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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18] 봄의 시샘

최만섭 2021. 3. 23. 05:13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18] 봄의 시샘

최재천 교수

입력 2021.03.23 03:00 | 수정 2021.03.23 03:00

 

 

 

 

 

봄비가 내린 지난 12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의 거리에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목련 나무 아래로 우산 쓴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목련이 피면 꼭 비가 온다. 마당에 늠름한 목련 나무가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십수 년 동안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봄비가 내리고 그 비를 따라 하얀 목련 꽃비가 내렸다. 털북숭이 꽃봉오리 속에서 늦겨울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고 백옥같이 흰 꽃잎을 펼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봄비가 내린다. 그리 대단하게 퍼붓는 것도 아니건만 빗방울이 듣자마자 거의 자진해서 꽃잎을 떨구는 듯 보인다. 과학자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저 하늘에 계신 누군가가 활짝 핀 목련을 몹시 시샘하는 듯싶다.

 

절기상 춘분 앞뒤로 본래 비가 자주 오는 편이고 공교롭게도 그 무렵에 목련이 꽃을 피울 뿐이다. 너무도 불행한 우연의 일치라 이토록 환경과 엇박자를 내는 까닭이 혹여 그 옛날 우리 조상이 강제로 목련을 이 땅에 옮겨 심었기 때문일까 의심해보지만 목련은 동아시아가 원산지다. 아직 꿀벌도 나타나기 전인 백악기 중반부터 목련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그런데 목련은 왜 이토록 짧은 개화 시기를 감내하며 진화했을까?

 

세상에 목련만큼 허무한 꽃이 또 있을까 싶다. 목련 꽃잎은 나무에 붙어 있을 때는 더할 수 없이 희고 곱지만 땅에 떨어지면 흡사 비닐 자락처럼 추적추적 바닥에 들러붙는다. 보기에도 곱지 않을뿐더러 쓸어내려 빗질을 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는 목련을 가리켜 뒤끝이 좋지 않은 식물이라며 투덜거린다. 어쩌다 북한은 그 많은 꽃 중에서 하필이면 목련을 국화로 삼았을까?

 

그런가 하면 가수 양희은은 목련 꽃을 보며 애틋한 옛사랑을 떠올린다. ‘하얀 목련’에서 그는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고 노래한다. 600여 목련 품종이 한데 어우러진 천리포 수목원에서는 지금쯤 얼마나 많은 옛사랑의 그림자가 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