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마스크로 가릴 수 없었던 조용한 열기
예술인들이 작품에 몰입하고 싶을 때 집을 떠나 찾는 곳 ‘레지던스’
일상과 단절하고 자신을 고립시키면서 원하는 것과 선택적으로 연결
코로나시대 레지던스는 ‘줌’으로 중개하고 군중 속 고립감 즐기는 공간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20.11.05 03:00
나 같은 소설가나 음악이나 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가끔 레지던스라는 곳에 간다. 레지던스의 사전적 정의는, ‘숙박용 호텔과 주거용 오피스텔이 합쳐진 개념으로, 호텔식 서비스가 제공되는 주거 시설’이라는데 내가 가는 곳은 그런 호화로운 데는 아니다. 호텔에서 소설가에게 제공하는 레지던스를 경험해본 적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아주 소박한 생활을 한다. 원룸형 방에 침대가 있고, 샤워실 겸 화장실이 딸려 있다. 그리고 공동 식당에서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도서관이나 휴게실 등을 공동으로 쓴다. 관점에 따라 수련원 유형이랄 수도, 셰어 하우스 유형이랄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의 보통의 작가 레지던스다.
집을 떠나서 집과 비슷한 곳으로 가는 것이다. 낯설고 불편한 임시적인 집으로. 잠시 일상과 단절하고 새로운 일상을 꾸리게 되는데, 대개의 작가들의 목적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작품을 시작하거나 끝내고 오는 것. 자발적으로 자신을 고립시키면서 원하는 것과만 선택적으로 연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문물과 고립되어야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그동안 내가 다녔던 레지던스는 주로 벽지까지는 아니지만 번화와는 거리가 먼 외딴 곳에 있었다. 재수생의 부모가 선호하는 스파르타형 기숙사가 있을 법한 곳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편의점이나 약국에라도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어쨌거나 올해는 레지던스에 못 갈 줄 알았다. 작년에 다녀와서 집을 떠나는 일이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던 데다 코로나 때문에 레지던스가 제대로 열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과연,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외국의 레지던스에 가기로 했던 작가 A는 못 가게 되었다. ‘오는 걸 막지 않겠지만 여기는 지금 하루에 몇 명씩 죽고 있는 상황’이라는 메일을 받고서 출국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국내의 한 레지던스에 있던 작곡가 B는 시간 차를 두고 한 사람씩 밥을 먹는다고 했다. 또 다른 레지던스에 있는 작가 C한테는 구내식당이 아예 열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풍광은 정말 좋지만 벽지인 그곳에 사먹을 데도 마땅치 않다는 소리를 듣고 ‘금식 기도원 스타일’인가 싶었다.
올해도 가게 되었다. 강원도에서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스타일의 작가 레지던스를 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코로나 시대의 레지던스’라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뭐라도 경험할 수 있는 기대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걸 해보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줌(zoom)’으로 진행된 워크숍에도 참여했다. 오프라인으로 했다면 굳이 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줌으로 한다니 느낌이 달랐다. 모니터 안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진행하는 행정가, 그리고 레지던스 운영자와 작가. 그러니까 그날의 워크숍은 행정가가 매개해서 레지던스 운영자와 작가가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 줌 워크숍을 보면서 마치 에어비앤비의 호스트와 게스트를 중개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호스트는 레지던스 운영자, 게스트는 작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레지던스 운영자들이 갖고 있는 공간은 게스트하우스나 펜션이고, 그들은 대개 숙박업소 사장님이라 그렇다. 게스트인 작가들은, 에어비앤비의 게스트답게 장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 강릉, 춘천, 속초, 고성 등 강원도에 있는 21개의 공간 중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전처럼 그렇게 같이 머물지 않고, 같이 먹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생활하고 있는 공간에 작가 한 명이 머물거나 작가 혼자 독채에 머문다. 코로나 시대의 레지던스는 이렇다고 했다.
그렇게 강릉에서 한 달을 지내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곳은 게스트하우스도 아니고 펜션도 아닌, 코워킹스페이스다. 21개의 선택지 중 코워킹스페이스가 위치한 장소가 제일 도시에 가깝다는 데 마음이 끌렸다. 나는 도시 속에서 인간이 가장 고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간판과 쇼윈도를 볼 수 있는 거리들을 거느린 도시에서 가장 느낌이 활성화되는 인간이라 그렇다. 나는 코워킹스페이스에서 지내며 서울에 있는 회사에 소속된 채로 강릉에서 일하고 있던 코워커들과 거의 말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런 것처럼 그들도 고립감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작업 루틴이 무너질까 봐 ‘리스크 관리’를 하는 그들에게 존경심을 가지며 나도 고독 속에서 충만하게 지낼 수 있었다. 자신에게 열중한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그들의 미소, 그 조용한 열기는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었다.
한은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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