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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 백학의 노래

최만섭 2022. 5. 24. 05:14

[자작나무 숲] 백학의 노래

입력 2022.05.24 03:00
 
 
 
 
 
그림=이철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워낙 긴 소설이다 보니 ‘전쟁’은 건너뛰고 ‘평화’만 읽는다는 농담도 있다. 하지만 전쟁 이야기가 의외로 재미있음을 실제 독자들은 잘 안다. 가령 주인공 안드레이 공작이 치명상을 입고 하늘을 바라보는 대목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뒤로 쓰러진 안드레이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직전의 전투 장면이 아닌 드높은 하늘이다.

무한한 하늘은 전쟁의 덧없음을 깨우쳐준다. ‘참으로 조용하고, 평온하고, 장엄하다…. 우리가 뛰고 소리치고 싸우던 것과는 다르구나. 적의와 공포에 불타는 얼굴로 프랑스인과 포수가 서로 장전봉을 잡아당기던 것과는 전혀 다르구나. 저 높고 끝없는 하늘에서 구름은 전혀 다르게 흐르는구나. 전에는 왜 저 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 캅카스와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많은 소설을 썼다. 작품 하나하나가 전쟁의 심리학(혹은 사회학) 교본인 동시에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대주제의 망원경이다. 크림의 세바스토폴 방어전을 기록한 ‘세바스토폴 이야기’는 특히 오늘의 우크라이나 사태와 겹쳐져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러시아가 프랑스-영국 동맹군에 항전하다 퇴각하고 마는 뼈아픈 역사 현장에 스물여섯 살 청년 장교 톨스토이가 도착한다.

처음엔 영웅적 애국심으로 피가 끓지만, 고통과 죽음의 현장을 목도한 후에는 의문에 다다른다. 대체 무엇이 악의 표정이고 무엇이 선의 표정인가? 누가 악인이고 누가 영웅인가? 한편으론 이런 기발한 발상도 해본다. 교전 중인 양편의 병사 한 명씩만 남기고 다 돌려보내면 안 될까? 8만 대 8만 병력이 싸우는 것과 일대일 대표로 싸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후자가 더 인도적이고, 따라서 더 합리적 아닌가?

톨스토이 말년의 반전론은 전쟁의 역설에서 진화한 것이다. 진실은 우렁찬 군악대 연주, 위풍당당한 행진, 엄숙한 전사자 장례식, 십자가 훈장, 연금 따위의 껍데기 아래 깊숙이 감춰져 있다. 그것이 이른바 ‘불편한 진실’이다. 자신이 쓰고 있는 전쟁 이야기의 주인공은 ‘진실’이라고 대작가는 말했다. 벨라루스의 2015년 노벨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아연 소년들’이라는 전쟁 보도 소설에서도 인용한 말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죽어간 병사들 유족과, 죽음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 자신의 목소리는 전승 기념일 행사나 기념비, ‘불멸의 횃불’ 등이 과시하는 위엄과 동떨어진 막장의 진실을 증언한다.

 

제목 ‘아연 소년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우선 전사자들이 아연으로 만든 관에 담겨 고향에 돌아왔고, 게다가 그들이 아직은 ‘소년’이었다는 말이다. 러시아 징병 제도에 따르면, 18~27세 남성은 1년 병역 의무를 지니며, 17세에 신체검사를 거쳐 18세부터 입영 통지를 받는다. 놀라운 것은 2021년 징집 대상 120만명 중 최종 입대자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어느 한 해가 아니라 대체로 그렇다. 그만큼 면제받는 일이 많고(일례로 대학생 자동 면제), 또 그만큼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얘기다.

미안한 말이지만, ‘잘난’ 청년은 징집당하지 않는다. 가난하고, 교육 수준 낮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덜 건강한 변방 청년들이 군에 간다. 더 나은 미래가 없으면, 1년 의무 기간 이후에도 군에 남는다. 30년 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그러했듯,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사자 상당수가 다게스탄, 부랴트, 칼므이크 등의 소수민족이거나 머나먼 시골 지방 출신인 것은 그 때문이다. 전쟁터의 하늘을 올려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그저 살고 싶었어요.” ‘아연 소년들’에 나오는 한 징집병의 고백이다. 사실 톨스토이는 성숙한 귀족 장교의 내면을 보여주었을 뿐, 일반 병사가 하늘에 대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미처 그려내지 못했다. 그러나 알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 그들은, 총알받이로 죽어가던 힘없는 ‘소년’들은, 마지막 순간 하늘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다게스탄 출신 시인 라술 감자토프가 죽은 병사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민족어로 쓴 전쟁시가 있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피에 젖은 벌판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은

대지에 쓰러진 것이 아니라

하얀 학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라고.

그들은 아직도 그곳을

날며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자주, 서글프게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잊는 것이다….’

 

이 시에 멜로디를 붙인 것이 바로 1990년대 드라마 ‘모래시계’ 주제곡 ‘백학(Zhuravli)’이다. 오늘의 나를 만든 노래이기도 하다. 더없는 슬픔과 아픔이 나를 러시아 문학 세계로 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