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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아버지의 마음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아버지의 마음 동아일보 입력 2015-09-04 03:00수정 2015-09-04 11:14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글씨작게글씨크게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1913∼1975)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콩알 하나[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6〉

콩알 하나[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6〉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1-05-22 03:00수정 2021-05-22 03:15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글씨작게글씨크게 누가 흘렸을까 막내딸을 찾아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 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까 역전 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 들어 도회지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 이랑에 깊숙이 깊숙이 심어 주었다 그때 사방 팔방에서 저녁 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준태(1948∼) 에로스의 연인 이름은 프시케다. 그리스어로 그녀의 이름은 ‘영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생명’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렇다면 생명은 영혼과 마찬가지로 쉽게 볼 수 없겠구나. 생명은 나비처럼 아름답지만 쉽..

[東語西話] 서울 종로 거리가 탑골공원에 진 빚

[東語西話] 서울 종로 거리가 탑골공원에 진 빚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입력 2021.05.21 03:00 문화거리 인사동 길을 산책 삼아 걸었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 무렵이면 달아 놓는 연등들은 전통거리의 운치를 한껏 더해준다. 하지만 이런 문화유산의 혜택을 누리는 것도 역으로 계산하면 옛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유산이란 보존 전승해야 할 책임이 뒤따르는 까닭이다. 연등축제는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했고 2020년 12월 16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신라 이래 천년 이상 내려온 문화유산에 대한 의무를 후손들이 힘을 모아 일정 부분 갚은 것이라고 하겠다. /일러스트=이철원 인사동(仁寺洞)은 인근 몇 개 마을이 합해지면서 대표 격 동네 이름의 머리글자를 딴..

[백영옥의 말과 글] [200] 기념일 단상

[백영옥의 말과 글] [200] 기념일 단상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1.05.15 00:00 | 수정 2021.05.15 00:00 제주도 우도에 가면‘빨강머리 앤의 집’이 있다. 최근 이곳을 방문한 백영옥이“최대한 앤과 비슷하게 꾸미고”사진을 찍었다. 기념일을 잘 챙기지 못한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은 물론 출판 기념 행사도 거의 해본 기억이 없다. 내 생일도 동생이나 친구의 축하 메시지를 받고 알 정도니 말을 말자. 덕분에 “200회니까 떡 해야겠네”라는 엄마의 말이 무슨 소리인가 했다. 얘기인즉 내가 이 칼럼을 연재한 회차가 200회란 소리였다. 그걸 일일이 다 세고 있었냐고 되물었다가 퉁박을 들은 건, 칼럼 제목 앞에 붙은 숫자를 최근에야 알아봤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숫자에 무관심한 사람이구나 싶..

[백영옥의 말과 글] [200] 기념일 단상

[백영옥의 말과 글] [200] 기념일 단상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1.05.15 03:00 | 수정 2021.05.15 03:00 기념일을 잘 챙기지 못한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은 물론 출판기념 행사도 거의 해본 기억이 없다. 내 생일도 동생이나 친구의 축하 메시지를 받고 알 정도니 말을 말자. 덕분에 “200회니까 떡 해야겠네”라는 엄마의 말이 무슨 소리인가 했다. 얘기인즉 내가 이 칼럼을 연재한 회차가 200회란 소리였다. 그걸 일일이 다 세고 있었느냐고 되물었다가 통박을 들은 건, 칼럼 제목 앞에 붙은 숫자를 최근에야 알아봤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숫자에 무관심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조선일보 2021년 5월 15일자에 나온 200회 칼럼 지면. 얼마 전 남편에게 “김치 껍데기 좀 줘!”라고 말했다..

