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세계사를 쓰고 있다. 열 권 분량으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대충 계산해도 3, 4년은 기본으로 잡아먹는 작업이다. 얼마 전 생긴 버릇이 뭔가를 결정할 때 그게 남은 인생에서 차지하는 물리적인 비중을 따져보는 거다. 최소 10분의 1, 하루 비슷한 비율로 인체에 유입되는 물과 알코올 등 현재의 생활 태도를 감안할 때 그 이상도 될 수 있다.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출판사의 꼬임에 넘어가고 말았다.
"선생님 말고는 쓰실 분이 없습니다." 이런 식상한 설득이 아니었다. "이 책은 선생님처럼 공부 못한 분이 쓰셔야만 합니다." 아이 참, 이 사람들 어디를 찔러야 하는지 제대로 아네.못 해본 사람만이 왜 못 하는지를 안다. 학교 졸업하고 세계사 관련 책을 보면서 화가 났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걸 그렇게 재미없게 가르치다니. 수업 시간에 늘 궁금했다. 대체 프로이센은 뭐고 프러시아는 또 뭐지? 걸핏하면 로마를 위협했다는 파르티아는 대체 어디 붙어 있는 나라야? 지금은 없어졌거나 이름이 바뀐 나라라면 당연히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알아듣는다. 그리고 꼭 지도를 펴 놓고 그게 어디라고 찍어줘야 한다. 단 한 사람도 그러지 않았다. 그냥 외우라고만 했다. 물론 그렇게 외워서 이해하는 두뇌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대부분은 두뇌가 아니라 머리와 대가리 사이에 분포한다. 장담컨대 그런 식의 교육을 받은 학생 중 90%는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갔다는 거 말고는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을 것이다(내가 그랬다. 많이 추웠겠다, 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