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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242] 전쟁의 얼굴

최만섭 2022. 3. 5. 17:07
 
[백영옥의 말과 글] [242] 전쟁의 얼굴
입력 2022.03.05 00:00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일까? 평화라는 말은 너무 거대하다. 나는 전쟁의 반대편에 있는 건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빼앗아 가는 건 소박한 식사 한 끼와 차 한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는 저녁 시간 같은 것이다. 이런 사소한 빼앗김이 모여 결국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생지옥이 전쟁이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었다.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우크라이나 태생이고 벨라루스에서 활동했던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부터 전쟁은 남자의 일이었다. 그것은 승리의 영웅 서사였고, 치욕의 패배에 대한 복수의 서사였다. 하지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그런 서사는 없다.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다. 이 책은 일명 목소리 소설(Novel of Voice)로 전쟁에 참가한 여성 200여 명 이야기를 모았다. 2차 세계 대전에는 여성이 100만명 이상 참전했는데, 10대 소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간호병과뿐 아니라 정찰병, 탱크병, 비행기 조종사 등 남성 병사와 똑같이 총칼을 들고 싸웠다. 그들도 똑같이 죽고 죽여야만 하는 전쟁의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

 

전쟁에 자원 입대하는 날에도 사탕을 산 소녀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살점이 붉은 고기가 걸린 시장에 다니지 못하는 여인, 너무 어린 나이에 전쟁에 참가해 전쟁 중에도 키가 자라고, 생리를 했다고 고백하는 여인, 처음 사람을 죽이고 엉엉 운 소녀 이야기가 책에는 가득하다.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총을 든 미스 우크라이나와 자원 입대한 수많은 여성 사진을 보며 이들이 감당해야 할지 모를 비극의 무게에 가슴이 미어졌다. 전쟁에서 비싸거나 싼 죽음은 없다. 평론가 이현우의 말처럼 전쟁은 결코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