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세일즈맨의 죽음

최만섭 2022. 2. 22. 05:07

[고전 이야기] 35년 가까이 성실하게 일했지만… 대공황에 무너진 평범한 회사원의 삶

입력 : 2022.02.22 03:30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세일즈맨의 죽음’(1966)의 한 장면. /위키피디아
저는 이 회사에서 34년을 봉직했는데 지금은 보험금조차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오렌지 속만 까먹고 껍질은 내다 버리실 참입니까. 사람은 과일 나부랭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젊은 세대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고, 중년 세대는 언제 직장에서 밀려날까 노심초사하죠. 1940년대 미국도 처지가 비슷했어요. 1920년대 후반 일어난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죠.

1949년 출간된 아서 밀러(1915~2005)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나오자마자 극찬받으며 토니상·뉴욕연극비평가상 등 주요 연극상을 휩쓸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연극계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도 받았어요. 지금도 전 세계 연극 무대에서 계속 공연되고 있고, 영화로도 수차례 만들어졌죠.

주인공 윌리 로먼은 35년 가까이 세일즈맨으로 성실하게 일해 마침내 자기 집과 차를 장만했어요. 두 아들 비프와 해피도 총명해서 부부는 행복만 계속될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노동량이 가중되면서 심신이 지쳤어요. 일한 만큼 수입이 늘어나지도 않았죠. 집과 차를 장만한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다달이 납입해야 할 돈은 생활고를 가중했어요.

끝내 대공황이 밀려왔고, 평생 땀의 대가만 믿고 산 윌리는 회사에서 해고당해요.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윌리가 견딜 수 있었던 건 두 아들 때문이었어요. 특히 큰아들 비프는 앞날이 기대되는 미식축구 선수로, 가고 싶은 대학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비프는 수학 과목에 낙제하면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지 못해요. 이후 비프는 물품 배송 등 30개 가까운 임시직을 전전하면서 서른네 살이 됐어요. 아버지 윌리가 해고되던 날 비프는 주당 28달러를 받으며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윌리는 이런 비프에게 훈계하다 아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회사에서 해고되었다는 절망감 등으로 큰 충격을 받은 윌리는 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해 대성공한 형 벤의 환영(幻影)과 마주하고, 2만달러의 사망 보험금만 받을 수 있으면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해요. 자신의 사망 보험금으로 가족에게 존재감을 보여주려고 한 거죠. 윌리는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다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여보. 오늘 주택 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그런데 이제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린다의 이런 쓸쓸한 독백으로 작품은 끝을 맺어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으려 분투하던 한 인간의 비극을 보여준 이 책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읽어야 할 고전임에 틀림없습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