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187

[박종인의 땅의 歷史] ‘나라 절반이 역적이 돼 버렸나이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나라 절반이 역적이 돼 버렸나이다’ 265. 1728년 이인좌의 난과 도래한 노론 천하 경기도 안성에 있는 낙원역사공원에는 안성 곳곳에서 모아온 공덕비들이 서 있다. 1728년 남인과 급진 소론의 반란인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조선국 사로도순무사 오공 안성 토적 송공비’도 있다. 이인좌의 난은 영조의 정통성에 반기를 들고 노론 장기 집권을 타도하려던 반란이었다. 영조와 정조 정권은 이 난 평정을 기념하는 비석을 곳곳에 세웠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7.14 03:00 전국에 흩어져 있는 토역(討逆) 기념비 경기도 안성 낙원동에 있는 공원 이름은 안성낙원역사공원이다. 이곳에는 안성 도처에서 가져온 각종 공덕비가 모여 있다. 공원 한 켠 관리실 옆에는 부러진 팔을 ..

역사 2021.07.14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5] 종교·신념 강요한 왕의 일방통행… 군대도 딸도 등돌렸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5] 종교·신념 강요한 왕의 일방통행… 군대도 딸도 등돌렸다 [17세기 영국 명예혁명] [상] 민심 거스른 국왕… 자리에서 쫓겨나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07.13 03:00 1688년 11월 5일,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 윌리엄(William·네덜란드어로는 빌럼 Willem)이 2만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도버 해협을 건너 토베이(Torbay)에 상륙했다. 이제 그는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2세를 공격하기 위해 런던으로 진격할 준비를 마쳤다. 사실 제임스 2세는 장인이었다. 어떻게 하다가 사위가 군대를 이끌고 장인을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졌을까? 의회 승인으로 왕좌에… 영국 윌리엄 3세 대관식 - 1689년 4월 11일 영국 상원(House of Lord..

역사 2021.07.13

사흘연속 1000명대…이르면 내일부터 수도권 '3인 금지'

사흘연속 1000명대…이르면 내일부터 수도권 '3인 금지' [중앙일보] 입력 2021.07.09 00:05 수정 2021.07.09 01:19 PDF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 기자 이에스더 기자 김민욱 기자 황수연 기자 SNS 공유 및 댓글SNS 클릭 수5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SNS 공유 더보기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8일 역대 최고치인 1275명을 기록했다. 4차 유행 진입을 공식화한 방역 당국은 이런 추세라면 2주 뒤에는 하루 확진자가 214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새 거리두기 4단계를 적용키로 하고 막바지 조율 중이다. 현재는 기존 거리두기 2단계다. 김부겸 “방역 고비”…오늘 대책 발표 4단계+α , 유흥업..

역사 2021.07.09

[박종인의 땅의 歷史] 만취한 임금이 죄인 머리를 깃대에 매달라 명하였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만취한 임금이 죄인 머리를 깃대에 매달라 명하였다 264. 1755년 남대문에서 폭발한 영조의 광기(狂氣) 서울 숭례문 아래 홍예문 천정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용은 왕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한다. 영조 때는 이 남대문 앞에서 역적 처형식이 열리곤 했다. 1755년 여름에 벌어진 처형은 권력 콤플렉스와 정통성 시비에 시달리던 영조의 광기가 적나라하게 폭발한 사건이었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7.07 03:00 복잡다기한 영조의 콤플렉스 경종이 즉위하고 1년 두 달이 지난 1721년 8월, 당시 여당인 노론은 야밤에 궁으로 들어가 경종에게 “후사를 기대하지 말고 이복동생 연잉군을 왕세제로 택하라”고 요구했다. 경종은 그들 뜻대로 연잉군을 차기 왕으로 선택했다.(17..

역사 2021.07.07

‘임나일본부설’ 때문에 가야 파헤친 日[이한상의 비밀의 열쇠]

‘임나일본부설’ 때문에 가야 파헤친 日[이한상의 비밀의 열쇠]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입력 2021-07-06 03:00수정 2021-07-06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글씨작게글씨크게 1978년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왼쪽 사진). 단순함을 살린 전형적인 대가야 양식 관으로 꼽힌다. 위 사진은 지산동 고분 중 가장 큰 무덤으로 꼽히는 39호분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의 일부분. 사진 출처 국립경주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가야의 고도(古都)라 하면 흔히 경남 김해를 떠올린다.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능, 수로왕 탄생 신화가 스며 있는 구지봉, 궁궐터인 봉황대 등 곳곳에 자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가야 여러 나라 가운데 가..

