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명화 돋보기] 1658년 '세계도해'가 최초…꽃·동물 등 다양한 소재 사용

최만섭 2022. 4. 4. 05:24

[명화 돋보기] 1658년 '세계도해'가 최초…꽃·동물 등 다양한 소재 사용

입력 : 2022.04.04 03:30

어린이 그림책

 ①1882년 랜돌프 콜더컷이 낸 그림책 ‘헤이-디들-디들과 아기 침낭’에 나오는 한 장면이에요. 유리병과 그릇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고, 그사이를 틈타 숟가락과 접시가 몰래 부엌을 빠져나가고 있어요. ②동화작가이자 삽화가인 케이트 그리너웨이가 그림을 그린‘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1888)의 한 장면이에요. 그리너웨이는 꽃과 어린이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③월터 크레인은‘미녀와 야수’(1874) 동화에 꽃이 가득한 그림을 그려 넣었어요. ④비어트릭스 포터는 토끼 두 마리를 키우며 동물과 교감한 그림책 작가예요. 그가 그린‘피터 래빗 이야기’(1902)의 주인공 토끼인 피터랍니다. /위키피디아·이주은 제공
최근 우리나라의 이수지 작가가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가 주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그림 작가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어요. 한국인으로는 처음인데요. 안데르센상은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이에요. 덴마크 동화 작가 안데르센을 기념하고자 1956년 제정돼 격년제로 수여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림과 글이 같이 있는 '그림책'은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했을까요?

산업혁명 일어난 영국에서 발전

1200~1300년 전 서양의 중세 수도사들은 양피지에 손으로 정성껏 성서를 필사해 보관했어요. 성서 표지에 그림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글자 옆이나 책 가장자리에 성서 내용과 관련 있는 동물 그림과 식물 문양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어린이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펴낸 최초의 그림책은 1658년 체코 교육학자 코메니우스가 목판화로 찍어낸 '세계도해(그림으로 배우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시기에는 출판물 가격이 워낙 비쌌기 때문에 부유한 귀족 집안의 어린이들 외에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어요.

유럽에서는 산업 발전이 이뤄진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대량 인쇄물의 보급이 가능해졌는데요. 이 무렵 철학자들은 어린이 교육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점차 어린이를 어른과 구분해야 하는 특별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어요. 이런 배경에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도 다수 출간됐습니다.

그중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영국은 그림책 출판 분야에서도 앞서나갔는데요. 책 속에 그림을 간간이 곁들이는 방식의 '삽화 책' 전통이 강했던 영국은 일찌감치 그림책 확산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동식물이 사람처럼 행동하는 '우화'나 어린이가 주인공이 돼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의 그림책이 나오죠. 이 시기에 활동했던 거장의 작품을 살펴볼까요?

그림책의 아버지 콜더컷

〈작품 1〉은 1882년 랜돌프 콜더컷(1846 ~1886)이 낸 그림책 '헤이-디들-디들과 아기 침낭'에 나오는 한 장면이에요. 부엌에서 유리병과 그릇들이 음악 연주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고 있고, 그사이를 틈타서 숟가락과 접시가 몰래 부엌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콜더컷은 바깥에 나가지 못하고 온종일 방에서 지내곤 했어요. 다행히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방에만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어요. 매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흥미진진한 상상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으니까요. 콜더컷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움직임이 많고 활발한 편인데, 아마도 작가 자신이 아픈 날이 많아 맘껏 뛰어다니지 못했던 아쉬움을 그림으로 대신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콜더컷은 그림책에서 그림이 글을 보조하고 보완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가 그림만으로도 풍부한 상상이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콜더컷은 현대적인 의미의 그림책을 탄생시킨 '그림책의 아버지'라고 불리지요. 그를 기리고자 1938년에는 미국 어린이도서관협회(ALSC)에서 주관하는 '콜더컷상'이 만들어지기도 했답니다.

꽃·어린이 즐겨 그린 그리너웨이

〈작품 2〉는 영국의 대표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1812~1889)이 글을 쓰고 동화 작가이자 삽화가인 케이트 그리너웨이(1846~1901)가 그림을 그린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1888) 중 한 장면입니다. 피리 소리에 이끌려 동네 아이들이 모두 사나이를 따라가는 중이지요.

평소에 꽃과 어린이 그리기를 좋아하던 그리너웨이는 사랑스럽고 포근한 분위기의 크리스마스카드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1878년에 첫 창작 그림책 '창문 아래서'를 출판했는데, 스스로도 놀랄 만큼 호응이 좋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보다 좀 더 이른 1800년대의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의상을 입은 어린이들을 즐겨 그렸는데요. 그리너웨이가 리본 달린 드레스에 예쁜 모자를 쓰고 긴 장갑을 낀 소녀를 자신의 책에서 선보인 후 실제 당시 영국 독자 사이에서 복고풍의 아동복이 유행하기도 했다고 해요.

자연 연상되는 그림 그린 크레인

월터 크레인(1845~1915)은 '아름다운 책 만들기' 이상을 실천한 예술가입니다. 그는 미술공예 운동을 주창한 영국의 공예가이자 시인 윌리엄 모리스의 디자인 회사에서 일했는데요.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일어난 미술공예 운동은 "보기 싫은 인쇄물 등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개성 없는 물건들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해요. 수공예품처럼 손의 정성이 깃든 물건을 쓰면 삶이 행복해지고, 그렇게 행복해진 사람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더 나은 사회가 이뤄진다는 것이 미술공예 운동의 취지였죠.

〈작품 3〉은 크레인이 삽화를 그린 동화 '미녀와 야수'(1874)의 한 장면입니다. 모리스의 회사에서는 기계화된 도시의 생기 없는 모습을 비판하면서 꽃과 새 등 싱그러운 자연을 연상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천했어요. 그래서인지 이 그림의 배경에도 꽃이 가득하고, 미녀가 입은 노란 드레스 위에도 꽃무늬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지요.

토끼 키우며 동물과 교감한 포터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뛰어난 그림책 작가들이 많이 배출된 이유는 이처럼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중시했던 미술공예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덕분일 겁니다. 비어트릭스 포터(1866~1943)는 '벤저민'과 '피터'라는 이름의 토끼를 키우며 동물과 교감한 그림책 작가예요.

그는 피터를 데리고 여행하다가 가정교사의 어린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게 돼요. 아픈 소년을 위로하려고 그림책을 만들었는데, 이 책이 '피터 래빗 이야기'(1902)입니다. 〈작품 4〉에서 우리를 향해 몸을 세우고 있는 귀여운 토끼가 바로 주인공 피터예요. 이 책은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는데요. 이후 토끼 피터는 캐릭터 상표로 등록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가 됐어요. 120세의 나이로 여전히 우리 곁에서 뛰어놀고 있답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