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9.26 03:09
노력하면 된다는 허구적 신화 강요하는 교육은 정신적 폭력
지나치게 많은 대학·대학정원 부산물로 생겨나 사회적 문제
개개인 적성과 한계치 판단해 사회 적응시키는 제도 구축해야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의 어렸을 적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재능도 있었고 열심히 연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보다 어린 소녀가 자신이 흉내도 내지 못할 수준의 연주를 하는 것을 보고 원래 꿈을 접고 정치학자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잘 알려졌듯이 권투선수였다. 역시 어느 날 일본 챔피언의 스파링 경기를 보고는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자기의 재능이 꽃필 수 있는 인테리어와 건축가의 길로 진로를 틀었다. 두 사람이 원래 희망 분야를 추구했다면 미친 듯이 해도 라이스는 그저 그런 피아니스트, 다다오는 3류 복서가 됐을 것이다.
한국 교육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가 "하면 된다" 또는 "누구든 노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신화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아마도 교사가 학생에게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격려성 거짓말이고, 교사가 학부모에게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이 부족해서 성적이 안 좋다"는 안쓰러운 탄식이었을 것이다.
인간에겐 누구나 나름의 재능이 있고 노력을 통해 이를 최대한 계발해야 한다. 그러나 분야마다 개개인의 재능 편차는 실질적으로 엄청나게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우사인 볼트처럼 빨리 달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죽으라 노력해도 단거리 달리기에서 볼트의 수준 근처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떤 분야에서건 대성공을 하거나 큰 명성을 얻는 것은 타고난 재능과 거기에 걸맞은 노력이 결합했을 때인 경우가 많다. 큰 재능을 갖고 태어났어도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성공하지 못하거나 빨리 시들기 십상이다. 필자는 차범근 선수의 팬이었다. 책의 한 부분으로도 출간됐다. 차씨의 활약을 보면서 필자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허황한 꿈을 잠시 꿨었다. 아직도 나는 잠자리에서 꿈을 꾸며 가끔 이런 장면을 본다. 그라운드를 휘젓고 대포알 같은 슛을 쏘는 나의 모습을. 그러나 필자가 차 선수보다 훨씬 더 열심히 축구 연습에 매진했다 해도 이 분야에서 나의 최대 한계치는 실업 축구는커녕 조기 축구 수준이었을 것이다.
한국 교육은 특히 공부와 시험 잘 보기라는 분야에서 극한의 경쟁을 유도했다. 우리 교육은 아직도 과거제도라는 공평하지만 획일적 제도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잣대를 놓고 한 줄로 세우는 획일적 교육은 득도 있었지만 오류도 많았다. 그러면서 노력하면 다 된다는 허구적 신화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거대한 정신적 폭력의 도가니를 구축했다. 부산물로서 엄청나게 많은 대학과 대학 정원이 생겨났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의 큰 숙제가 됐다. 사회가 원하는 인재와 학교가 배출하는 인재가 판이한 미스매치가 일어났다. 기대 수준은 황당한 수준으로 폭발하는 상황에서 청년실업은 치솟는데 정작 산업 현장에는 일손이 없어 인력을 수입하는 기괴한 노동구조도 생겨났다.