역사 2021.07.06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14] 약속의 땅? 2000년만에 정착한 땅엔 물도 기름도 없었다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14] 약속의 땅? 2000년만에 정착한 땅엔 물도 기름도 없었다 척박한 환경 이겨낸 유대인들의 지혜와 끈기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입력 2021.07.06 03:00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30년 전부터 유대인들은 슬금슬금 가나안(팔레스타인)으로 모여들었다. 영국이 1차 대전이 끝나면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인 나라를 가나안에 세우도록 지원하겠다는 ‘밸푸어선언'을 1917년에 했기 때문이다. 이때 유대인들은 가장 먼저 그 땅에 대학부터 세웠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러시아 태생 생화학자이자 훗날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이 되는 하임 바이츠만은 세계를 돌며 자금을 모아 테크니온 공대와 히브리 대학을 설립, 각각 1924년과 1925년에 문을 열었다. 교육이 앞으로 탄생할 ..

역사 2021.07.06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4] 자신만이 정의라 믿은 독재자… 러시아 눈밭에서 신화는 끝났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4] 자신만이 정의라 믿은 독재자… 러시아 눈밭에서 신화는 끝났다 [나폴레옹 다시 보기] [下] 제국의 종말 주경철 교수 입력 2021.06.29 03:00 1811년경, 나폴레옹은 권력의 정점에 섰다. 유럽 대부분 지역이 같은 법률과 행정 체제를 따랐고, 모두 프랑스에 군 병력을 제공해야 했다. 2~3년 후 이 체제가 종말을 맞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제국 체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외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는 나라에서 민족 감정이 분출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한번 제국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 피압박 국가들이 곧장 저항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프랑스 내부적으로도 왕당파, 공화파, 가톨릭 세력 등 다양한..

역사 2021.06.29

목숨걸고 인민군 기밀 캔 인간지도..."난 그때 16세 소녀였다"

목숨걸고 인민군 기밀 캔 인간지도..."난 그때 16세 소녀였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25 05:00 PDF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 기자 김상진 기자 박용한 기자 SNS 공유 및 댓글SNS 클릭 수0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SNS 공유 더보기 "철조망을 넘고 지뢰밭을 건너고, 적진에 있으니 제일 무서운 건 아군 폭격이었어요." 6ㆍ25 전쟁 첩보전의 산증인인 심용해(86) 할머니는 70년 전 첫 임무의 그날을 힘겹게 떠올렸다. 16세 때 어머니 몰래 참전했다는 심 할머니는 10대 후반의 꽃다운 시절을 오롯이 전장에서 계급도 군번도 없이 유엔군을 지원하는 한국인 첩보원으로 살았다. [오늘 6·25 71주년] 6ㆍ25 첩보전 산증인 심용해 할머니 美 켈로부대원(KLO) 사..

역사 2021.06.25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세종이 명했다 “백성에게 폐가 되니 광화문에 월대를 만들지 말라”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세종이 명했다 “백성에게 폐가 되니 광화문에 월대를 만들지 말라” 263. 그때 광화문 앞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2021년 6월 21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있는 광화문이다. ‘역사 복원’을 명분으로 앞에 보이는 도로는 이르면 다음 달 ‘조선시대 광화문 월대(月臺)’ 복원 현장으로 바뀔 예정이다. 그 월대가 조선시대에 존재했는지도 불확실하고, 복원할 명분도 불확실하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6.23 03:00 “오랜 세월 역사 속에 잠들어 있었던 경복궁 앞 월대의 복원은 조선 시대 왕과 백성이 소통하고 화합하던 상징적 공간의 복원으로 그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다.”(서울시장 오세훈, 2021년 4월 27일 ‘긴급브리핑’) 현 서울시장이 말하는 ‘경복궁 앞 ..

역사 2021.06.23

교황을 들러리로 만든 나폴레옹, 유럽을 가족기업처럼 주물렀다

교황을 들러리로 만든 나폴레옹, 유럽을 가족기업처럼 주물렀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3] [나폴레옹 다시 보기] [중] 제국의 끝없는 전쟁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06.15 03:00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무력 팽창을 시도했다. 우선 프랑스혁명 중 상실한 식민 제국을 재건하겠다며 1801년 말에 처남 르클레르 장군이 지휘하는 2만명의 원정군을 카리브해의 생도맹그섬에 파견했다. 이 원정은 재앙으로 끝났다. 프랑스혁명 당시 해방되어 이미 자유의 맛을 알게 된 흑인들은 다시 노예제로 돌아가느니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여기에 가공할 만한 감염병인 황열병이 퍼져 엄청난 수의 프랑스군이 희생됐다. 결국 프랑스군은 항복하고 생도맹그는 1804년 1월 1일 세계 최초의 해방 노..

역사 2021.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