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선정민의 뉴스 저격] 산사태·환경훼손으로 산태양광 막히자… 간척지 논·밭으로 몰려든다

최만섭 2021. 4. 2. 05:24

[선정민의 뉴스 저격] 산사태·환경훼손으로 산태양광 막히자… 간척지 논·밭으로 몰려든다

농촌 파괴하는 태양광

선정민 기자

입력 2021.04.02 03:00 | 수정 2021.04.02 03:00

 

 

 

 

 

지난달 31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간척지의 우량 농지들 사이로 곳곳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정부가 '염해 간척지'에 태양광을 늘리기로 하면서 매년 농사가 이뤄져온 우량 농지도 '소금기 피해가 있는 땅'이란 판정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영근 기자

영암호와 맞닿은 전남 영암군 삼호읍·미암면 일대는 총 500만평 규모의 우량 농지가 펼쳐진 국가 조성 간척지다. 지난달 29일 현장을 찾아가니 광활한 간척지에 반듯하게 구획된 농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12년간 땅을 임차해 벼농사를 지어온 이모(60)씨는 “논 2000여 평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작년 말 일방 해지당했다”고 했다. 이씨는 “도시에 사는 땅 주인이 ‘직접 농사짓겠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태양광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곳 간척지 임차농들이 지불해온 연간 임차료는 평당 1000원 수준. 그런데 작년부터 외지 태양광 업자들이 지주들을 찾아다니며 ‘평당 6000원 주겠다’고 하자 임차농 퇴출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매년 증가하는 ‘논밭 태양광’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 속도전’은 처음엔 산지(山地) 숲을 베어내는 것에서 출발했다. 환경·경관 훼손, 산사태 문제 등이 불거지자 한 발짝 후퇴하는가 싶더니 곧장 ‘농지 태양광’ ‘수상 태양광’으로 방향을 틀었다.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을 기점으로 산지 태양광 설치 건수는 급격히 준 반면 논밭에 새로 설치된 태양광 설비는 2018년 3440곳, 2019년 5513곳, 2020년 6542곳으로 급증하고 있다.

축사·재배사 등 지붕에도 작년 말 기준 1300㎿(메가와트)의 태양광 설비가 들어섰다. 지붕 면적이 넓은 산업단지 등지의 공장에 설치된 태양광(1107㎿)보다 규모가 커졌다. 태양광 설비를 쉽게 놓으려 허가만 축사·재배사로 받아 놓고 실제로는 가축이나 작물을 기르지 않는 곳도 수두룩한 상황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농촌 지역 태양광발전소를 10GW(기가와트)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선 여의도 46개(132㎢) 넓이에 달하는 농지 면적이 필요하다. 농지를 희생하고 태양광 전기를 얻겠다는 것이다.

바다까지 뒤덮을 기세 - 지난달 31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간척지의 농지 사이로 곳곳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영암군은 작년에 삼호읍·미암면 일대 500만평의 우량 농지 일대가 ‘염해 간척지’ 판정을 받으면서 한국수력원자력 등 공공 기관과 기업들이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다. /김영근 기자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정부가 단기간에 손쉽게 태양광을 늘리려 한다” “우량 농지들이 주 타깃이 되고 있다”고 했다. 영암의 특산품 ‘달마지쌀’이 생산되는 삼호·미암 간척지는 2000년대 초부터 논농사가 이뤄져 왔다. 현재 300여 가구 중 100여 가구는 임차농이다. 그런데 20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오던 이 일대 간척지에 대해 작년 느닷없이 ‘염해(鹽害·소금기 피해) 간척지’라는 판정이 나왔다. 임차농들은 “황당하다”고 했다.

정부는 2018~2019년 농지법과 시행 규칙을 개정, 사업 대상지 90%에서 염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염해 간척지’로 판정해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그러면서 도입한 ‘염도 검사 방식’에서 지표면 아래 30~60㎝의 심토(深土)를 기본값으로 검사하라고 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벼 뿌리는 30㎝ 밑까지 내려가지도 않는다”며 “농사에 중요한 표토(0~30㎝)엔 소금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정부가 멀쩡한 농지를 염해 농지로 판정한다는 것이다.

