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클래식 따라잡기] 트레비 분수·카타콤바… 관현악곡에 생생하게 담아냈죠

최만섭 2022. 4. 18. 05:17

[클래식 따라잡기] 트레비 분수·카타콤바… 관현악곡에 생생하게 담아냈죠

입력 : 2022.04.18 03:30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

 로마 3부작 중 ‘로마의 분수’에 등장하는 트레비 분수의 모습이에요. 전곡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금관악기들의 연주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답니다. /위키피디아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에서 지난 5일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탈리아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1879~1936)의 '로마 3부작' 마지막 순서를 연주했습니다. 올해 8월 말 만 4년간의 임기를 끝내는 예술감독이자 지휘자 마시모 차네티가 4년에 걸쳐 준비한 연주라고 하는데요.

로마 3부작은 인상주의 작곡가 레스피기의 대표작으로, 로마의 역사와 명소를 음악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관현악곡 시리즈입니다. 각각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로 구성돼 있죠. 연주를 들으면 마치 이탈리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답니다. 레스피기와 로마 3부작의 구성에 대해 알아볼까요?

관현악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곡가

레스피기는 음악가와 조각가 등을 배출한 볼로냐의 한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레스피기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는데, 어릴 적 그는 음악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요. 그가 음악 분야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건 8세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볼로냐 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190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정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수석 단원이 되는데요. 그곳에서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교수인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만나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1902년에는 독일 베를린으로 건너가 독일의 작곡가 막스 브루흐에게도 가르침을 받았어요.

레스피기는 1913년부터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의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그러다 1920년대 중반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미 대륙을 포함한 전 세계에 자신의 작품을 알리게 됩니다. 이탈리아 작곡가로는 특이하게 오페라보다 관현악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지요.

물방울이 피워낸 몽환적 움직임

로마 3부작 중 처음으로 완성된 작품은 '로마의 분수'로, 1917년 초연됐어요. 이 작품은 하늘로 솟아오르며 환상적인 모습으로 부서져 나가는 물방울의 몽환적인 움직임과 주변의 대저택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내고 있어요. 모두 4개의 분수가 등장하는데, 각 분수가 새벽부터 저녁까지 시간의 흐름으로 묘사됩니다.

첫 곡인 '새벽 줄리아 계곡의 분수'는 고요한 새벽녘 목동의 피리 소리와 소 떼의 모습, 그 위를 부드럽게 덮고 있는 안개를 그립니다. 둘째 곡인 '아침의 트리토네 분수'는 금관악기인 호른의 힘찬 신호와 함께 시작하는 즐거운 흐름의 곡인데요. 부드럽게 반짝이는 물방울의 모습을 가벼운 리듬으로 표현합니다.

셋째인 '한낮의 트레비 분수'는 전곡 중 가장 화려해요. 웅장한 느낌을 주는 금관악기들의 연주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듭니다. 마지막인 '황혼의 메디치 별장의 분수'에서는 밤을 맞이하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의 움직임 등을 하프와 첼레스타(피아노와 모양이 비슷한 소형 건반 악기)로 표현하며 조용한 마무리를 합니다.

관현악 음악의 가능성 시험해

3부작 가운데 가장 많이 연주되는 '로마의 소나무'는 1924년 겨울 초연됐습니다. 한곳에서 변치 않는 모습으로 로마의 영욕을 묵묵히 지켜본 소나무에 대한 감상이 주변 풍경 묘사, 역사 회고와 함께 들어가 있어요. 로마의 분수보다 타악기가 많이 사용됐고, 새소리를 녹음해 효과음을 주는 등 관현악 음향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어요.

로마의 분수와 마찬가지로 소나무 묘사로 곡이 진행되는데요. 첫 곡인 '보르게세 장원의 소나무'는 상쾌한 바람에 일렁이는 소나무 향을 맡으며 그 주변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명랑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음 곡인 '카타콤바의 소나무'에서는 분위기가 뒤바뀌는데요. 카타콤바는 고대 로마의 지하 무덤으로,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숨어들어 예배를 드린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곳 입구에 서 있는 소나무를 그려낸 작품으로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의 노랫소리를 담았습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엄숙하고 경건한 멜로디를 연주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죠.

다음 곡인 '자니콜로의 소나무'에서는 로마의 작은 언덕인 자니콜로에 서 있는 소나무를 그려내는데요. 소나무에 걸려 있는 달빛을 묘사해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한 새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가 인상적이죠. 마지막 곡인 '아피아가도의 소나무'는 찬란했던 고대 로마 제국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고대 로마 시대 동남쪽으로 뻗어 있던 소나무들의 모습을 담았지요. 로마로 향하는 용맹한 군인들의 행진이 점차 흥분을 고조시킵니다.

입체적인 구성의 로마의 축제

3부작 중 가장 늦게 완성된 '로마의 축제'는 1929년 유명 지휘자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뉴욕 필의 연주로 초연됐습니다. 오케스트라 음향 면에서 전작보다 한층 입체적인 구성이 돋보입니다. 위대한 로마의 역사를 음으로 그리려 했던 레스피기는 이 작품에서 로마의 오래된 풍물인 축제들을 소개했어요.

첫 곡 '치르센세스'는 거대한 원형 극장에서 열린 폭군 네로의 축제를 그립니다. 요란한 관악기들의 음향이 축제의 흥분을 더하고 굶주린 맹수들과 기독교인들의 비명, 군중의 함성이 함께 들려옵니다. 치르센세스는 서커스를 의미하는데요. 여기서 치르센세스는 네로 황제 시절 맹수를 풀어놓고 기독교인들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었어요. 둘째 곡 '일 주빌레오'는 50년마다 치러지는 로마 교회의 축제를 그립니다. 순례자들이 기도하며 로마의 마리오산에 오르는 모습을 장엄하게 묘사하고 있죠.

이어지는 '10월제'는 로마 근교에 모인 군중의 모습을 그립니다. 사냥 나팔 소리, 말들의 움직임, 낙천적인 지중해풍의 멜로디 등이 겹치면서 번갈아 나타나 흥을 올리다 사라집니다. 마지막 '주현절'은 예수가 세례받은 날을 축하하는 곡으로, 로마 나보나 광장에서 떠들썩하게 노는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여기저기 외치듯 노래하는 멜로디들과 왈츠·타란텔라 등의 춤곡들이 어지럽게 등장해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냅니다.
 ‘로마의 축제’ 중 마지막 곡인 ‘주현절’에 묘사된 로마 나보나 광장의 모습. /위키피디아
 3부작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로마의 소나무’에서는 카타콤바의 소나무가 등장해요. 카타콤바에서 예배드리는 기독교인들을 그린 그림이에요. /위키피디아
 기악곡을 많이 남긴 오토리노 레스피기. /위키피디아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