[자작나무 숲] 그때의 잣대로 지금을 잴 수 없다

[자작나무 숲] 그때의 잣대로 지금을 잴 수 없다 시대에 짓눌렸던 90년대 젊은이들, ‘행복’ 말하는 것도 사치였는데 성공보다 낙오않는게 절실한 지금 20대, 사소할수록 더 ‘공정’ 따져 대의보다 ‘소확행’, 위선 대신 ‘쿨함’… 젊음의 화두는 젊은이들 것 김진영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1.05.13 03:00 | 수정 2021.05.13 03:00 오래전 교수들 사이에서 오가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젊었을 땐 아는 거 모르는 거 다 가르치고, 그다음엔 아는 것만 가르치고, 그다음엔 필요한 것만 가르치고, 맨 나중엔 기억나는 것만 가르친다는 얘기였다. 나이 든 분들이 킬킬 웃으며 얘기할 때, 젊은 나는 옆에서 멋모르고 따라 웃었다. 옛날 강의록이나 강의 계획서를 보면, 선배 교수들이 나눴던..

[백영옥의 말과 글] [199] 코로나 시대의 집

[백영옥의 말과 글] [199] 코로나 시대의 집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1.05.08 00:00 | 수정 2021.05.08 00:00 코로나 자가 격리자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화상 플랫폼인 ‘줌’으로 진행됐지만 봄의 창밖 풍경에 비해 참가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집에만 있으니 우울하다는 말은 공통의 호소였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집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가전제품이 인테리어화됐고, 안전상의 이유로 홈 파티가 뜨면서 밀키트나 다양한 식재료에 대한 수요도 폭증했다. 흥미로운 건 늘어난 체류 시간만큼 집이 좁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1.6배 늘었는데, 그 말인 즉 집이 1.6배 더 작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동일본 대지진..

우리들의 할머니[이정향의 오후 3시]

우리들의 할머니[이정향의 오후 3시] 이정향 영화감독 입력 2021-04-21 03:00수정 2021-04-21 09:51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글씨작게글씨크게 집으로 이정향 영화감독 일곱 살 상우는 철없는 도시의 꼬마입니다. 상우의 엄마는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던 고향 집을 찾아와 말 못 하는 외할머니에게 상우를 맡깁니다. 상우에게는 할머니를 비롯해 모든 게 못마땅한 산골 생활이지만, 말없는 할머니의 사랑에 녹아들어 계절이 끝날 무렵 상우의 마음은 훌쩍 자라납니다. 서투른 작별 인사 후 상우는 엄마의 집으로, 할머니는 빈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이 둘이 향한 곳은 둘이 가꾼 마음의 집이겠지요. 칼럼을 맡을 때 제 영화를 소개하는 몰염치한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했기에, 양해를 구합니다. 주인공 김을분 할..

분위기로, 하루 견디려… 커피 없었다면 밤은 얼마나 길었을까

분위기로, 하루 견디려… 커피 없었다면 밤은 얼마나 길었을까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21.04.27 03:00 | 수정 2021.04.27 03:00 바흐가 만든 음악 중에 ‘커피 칸타타’가 있다. 나는 커피를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이 음악을 듣는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커피를 찬양하는 이 음악은 이렇게 시작한다. “조용히, 잡담을 멈추세요. 떠들지 마시고요. 지금 일어나는 일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이렇게 이야기하며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처럼 바람을 잡는 화자가 먼저 나오고, 곧이어 아버지와 딸이 등장한다. 아버지에게는 고민이 있다. 딸이 커피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 아무리 커피를 그만 마시라고 말려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며 속상해한다. “네가 커피를..

빈 뜰[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1〉

빈 뜰[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1〉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1-04-17 03:00수정 2021-04-17 03:07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글씨작게글씨크게 꽃도 이젠 떨어지니 뜰은 사뭇 빈뜰이겠지. 빈뜰에 내려앉는 꽃잎 바람에 날려가고 한뼘 심장이 허허해지면 우린 잘못을 지나 어떤 죄라도 벌하지 말까. 저 빈뜰에 한 그루 꽃이 없어도 여전한 햇빛 ​ - 빈 뜰, 이탄(1940∼2010) ​ 바우만이라는 철학자는 오늘날의 우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각자 자신의 보호막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이런 현대인의 특징은 공허함이다. 인터넷 세계는 넓어졌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확장되었지만 접속이 끊기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공허하다. 공허하니까 접속하고, 접속할수록 다시 공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