드넓은 간척지가 염해 판정을 받자 이번엔 공기업과 태양광 업체들이 움직였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대기업 계열사 등 5~6곳이 태양광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영암군농민회 태양광대책위 신양심 공동위원장은 “‘부동산 투기 정부’가 태양광으로 임차농까지 내쫓겠다는 것”이라며 “태양광이 온 천지를 뒤덮으면 식량 생산은 누가 하느냐”고 했다. 농민회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자 영암군은 “초대형 태양광 발전 사업을 결사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미 찬반 진영으로 나뉘어 갈라진 상태다. 찬성 측 주민 이만구(61)씨는 “대기업을 유치해야 지역 이득이 커진다”고 했다.

 

공공 기관 앞세워 우량 농지 잠식

다른 남서해안 일대에도 공공 기관들이 앞다퉈 간척지 태양광에 뛰어들고 있다. 한수원은 기업들과 함께 전남 고흥 해창만 염해 농지에도 300㎿급 태양광을 건설키로 했다. ‘염해 판정’을 담당하는 농어촌공사는 자체 보유한 간척지에 태양광을 놓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스스로 심사도 하고, 사업도 하겠다는 것이다. 현지 농민들은 “농지와 인접해 태양광 패널과 전신주가 설치될 경우 드론·헬리콥터를 활용한 방제 및 비료 살포가 제한되고 기계 농작의 효율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인접 농지에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면 계속 농사짓겠다는 농민들이 방해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매년 늘어나는 농지 태양광 설비, 규제 강화 이후 줄어든 산지 태양광

태양광에 대한 농촌의 정서는 폭발 직전이다. 지난달 4일 전남도의회 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비판하며 “대통령이 잘못하면 장관이 ‘이건 안 된다’ 할 줄 알아야지!” 하며 언성을 높였다. “민주당 찍었던 내 손모가지 잘라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자 좌중에서 “옳소!”란 외침과 박수가 터졌다.

‘농어촌 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 연대회의’ 집계에 따르면, 전남 일대 8개 시군 14개 지역이 각종 태양광 문제로 주민 갈등을 빚고 있다. 전남 장흥에서 최근 다수의 버섯 재배사 위장 태양광이 발견됐고, 충남 홍성군은 곤충사와 버섯 재배사 45곳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농민들은 “태양광 설비가 준공되자마자 외지인들끼리 사고파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태양광 투기’라는 것이다. 일부 군 단위의 태양광 사업 2000여 건 중 80%가 외지인 소유라는 통계도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2018년 4월 농지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다. 핵심 농지인 농업진흥구역 안의 모든 건축물 지붕에 태양광 설치가 허용됐다. 이전까지는 2015년 말 이전에 준공된 건축물 지붕에만 태양광 설치가 가능했다. 이제는 농업진흥구역 내 태양광 침투가 훨씬 쉬워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김승남(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 의원은 농사를 병행할 경우 농업진흥구역 내 농지에도 태양광 시설 설치가 가능토록 규제를 완화하는 농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농민 단체들은 법안 철회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암군의회 김기천(정의당) 의원은 “태양광으로 농촌 공동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경자유전’ 원칙을 깨는 폭력적인 태양광 개발 방식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일은 많고 소송 시달려… 태양광 담당 공무원들 “부서 옮겨달라” 호소]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7~ 2021년 농촌 태양광 확대를 위한 금융 지원 등 중앙 정부의 직접 재정 투입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태양광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각 지자체의 허가 담당 공무원들은 과도한 업무량과 민원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전남 지역 한 기초지자체 공무원은 “중앙정부가 태양광 규제를 푼 지난 몇 년간 태양광 개발행위 허가 신청이 수천건 몰려들었다. 담당 직원 4명이 매달리고 있지만 일 처리에 늘 허덕이고 있다”고 했다. 한 기초의회 관계자는 “태양광 담당 공무원들이 병가를 내거나 부서를 옮기려는 경우가 많다”며 “대표적인 기피 1순위 부서”라고 했다.

소규모 태양광 주변 농가 주민들은 태양광 설치 사실을 뒤늦게 알고 시·군청에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태양광 주변 주민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가 미비해 ‘눈 뜨고 당한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허가한 발전 사업에 대해 각 지자체는 특별한 법적 문제가 없으면 농지 일시 사용이나 개발 행위를 허가해 주도록 돼 있는 현행 법령도 문제다. 지자체 관계자는 “업체 측이 ‘적법 사업을 불허하거나 취소했다’며 소송을 걸거나 구상권을 청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시군이 태양광 뒤치다꺼리를 도맡는 구조”라고 했다.

 

선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