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세계서 가장 비싼 사진가, 스파이더맨을 찍다

최만섭 2022. 4. 14. 05:10

 

세계서 가장 비싼 사진가, 스파이더맨을 찍다

[獨 사진가 안드레아스거스키 단독 인터뷰]

입력 2022.04.14 03:01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수퍼히어로 연작 앞에서 한 여성이 스파이더맨을 바라보고 있다. 거스키는 “카메라를 갖고 다니지 않기에 마음에 드는 풍경을 본 뒤에는 ‘여기 다시 와서 촬영할 건가 말 건가’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한다”며 “보는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가장 충실한 이미지가 다가온다”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현실을 담지만, 현실은 아니다.

독일 사진가 안드레아스 거스키(67)는 흔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가’로 불린다. 현재 사진 낙찰가 상위 30위권에 그의 작품만 10점. 거스키가 카메라로 포착하는 장면은 분명 실존하는 풍경이지만 재현은 아니다. 쉽게 말해 그는 사진을 조작한다. 1992년부터 원근감을 없애거나 여러 컷을 하나로 재조직함으로써 현실의 가장 현실적인 면모를 드러내오고 있다. “사진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현실은 너무 복잡하고 사진은 그 세부만을 보여줄 수 있을 따름이다. 합성을 통해 나는 일종의 자유를 얻었다.”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을 여는 거스키가 본지 화상 인터뷰에서 말했다. 서울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그는 8월 14일까지 대표작 40여 점을 선보인다.

현재까지 사진 작품으로는 세계 최고 낙찰가 기록을 보유 중인 안드레아스 거스키 1999년작 '라인강 II'. /©2022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VG Bild-Kunst, Bonn
2018년 발표한 '라인강 III'. 가뭄으로 인해 색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Sprüth Magers

대표작 ‘라인강II’(1999)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0만달러(약 48억원)에 낙찰됐다. 역대 사진 작품 최고가였다. 도저한 강, 그는 이 풍경에서 강(江)이라는 핵심만 남겼다. “이 장면은 작업실에서 5분 거리, 내가 늘 조깅하는 곳에서 찍었다. 라인강은 독일 예술에서 매우 낭만적인 곳으로 그려지지만 내게는 그저 벌거벗은 곳이다. 같은 장소를 숱하게 촬영해 층을 쌓듯 겹치자 물·빛·공기로 이뤄진 강의 원형(原型)이 탄생했다. 사람도 나무도 없는 큰 강, 거칠지만 근본적인 요소만 남았다. 매우 독일적인 풍경이다.” 전시장에는 후속작 ‘라인강III’(2018)가 걸려있다. 전작과 달리 주변 수풀이 전부 메말랐다. “수십 년만의 극심한 가뭄으로 평소 볼 수 없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자연과 시간이 만든 이미지라 특별하다.”

사진가였던 할아버지·아버지에 이어 현대 사진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거스키의 또 다른 큰 특징은 사진의 규모다. 반복된 양식, 건축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조직된 풍경을 거대한 사이즈로 인화함으로써 보는 이를 압도하는 것이다. 2007년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촬영한 ‘프랑크푸르트’는 가로 크기만 5m가 넘는다. 아마존 물류센터(’아마존’), 대형마트(‘99센트’), 도심 아파트(‘파리, 몽파르나스’) 등의 시각적 부피는 역설적으로 규모를 구성하는 디테일에 주목하게 한다.

 
2007년 평양 방문 당시 '아리랑 축전'을 촬영한 사진 '평양 VI'. /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07년에는 평양에도 갔다. 공산국가 특유의 거대한 집단체조를 한 컷에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아리랑 축전’을 조감하려면 높은 위치가 필수였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난관이었다. 가장 높은 단상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곧 ‘김일성의 시선’을 의미하기에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스키는 “북한 예술감독에게 내 도록도 보여줘가면서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열심히 설명했다”며 “결국 일반적으로는 허락되지 않는 높은 공간에서의 촬영을 허락받았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평양’ 연작이 나왔다.

합성은 섞는 것이고, 회화와의 접목에 이어 대중문화까지 적극 껴안음으로써 사진은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2013년 작 ‘SH1′은 어느 분홍빛 해변을 촬영한 것이지만, 자세히 보면 마블 영화 속 ‘아이언맨’이 춤추는 수퍼히어로(SH) 연작이다. 2014년 작 ‘SH IV’는 도쿄의 메종 에르메스 빌딩을 배경으로 영화 속 ‘스파이더맨’과 그를 연기한 배우 토비 맥과이어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빌딩, 배우, 스파이더맨 슈트 모델을 따로 촬영해 합친 것이다. “평소 해오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주제지만 아내가 매우 좋아해 영향을 받았다”며 “다만 이들은 영화와는 다른 매우 멜랑콜릭한 분위기의 수퍼히어로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 물류회사 아마존의 대형 창고를 촬영한 기념비적 작품 '아마존'(2016). /Sprüth Magers

촬영 장비가 워낙 무거운 탓에 영감의 장소를 재방문해 촬영하는 편이지만, 요새는 아이폰이 도움을 주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수 있는 시대, 그가 후학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여러 장르를 만나며 끊임없이 인식과 취향을 경작하라”는 것이다. 더 이상 사진이 카메라 안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독일 출신 세계적 사진가 안드레아스 거스키. /Alexander Romey

1955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베허 부부로부터 유형학적 사진을 배웠다. 재현이 아닌 “머릿속 재건축”으로써의 합성 기술을 통해 사진의 새로운 확장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 등 세계 유수의 미술기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문화·라이프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