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

[과학의 창] '상위 1%'는 없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최만섭 2016. 8. 4. 06:38
[과학의 창] '상위 1%'는 없다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 2016.08.03 03:03

해가 서쪽서 뜰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모두가 평균 이상'일 수는 없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없듯이 모든 면에서 1%인 사람도 없어
기준을 달리하면 누구나 99%… 누구도 타인을 업신여길 자유 없어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우리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 마을 여성들은 모두 강인하고, 남성들은 하나같이 다 잘생겼고,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다 평균 이상입니다." 미국의 라디오 드라마 '워비곤 호수'에 등장했던 말이다. 이 상상의 마을에 대한 위의 설명에서 재밌는 것이 바로 '아이들 모두가 평균 이상'이라는 부분이다.

키가 170㎝와 180㎝인 두 학생이 있다고 하자. 둘의 키 평균은 175㎝다. 당연히 한 학생은 평균보다 키가 작고 다른 학생은 크다. 만약 둘 모두 평균보다 키가 크다면, 키가 176㎝와 180㎝라는 얘길까. 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제 두 학생 키의 평균은 178㎝가 되어 여전히 176㎝인 학생은 평균보다 작다.

내일 아침 해가 서쪽에서 뜰 수는 있을지 몰라도, 아무리 상상의 마을이라도 아이들 모두가 평균 이상일 수는 절대로 없다. 서쪽에서 뜨는 해는 수학뿐 아니라 물리학의 법칙에도 위배되지 않지만 모두가 평균 이상인 마을은 네모난 삼각형처럼 논리적인 모순이기 때문이다. 평균보다 키가 큰 학생이 있으려면 누군가는 평균보다 키가 작아야 한다. 굳이 기준이 평균일 필요도 없다. 키가 상위 1%인 학생이 있으려면 그 아래로 키가 하위 99%에 속하는 대부분의 학생이 있어야 한다. 상위 1%의 존재 기반은 하위 99%다. 너무도 자명한 수학적 진리다.

우리나라에서 상위 1%인 사람은 오십만 명이다. 이들을 모아 그중 1%를 또 고르면 5000명이다. 우리나라에서 1%에 든 사람의 대부분은, 이제 이 5000명에서는 하위 99%다. 이렇게 1%를 고르는 과정을 몇 번만 반복하면 결국 우리나라에서 딱 1명을 고를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도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국가대표를 하나씩 모으면 또 1%가 아닌 99%다.

누구나 어른이 되면서 겸손을 배운다. 속마음과는 달리 남이 보기에만 겸손하게 행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려서는 주변을 둘러보아 자기가 좀 나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이와 함께 조금 더 넓어진 세상에서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반복해서 배운다. 나이와 함께 확장되는 것은 세계의 공간적인 규모만도 아니다. 다른 이를 보는 시선의 다양함도 함께 늘어난다. 누구는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 본받고 싶고, 또 누구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해 부럽다. 누구는 체력이 좋아 마라톤 풀코스를 뛰니 부럽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또 부럽다. 돈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는 사람을 봐도 당연히 부럽다. 그러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면에서 1%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는, 지구 전체에서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다 99%다.

사실 '워비곤 호수 효과'는 수학이 아니라 심리학이다. 평균 아래인 사람이 절반 정도는 될 텐데도 절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자기가 평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을 일컫는다. 절대다수의 회사원이 자신이 평균 직장인보다 더 성실히 일하고 있다고, 그리고 평균보다 더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교수들은 자기가 평균보다 더 잘 가르친다고, 평균보다 연구를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이 평균보다 더 낫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이유는 아마 진화심리학의 영역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진화를 통 해 사람은 다른 것도 배웠다.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말이다. 도대체 무슨 기준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몇 가지 기준에서 자기가 1%에 속한다고 정말로 믿을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이 자유가 99%를 업신여겨도 되는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좀 더 넓은 세계에서 다른 기준에서 보면 당연히 그도 결코 헤어날 수 없는 99%임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