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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4〉

안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4〉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1-02-27 03:00수정 2021-02-27 04:05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글씨작게글씨크게 공유하기닫기 잘 지냈나요? 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 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 ―윤진화(1974∼ ) ‘시는 왜 좋은가.’ 이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게 내 직업이다. 그래서 늘 시를 생각하지만 시가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세상도, 연인도 싫어질 때가 있는데 시..

[백영옥의 말과 글] [195] 10년이 지난 후

[백영옥의 말과 글] [195] 10년이 지난 후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1.04.10 00:00 | 수정 2021.04.10 00:00 올초부터 개정판 작업을 하고 있다. 10년 전쯤의 책이니 원고는 그 이전부터 썼던 것이다. 원고를 고치며 10년의 세월을 통과한 몸과 마음, 특히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로 완고하게 낡아갔고, 다른 한편 유연하게 성숙해졌다. 개정(改正)이라는 말은 바르게 고친다는 뜻이다. 과연 원고를 10년 만에 고치며 살펴보니, 내 생각 이외에 세상의 기준 또한 많이 달라져, 고쳐야 할 것이 많았다. 그렇다고 당시 내가 품었던 생각이 틀렸던 건 아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변화에 가까웠고, 나아가 그 세상의 시공간을 통과한 내..

[백영옥의 말과 글] [194] 눈빛과 말귀

[백영옥의 말과 글] [194] 눈빛과 말귀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1.04.03 00:00 | 수정 2021.04.03 00:00 코로나 때문에 은행이나 관공서 어딜 가나 투명 아크릴과 유리 칸막이를 볼 수 있다. 문득 ‘마음사전’에서 읽은 유리에 관한 문장이 떠올랐다. 시인은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다고 말한다.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하는 아크릴 또한 그렇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군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홀로 고립될까 두려워한다. 가까이 하면 아프고 멀리하면 외로운 고슴도치의 딜레마 같다. 창 너머 은행원의 설명을 듣고, 카페에 앉아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깨닫게 된 게 있다. 서로..

[최영미의 어떤 시] [14] 독을 품은 나무

오피니언 [최영미의 어떤 시] [14] 독을 품은 나무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1.04.05 00:00 | 수정 2021.04.05 00:00 나는 내 친구에게 화가 났어; 친구에게 분노를 말했더니 분노가 사라졌지. 나는 나의 적에게 화가 났지만; 말하지 못해 분노가 자라났지. 그래서 무서워 나의 분노에 물을 주었지 밤에도 낮에도 눈물을 뿌렸지 (중략) 낮에도 밤에도 (분노의) 나무가 자라서 밝은 사과 한 알이 맺혔어. 나의 적이 빛나는 사과를 보더니, 그게 내 것임을 알아차렸지 뭐야. 밤의 장막이 드리워졌을 때, 그는 내 정원에 몰래 들어왔지; 다음 날 아침, 나무 아래 뻗어있는 나의 적을 발견하곤 아주 기뻤지. -윌리엄 블레이크 (1757-1827) 귀여우면서 무시무시한 노래. 영어로 ..

[백영옥의 말과 글] [193] 헤밍웨이와 정주영의 시간

[백영옥의 말과 글] [193] 헤밍웨이와 정주영의 시간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1.03.27 03:00 | 수정 2021.03.27 00:00 최근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고 정주영 회장이 일곱 시 조찬 모임에서 만난 사람에게 건넨 말이었다. “저는 이게 세 번째 식사입니다.” 일어나기도 힘든 그 시간에 이미 세 번의 식사를 마친 사람의 삶이 나로선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오래전 ‘일곱 시 조찬 모임’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긴 제목의 소설을 썼지만, 나는 아침 일곱 시에 잠들 수 있을지언정,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올빼미형 인간으로, 밤새 대단한 글을 쓴 것 같았는데 대낮에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던 때였다. 동생에게 흥미로운 얘길 들었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증권회사 상무,..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18] 봄의 시샘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18] 봄의 시샘 최재천 교수 입력 2021.03.23 03:00 | 수정 2021.03.23 03:00 봄비가 내린 지난 12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의 거리에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목련 나무 아래로 우산 쓴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목련이 피면 꼭 비가 온다. 마당에 늠름한 목련 나무가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십수 년 동안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봄비가 내리고 그 비를 따라 하얀 목련 꽃비가 내렸다. 털북숭이 꽃봉오리 속에서 늦겨울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고 백옥같이 흰 꽃잎을 펼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봄비가 내린다. 그리 대단하게 퍼붓는 것도 아니건만 빗방울이 듣자마자 거의 자진해서 꽃잎을 떨구는 듯 보인다. 과학자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저 하늘에 계신 누..

