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한삼희의 환경칼럼] ‘저질러진 기후 붕괴’ 아직 한참 남았다

최만섭 2021. 3. 10. 05:34

[한삼희의 환경칼럼] ‘저질러진 기후 붕괴’ 아직 한참 남았다

기후 시스템엔 熱관성
에너지 인프라도 수십 년 장기 수명
‘플러스 2도’ 도래는 거의 예정된 미래
온실가스 감축 못지 않게 재난적 상황 대비 필요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입력 2021.03.10 03:20 | 수정 2021.03.10 03:20

 

 

 

지난달 미국 텍사스 정전(停電) 사태는 기후 붕괴가 의표를 찌르는 형태로 나타난 경우다. 북극 온난화가 엉뚱하게 중위도 한파를 몰고 왔다. 그로 인해 최부강국 수백만 가구가 전기·물 공급이 끊겨 난민촌 상황처럼 돼버렸다. 발전 설비들이 내한(耐寒) 설계가 돼있지 않은 탓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인도 북부 히말라야에선 빙하 붕괴로 빚어진 계곡 홍수 때문에 200명이 실종됐다. 텍사스와 히말라야는 기후가 붕괴된 미래 지구에서 맞닥뜨릴 상황들을 보여줬다.

한파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2월 17일 주민들이 난방용 프로판 가스를 충전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 연합뉴스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州)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2월 7일 빙하가 붕괴한 뒤 빙하에 갇혀 있던 대량의 물이 수력 발전용 댐으로 유입되고 있다. / 연합뉴스

2050 탄소 중립’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純)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자는 것이다. 기온 상승치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섭씨 1.5도 아래로 유지해 기후 붕괴를 방지하자는 것이다.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한국만 해도 온실가스 배출이 지난 30년 사이 2.5배가 됐다. 그걸 어떻게 지금부터 꺾어 눌러 30년 뒤 배출량 제로로 만들겠는가. 산업화를 시작도 못 해본 개도국 인구가 전 세계 50억명이다. 선진국들이 했던 것처럼 싸고 풍부한 화석연료를 써서 경제를 성장시켜 보겠다는 그들의 욕망을 무슨 명분으로 억제하나.

게다가 기후 시스템은 ‘열(熱) 관성’을 갖는다. 온실가스 농도를 더 오르지 못하게 붙들어 맨다 하더라도 이미 대기 중에 축적된 온실가스의 가열 효과로 향후 수십 년은 기온이 더 상승할 수밖에 없다. 기후학자들은 그걸 가리켜 ‘저질러진 온난화(committed warming)’, 또는 ‘파이프라인 속에 남아 있는 온난화(warming in the pipeline)’라고 표현한다. 지금까지의 기온 상승치는 산업혁명 이전 대비 1.1도였다. 2015년 파리협정 체결 때 설정한 ‘1.5도 목표’까지 0.4도 남아 있다. 그러나 열 관성의 작용으로 0.3~0.6도의 추가 기온 상승은 피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경제 시스템 관성’도 있다. 독일 킬 대학 모집 라티프 교수는 거대 유조선의 항로 변경에 비유해 설명했다. 모터보트라면 순간순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유조선은 항로를 바꾸려면 장시간 준비가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 노력 역시 효과가 나타나려면 수십 년 소요된다. 선진국이라 해도 발전, 철강, 시멘트, 자동차 등 기존 인프라를 바꾸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한국도 대통령이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한 지 불과 넉 달 뒤 가덕도공항특별법이라는 황당한 선택을 했다. 개도국 석탄발전소들은 지은 지 평균 13년밖에 안 지났다. 가난한 나라들이 30년, 40년 수명이 남은 멀쩡한 설비를 뜯어내는 희생을 감수할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경제 시스템 관성 때문에 새롭게 추가될 수밖에 없는 온실가스의 작용력이 다시 0.5~0.7도 정도 된다는 것이다. 두 관성을 함께 고려한다면 ‘플러스 2도 세상’의 도래는 예정된 미래일 것이다.

 

1.1도 상승 상황에서 목격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플러스 2도의 세계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두렵다. 전 지구적 각성이 없다면 2100년까지는 3도 이상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렇지만 인간 사회는 미래에 벌어질지 모를 재난에 대비하는 데는 현명하지 못하다. 텍사스는 2011년에도 한파로 발전 설비 200곳이 멈춰서 100만 가구 전력 공급이 끊겼다. 그걸 겪고도 10년 만에 같은 일이 더 엄청난 규모로 되풀이됐다. 1912년 대서양 항로 운항에 나선 거대 여객선 타이태닉은 사고 당일 아침부터 밤까지 같은 항로를 지나는 다른 선박들로부터 여섯 차례나 ‘빙산이 떠다니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수신했지만 설계 최고 속도로 그냥 운항했다. 뒤늦게 빙산을 발견하고 방향을 틀었지만 항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충돌했다.

‘2도 상승’이 피하기 힘든 경로라면 그 결과에 대한 대비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은 물론 시급하다. 그와 병행해 재난 충격 흡수 역량도 키워 나가야 한다. 기후 붕괴의 충격은 혹한, 혹서, 가뭄, 홍수, 태풍, 해수면 상승, 흉작, 전염병 등의 온갖 형태일 수 있다. 코로나 재앙보다 훨씬 강력한 강도로 빈번하게 닥쳐올 수 있다. 그러나 올지 안 올지, 또는 온다면 어떤 형태로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미래 재난에 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 지자체, 기업 등이 많은 준비와 투자로 재난을 사전에 방비하고 피해 규모를 크게 줄였다고 해봐야 그 결과는 별일 벌어지지 않은 것이 된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실적을 분명하게 홍보할 수 없는 투자를 오래 지속해갈 만한 참을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 정부 들어선 다음 네 번째 시행된 감사원 감사에서 4대강 사업의 홍수 방지 편익을 ‘0원’으로 평가한 것에서도 그런 취약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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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 선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