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조·신문.카페 등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RM은 보았다, 몸으로 쓴 여인들의 詩를

최만섭 2020. 12. 15. 05:36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RM은 보았다, 몸으로 쓴 여인들의 詩를

단디, 차곰차곰, 뒤숭시러운… 여인들 말엔 삶의 지혜와 해학이 담겼다
야만의 시대를 살아냈지만 그이들 말엔 이념도 편가르기도 없었다
“몸땡이살 보타지게 일만 하고 살아온” 어머니들의 말은 별이고 시였다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입력 2020.12.15 03:00

 

 

 

 

 

종지와 대접도 분간 못해 부엌에서 허둥대다 접시나 깨먹는 둘째 딸에게 충청도 엄마는 “투깔맞은 지지배”라며 혀를 찼다. 툭하면 넘어져 무르팍에 피딱지 마를 날 없는 ‘둔자바리’ 딸이었다. 늦잠이라도 잔 날엔 엄마의 지청구가 문지방을 뚫었다. “이적지 자빠져 잔겨? 머리는 오강쑤시미에, 으더박시가 따로 없네.”

그래도 소낙비 내리는 여름날, 엄마가 은색 양푼에 비벼주는 열무비빔밥은 꿀맛이었다. 찬밥에 펄펄 끓는 담북장, 쉬어 터진 열무와 고추장을 넣고 푹푹 비비면 사남매 달려들어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허리 펴고 하늘 한 번 올려다볼 틈 없었지만 엄마는 이따금 스무 살 처녀처럼 속삭였다. 가을날 부는 바람은 ‘차곰차곰’해서 좋고, 생굴에선 ‘시금달금한’ 봉숭아꽃 냄새가 나지.

/일러스트=이철원

서울로 대학 가고 직장 생활하면서 딸은 엄마의 언어를 잊었다. 멀국, 저붐, 겅거니, 깨금발, 고쿠락 대신 쿨, 셰어, 브리핑, 오케바리, 헐, 야마, 때땡큐를 입에 달았다. 대학까지 나오고도 콩나물국 하나 못 끓이는 딸이 나이 서른에 시집가던 날, 엄마는 ‘베름빡’을 보고 울었다.

생선은 길면 갈치, 짧으면 고등어라 부르는 충청도 며느리와 미역국도 도미를 넣어 끓이는 경상도 시어머니는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데면데면했다. 머리카락 한 올도 ‘추집어’ 못 견디는 시어머니는 청소도, 설거지도 건성건성인 며느리가 ‘뒤숭시러워’ 혀를 찼다. 미국 사람 말은 곧잘 알아들으면서 ‘널찔라’ ‘낑가라’ ‘싱카라’ 같은 한국말엔 왜 ‘싱티’처럼 눈만 뻐끔이는지. 좋다 싫다가 없고, 매사 “괜찮어유”이니 속이 터졌다.

봄비 사납던 어느 날, 그 어색했던 벽이 한 겹 무너졌다. “비 한번 허들시리 온다. 단디 다녀오니라.” 만삭의 몸 뒤뚱이며 현관을 나서던 며느리 가슴에 ‘단디’라는 말이 꽃이 되어 날아들었다. 젓갈 삭은 김치, 쿰쿰한 해물 탕국에 맛을 들인 것도 그날부터다. 시어머니가 “무라무라” 하면 며느리는 볼태기가 미어터져라 먹었다. 첫 손주를 가슴에 품고 “낸내낸내야~” 얼르던 자장가는 파김치로 퇴근한 며느리에게도 안식을 줬다. 문제는 경상도 말문이 트인 며느리가 술 한잔하느라 무소식인 남편을 몰아칠 때였다. “어데고. 그걸 벤명이라꼬 하나? 확 마, 치아라!”

 

어떤 어머니의 한숨은 시가 되었다. 시를 써 밥벌이하는 아들은 늙은 어머니가 밭일하고, 소죽 끓이고, 밥상을 차릴 때 “나는 똥밭에 구르는 쇠똥구리” “먹고 싸고 숨 쉬는 게 도 닦는 거지”라고 내뱉는 혼잣말들을 시로 받아 적었다. “늙은 호박을 쪼개다 보면 속이 텅 비어 있지 않데? 지 몸 부풀려 씨앗한테 가르치느라고 그런 겨. 커다란 하늘과 맞닥뜨린 새싹이 기죽을까봐, 큰 숨 들이마신 겨.” 동구 밖 나선 적 없는 촌 아낙이지만 앉은 자리서 천 리를 보았다. “높은 데다 꾸역꾸역 몸 올려놓지 마라. 뭐든 잡아먹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놈하고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흘깃거리는 것들이나 꼭대기 좋아하는 거여.” 일이 어그러져 절망한 자식에겐 태산같이 큰 품이었다. “한숨도 힘 있을 때 푹푹 내뱉어라, 어떤 세상이 맨날 보름달만 있겄냐, 몸만 성하면 쓴다.”

어떤 할머니의 그림은 예술이 되었다. 팔순에 한글을 깨친 할머니는 “밤새 내린 눈이 다 쌀이라믄 좋것다”고 쓴 뒤 “손도 없고 발도 없어 도망도 못 가는 눈사람, 지천 듣고 시무룩 벌서는 눈사람”을 크레용으로 그렸다. 생일날 오지 않는 자식들을 기다리며 쓴 시엔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돈이 없슨 게 안와, 경비가 든 게로, 와야 줄 것도 없고, 차비도 없고, 그냥 작파해붓어, 다들 힘들게 산디”. 낼모레 저승사자가 온대도 농사만 잘되면 바랄 게 없었다. “이슬비가 뽀실뽀실 온다, 뽀시락뽀시락 비가 온다, 끄끕하니 개작지근하다, 온 들에 가 다 떨어진다, 곡식이 펄펄 살아난다”. 할매들 삐뚤빼뚤한 시와 그림이 걸린 전시장을 찾은 ‘한 청년’은 한지에 붓글씨로 정성껏 썼다.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나이 오십 되니 알겠다. “죽지 속에 새끼들 품고 몸땡이살 보타지게 일만 하고 살아온” 여인들의 탄식과 자조, 넉살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슬픈 지혜이자 처세라는 걸. 가난과 차별, 야만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그들이야말로 위정자들이 참회하며 큰절 올려야 할 이 땅의 스승이라는 걸. 허황된 이념도, 오만도, 편 가르기도 없는 어머니들의 언어야말로 하늘이고 바람이고 별이고 시라는 것을.

*이정록의 ‘어머니 학교’ **한글특별전 ‘ㄱ 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