영국의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은 원래 귀족 출신이었다. 그러나 중등교육에서 학업에 재능을 보이지 못해 대학 진학이 아닌 직장 생활을 권고받고, 고등학교 졸업 후 보육원 보조원과 같은 소박한 직업 생활을 하던 중 찰스 왕세자를 만나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려서부터 학생들의 적성과 재능을 평가해서 미리 진로를 나누고, 학생과 부모는 그것을 스스럼없이 택하는 교육체계는 다른 나라에서는 아주 보편적인 제도이다. 한국과 같은 정신세계였으면 "더 노력하면 되는데" "귀족(양반)이 대학을 못 가다니 창피하지도 않으냐" 같은 얘기를 들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 왕세자빈이 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던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이제 점차 낮아지고 있다. 대학 입학이 어려워져서가 아니라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입시라는 획일적 기준도 다소 완화돼서 다양한 분야에서 꿈을 펼치려는 분위기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필사적으로 추진해야 할 교육의 다변화, 대학과 대학 정원 감축, 더 나아가서 대학원의 대폭 감축 등은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입시와 입시 이외의 분야에서도 무조건 노력하면 된다는 신화를 걷어내고 사람 개개인의 적성과 그 한계치를 합리적으로 판단케 해서 사회에 적응시키는 분위기와 제도를 추구해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사회였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한국 교육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가 "하면 된다" 또는 "누구든 노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신화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아마도 교사가 학생에게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격려성 거짓말이고, 교사가 학부모에게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이 부족해서 성적이 안 좋다"는 안쓰러운 탄식이었을 것이다.
인간에겐 누구나 나름의 재능이 있고 노력을 통해 이를 최대한 계발해야 한다. 그러나 분야마다 개개인의 재능 편차는 실질적으로 엄청나게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우사인 볼트처럼 빨리 달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죽으라 노력해도 단거리 달리기에서 볼트의 수준 근처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떤 분야에서건 대성공을 하거나 큰 명성을 얻는 것은 타고난 재능과 거기에 걸맞은 노력이 결합했을 때인 경우가 많다. 큰 재능을 갖고 태어났어도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성공하지 못하거나 빨리 시들기 십상이다. 필자는 차범근 선수의 팬이었다. 책의 한 부분으로도 출간됐다. 차씨의 활약을 보면서 필자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허황한 꿈을 잠시 꿨었다. 아직도 나는 잠자리에서 꿈을 꾸며 가끔 이런 장면을 본다. 그라운드를 휘젓고 대포알 같은 슛을 쏘는 나의 모습을. 그러나 필자가 차 선수보다 훨씬 더 열심히 축구 연습에 매진했다 해도 이 분야에서 나의 최대 한계치는 실업 축구는커녕 조기 축구 수준이었을 것이다.
한국 교육은 특히 공부와 시험 잘 보기라는 분야에서 극한의 경쟁을 유도했다. 우리 교육은 아직도 과거제도라는 공평하지만 획일적 제도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잣대를 놓고 한 줄로 세우는 획일적 교육은 득도 있었지만 오류도 많았다. 그러면서 노력하면 다 된다는 허구적 신화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거대한 정신적 폭력의 도가니를 구축했다. 부산물로서 엄청나게 많은 대학과 대학 정원이 생겨났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의 큰 숙제가 됐다. 사회가 원하는 인재와 학교가 배출하는 인재가 판이한 미스매치가 일어났다. 기대 수준은 황당한 수준으로 폭발하는 상황에서 청년실업은 치솟는데 정작 산업 현장에는 일손이 없어 인력을 수입하는 기괴한 노동구조도 생겨났다.
영국의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은 원래 귀족 출신이었다. 그러나 중등교육에서 학업에 재능을 보이지 못해 대학 진학이 아닌 직장 생활을 권고받고, 고등학교 졸업 후 보육원 보조원과 같은 소박한 직업 생활을 하던 중 찰스 왕세자를 만나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려서부터 학생들의 적성과 재능을 평가해서 미리 진로를 나누고, 학생과 부모는 그것을 스스럼없이 택하는 교육체계는 다른 나라에서는 아주 보편적인 제도이다. 한국과 같은 정신세계였으면 "더 노력하면 되는데" "귀족(양반)이 대학을 못 가다니 창피하지도 않으냐" 같은 얘기를 들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 왕세자빈이 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던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이제 점차 낮아지고 있다. 대학 입학이 어려워져서가 아니라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입시라는 획일적 기준도 다소 완화돼서 다양한 분야에서 꿈을 펼치려는 분위기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필사적으로 추진해야 할 교육의 다변화, 대학과 대학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