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안보여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최만섭 2018. 7. 2. 08:39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18] 앞이 안보여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입력 2018.07.02 03:09

칼럼 관련 일러스트

앞이 안보여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앞 못 보는 사람이 개울을 건너고 있다
지팡이로 판자 다리를 더듬으며
빠질 듯 빠질 듯 위태롭게 개울을 건너고 있다
나는 손에 땀을 쥔다 가슴이 죈다
꿈속에서처럼 가위 눌려 소리도 지르지 못한다

그러다 문득 나는 개울을 건너고 있는 것이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

앞이 안보여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빠질 듯 빠질 듯
위태롭게 개울을 건너고 있는 것이
우리들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안타깝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그 앞을

―신경림(1935~ )


침 맞을 일이 있던 어느 봄날입니다. 앞 못 보는 침술사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인사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꽃 한창이니 늦기 전에 꽃구경도 많이 다니고 하시라고. 그 구김 없이 개운한 마음씨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 못 보는 분들은 계절을 소리와 향기로 겪는다는 이야기도 같이 들었습니다.

엘리베이터 같은 데서
점자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의 눈은 어디 있는가? 심안(心眼)이란 무엇인가?

이 시는 '판자'로 엮은 위태로운 다리 위를 지팡이로 더듬어 걷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해줍니다. '손에 땀을 쥐고 가슴이 죄는 삶' 말입니다.

하루에 한 번 어김없이 어둠이 오고 앞이 흐려질 때 우리는 마음의 눈을 생각해야 하겠지요. 그 길을 더듬어 가야 하겠지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1/20180701013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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