동 일을 했다...

[자작나무 숲] 백학의 노래

[자작나무 숲] 백학의 노래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2.05.24 03:00 그림=이철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워낙 긴 소설이다 보니 ‘전쟁’은 건너뛰고 ‘평화’만 읽는다는 농담도 있다. 하지만 전쟁 이야기가 의외로 재미있음을 실제 독자들은 잘 안다. 가령 주인공 안드레이 공작이 치명상을 입고 하늘을 바라보는 대목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뒤로 쓰러진 안드레이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직전의 전투 장면이 아닌 드높은 하늘이다. 무한한 하늘은 전쟁의 덧없음을 깨우쳐준다. ‘참으로 조용하고, 평온하고, 장엄하다…. 우리가 뛰고 소리치고 싸우던 것과는 다르구나. 적의와 공포에 불타는 얼굴로 프랑스인과 포수가 서로 장전봉을 잡아당기던 것과는 전혀 다르구나. 저 높고 끝없는 하늘에서 구름은..

[최영미의 어떤 시] [63] 서시(序詩)

[최영미의 어떤 시] [63] 서시(序詩)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2.03.28 00:00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이성복(1952~) 내가 읽은 서시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서시. 시집 ‘남해 금산’의 첫머리에 나오는 시인데, 젊은 날 이성복 시인의 날카로운 감수성과 순수한 열정이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냥 그렇고 그런 상투적인 표현이 거의 없고, 쉬운 듯 ..

[백영옥의 말과 글] [242] 전쟁의 얼굴

[백영옥의 말과 글] [242] 전쟁의 얼굴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2.03.05 00:00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일까? 평화라는 말은 너무 거대하다. 나는 전쟁의 반대편에 있는 건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빼앗아 가는 건 소박한 식사 한 끼와 차 한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는 저녁 시간 같은 것이다. 이런 사소한 빼앗김이 모여 결국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생지옥이 전쟁이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었다.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우크라이나 태생이고 벨라루스에서 활동했던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부터 전쟁은 남자의 일이었다. 그것은 승리의 영웅 서사였고, 치욕의 패배에 대한 복수의 서사였다. 하지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그..

[김지수의 서정시대] 영혼까지 끌어모아 ‘숫자’에 올인하는 이들에게

[김지수의 서정시대] 영혼까지 끌어모아 ‘숫자’에 올인하는 이들에게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2.02.10 03:00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뉴노멀의 시간을 통과하기 위해 ‘어른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인생의 마지막 쿼터(75~100세)를 살면서도 지적 폭발과 인격의 성장을 멈추지 않는 어른들에게선 지혜의 광휘가 일렁인다. 최근에 특히 네 어른 말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 이어령 전 장관과 103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 프랑스의 대문호 파스칼 브뤼크네르와 영국의 경영 사상가 찰스 핸디가 그들이다. /일러스트=이철원 나는 이 중 세 사람을 인터뷰했고, 한 분은 책으로 만났다. 이어령 선생과는 사계절을 함께하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삶과 죽음에..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우리는 행복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우리는 행복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두 팔 잃은 남성과 시각장애인 친구, 서로 도와 민둥산을 숲으로 바꿔 샴쌍둥이 남매 로리와 조지는 분리 수술 뿌리치고 “이대로 행복해” ‘장애를 이겨낸 사람들’ 수식은 진부… 위대한 불굴의 정신에 감동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2.02.08 03:00 중국 허베이성 시골에 사는 50대 남자 자원치는 세 살 때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밝은 성격을 타고난 그는 장애인 예술단에서 발가락으로 붓글씨를 쓰며 살았다. 그가 15년 전 아픈 아버지를 돌보러 고향에 돌아왔을 때, 어릴 적 친구인 자하이샤는 1년 전 채석장에서 사고를 당해 두 눈을 잃은 상태였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부양할 수 없게 된 하이샤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만 생각..

꽃을 든 아이 - 어떤 졸업식

꽃을 든 아이 - 어떤 졸업식 배창환 사랑하는 아이야, 꽃을 든 네 사진 보니 눈물이 난다 활짝 웃는 네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눈물도 있다 미뤄 둔 시간이 있고 유예된 시간이 있다 고통을 건너 온 구겨진 길이 있다 그 길들이 우우 달려들어 네 머리칼 쥐어뜯듯이 달려들어 웅크리고 겁에 질린, 너를 낳았구나 꽃덩이 같던 네 얼굴엔 벌써 굵고 깊은 물살이 기어 다닌다 죽음의 긴 터널을 헤쳐 건너 온 네 품에 안긴 붉은 꽃 한 송이,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 들린다 수고했어, 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야 이제 겨우 한 고비 건넜을 뿐이야 시인소개 배창환은 1955년 경북 성주 출생하여 경북대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1 ‘세계의 문학’에 작품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분단시대’ 동인 활동을 했으며, 시집 ‘..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소망식당, 4000원의 행복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소망식당, 4000원의 행복 한 그릇에 4000원 우거짓국 팔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팔순 부부 하루 매상 2만원 안 될 때 많지만 “내일이 있잖여요, 내일이!” 비가 멎기를, 바람이 자기를 기다려 해를 보는 것이 소망이지요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입력 2022.01.25 03:00 한강 철교를 지난 열차가 영등포를 지나 남쪽으로 내달렸다. 꽝꽝 얼어붙은 하늘이 시리도록 파랬다. 도시의 속살은 낡고 추레했다. TV에선 스토킹 살해범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들녘에 쌓인 잔설을 보다 깜박 졸았다 싶더니, 어느새 열차가 대전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내린 게 언제였던가. 그날 사람들은 대합실 TV 앞에 모여 있었다. 뒤통수에 ‘구루프’를 달고 출근한 재판관은 작지만 또렷한 ..

한솥밥[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31〉

한솥밥[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31〉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2-01-22 03:00업데이트 2022-01-22 03:0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기껏 싸준 도시락을 남편은 가끔씩 산에다 놓아준다/산새들이 와서 먹고 너구리가 와서 먹는다는 도시락 애써 싸준 것을 아깝게 왜 버리냐/핀잔을 주다가/내가 차려준 밥상을 손톱만 한 위장 속에 그득 담고/하늘을 나는 새들을 생각한다 내가 몇 시간이고 불리고 익혀서 해준 밥이/날갯죽지 근육이 되고/새끼들 적실 너구리 젖이 된다는 생각이/밥물처럼 번지는 이 밤 은하수 물결이 잔잔히 고이는/어둠 아래/둥그런 등 맞대고/나누는 한솥밥이 다디달다 ―문성해(1963∼) 추위라고 해서 다 같은 추위는 아니다. 배가 고프면 더 춥다. 학교도 유튜브도..

[백영옥의 말과 글] [236] 어른의 시간

[백영옥의 말과 글] [236] 어른의 시간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2.01.22 00:00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영영 나잇값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어린 나이에도 어른스러운 사람이 존재한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됐다고 느낄까. 생각해보면 내게 그런 순간은 2002년 여름에 찾아왔다. 국민 모두가 열광하던 한일 월드컵. 내게는 끝내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 있었다. 골을 넣고 열광하던 한국 선수의 얼굴이 아니라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얼굴로 자신의 실책을 괴로워하는 한 선수의 얼굴이었다. 호아킨 산체스.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나는 그 스페인 선수의 이름을 아직 기억한다. 그 후,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사각지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렸고, 읽을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