[아무튼, 주말] 사슴처럼 고아한 그를 그리다... 편집국서 꽃핀 브로맨스

[아무튼, 주말] 사슴처럼 고아한 그를 그리다... 편집국서 꽃핀 브로맨스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 ②시인 백석과 삽화가 정현웅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 입력 2021.03.13 03:00 | 수정 2021.03.13 03:00 1938년 3월 호 '여성'에 실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정현웅 그림이 실려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에는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서 살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한국인이라면 거의 다 아는 시, 백석(1912~1996)의 ‘나와 나타샤..

[최영미의 어떤 시] [10] 3월에게(Dear March)

[최영미의 어떤 시] [10] 3월에게(Dear March)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1.03.07 17:36 | 수정 2021.03.08 03:00 3월아, 어서 들어와! 널 보니 얼마나 기쁜지! 전부터 너를 찾았었지 모자는 여기 내려 놔-(중략) 오, 3월아, 나랑 어서 2층으로 올라가자 너한테 할 말이 아주 많아! (중략) 누가 문을 두드리니? 어머 4월이잖아! 어서 문을 닫아! 나는 쫓기지 않을 거야! 일년 동안 밖에 나가 있던 사람이 내가 널 맞이하느라 바쁠 때 날 부르네 하지만 네가 오자마자, 하찮은 것들은 정말 하찮아 보여 비난도 칭찬만큼이나 소중하고 칭찬도 비난처럼 대수롭지 않지.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 3월처럼 발랄한 시. 편지 첫머리..

[아무튼, 줌마] 테너 박인수가 사랑한 트로트

[아무튼, 줌마] 테너 박인수가 사랑한 트로트 [아무튼, 주말]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입력 2021.02.20 04:08 | 수정 2021.02.20 04:08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설 전, 테너 박인수 선생을 만났습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로 시작하는 노래 ‘향수’를 이동원과 듀엣으로 불러 큰 사랑을 받은 키 크고 잘생긴 그분 맞습니다. 9년 전 인터뷰한 뒤 가끔 안부를 여쭙다 오랜만에 뵈었는데 여든 넘은 연치에도 첫 일성이 우렁찹니다. “거짓말하는 대법원장 때문에 요즘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미스트롯 덕분에 그냥저냥 위로받고 삽니다.” 성악가도 트로트를 듣느냐고 물었더니 “그럼요” 합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오라 소렌토로’부터 ‘울려고 내가 왔던가’까지 폭넓게 흥얼거리셔서 아주 익숙하죠. 지..

[東語西話] 영원히 변치 않는 선비의 절개, 百世淸風

[東語西話] 영원히 변치 않는 선비의 절개, 百世淸風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입력 2021.02.19 03:32 | 수정 2021.02.19 03:32 /일러스트=이철원 이 땅에서 내로라하는 유력 가문의 서원과 종갓집 그리고 정자를 공부 삼아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언젠가 경북 안동에 있는 학봉종택을 찾았을 때 필자의 사가(私家) 중시조 어른인 대소헌 조종도(1537~1597) 할아버지(이하 모두 존칭 생략)에 관한 기록을 만난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남의 집에 잘못 배달된 우리 집 편지를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손에 쥔 느낌이랄까? 절집으로 출가한 이후 잊었던 우리 가문의 흔적도 가끔 찾아봐야겠다는 사명감이 마음 한구석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그때가 2019년 2월이었으니 두 해 만에 스스로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