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교단 달라도… 노숙인 섬기려 敎人 보내드립니다

최만섭 2017. 11. 21. 08:32

교단 달라도… 노숙인 섬기려 敎人 보내드립니다

대형 교회 온누리의 파격 실험… 교인 57명 산마루교회로 파송
이재훈 목사 "비슷한 사람 모이면 예배는 편하겠지만 교회는 위기"

"온누리가 산마루를 도운 게 아니라, 산마루가 온누리를 도운 것입니다."

19일 오후 서울 공덕동 산마루교회(이주연 담임목사)를 찾은 이재훈(49) 온누리교회 목사는 말했다. 산마루교회의 '베데스다 힐링센터' 봉헌식에 초대받은 자리였다. '베데스다 힐링센터'는 노숙인들이 편안히 샤워, 빨래하고 스트레칭과 심리 상담까지 받을 수 있는 30평짜리 작은 공간. 대형 교회인 온누리교회의 전폭적 지원으로 마련돼 이날 봉헌식을 가졌다.(본지 11월 10일 자 A2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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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파송 예배. 온누리교회는 교단도 다른 산마루교회의 노숙인 봉사를 돕기 위해 57명의 교인을 파송했다. 이 가운데 17명은 교적(敎籍)까지 산마루로 옮기기로 했다. /온누리교회
이날 온누리와 산마루는 또 하나 파격적 실험을 시작했다. 온누리교회 교인 57명을 산마루교회로 보낸 것. 이날 오전 11시 30분 온누리교회에선 이들의 '파송 예배'가 열렸다. 57명 가운데 17명은 아예 교적(敎籍)을 온누리에서 산마루로 옮기기로 했다. 온누리는 장로교, 산마루는 감리교로 교단이 다르다. 그동안 한국 개신교 교회가 지(支)교회를 분가하면서 교인을 보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교단을 초월한 '교인 나누기'는 거의 유례 없는 일이다. 덕택에 노숙인 100명, 일반인 100명 교인이었던 산마루의 교세는 급증(?)하게 됐다.

두 교회가 파격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고리는 노숙인 봉사. 이날 봉헌식에서 이주연(60) 목사는 "노숙인 봉사를 함께 하기 전까지 이재훈 목사님과는 학연, 지연, 혈연 하나 연결된 것이 없는 일면식도 없던 분이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산마루교회는 10년 넘게 서울역 노숙인들을 돌보며 함께 예배 드리면서 농사일과 인문학 교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월요일 새벽 서울역 광장을 청소하면서 자존감 회복과 사회 복귀를 도왔다. 온누리는 2년 전 서울역 노숙인 목욕 빨래 시설을 계획하다가, 산마루가 이미 노숙인 돕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것을 알고 나서 계획을 접고 산마루를 돕기로 했다. 목욕빨래방 마련은 산마루의 숙원 사업이었다. 온누리는 이주연 목사를 초청해 설교를 들었고,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특별 헌금 3억여원을 산마루에 전달하고, 마포 지역 교인들을 중심으로 봉사 활동도 함께 했다.

그러나 교인을 파송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실험의 첫 단추는 이재훈 목사의 "더 필요한 것 없느냐"는 거듭된 물음이었다. 이주연 목사는 결국 '청년' 이야기를 꺼냈다. 이주연 목사는 "노숙인 사역을 함께 할 청년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차마 이야기 못 하다가 용기를 냈다"고 했다. 뜻밖에 이재훈 목사는 선뜻 동의했다. 그리고 이주연 목사가 이런 생각을 교인들에게 털어놓을 자리를 마련해줬다.

19일 오후 이재훈(왼쪽) 목사와 이주연(가운데) 목사가 노숙인 목욕빨래방의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 동전을 기계에 넣고 있다.
19일 오후 이재훈(왼쪽) 목사와 이주연(가운데) 목사가 노숙인 목욕빨래방의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 동전을 기계에 넣고 있다. /고운호 기자
그러자 교인들 가운데 자원자들이 나섰다. 이주연 목사는 이달 초 지원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으며 그 결과 결심을 굳힌 57명 파송 예배가 19일 열린 것. 이번에 교적을 옮기기로 결심한 송정혁(47)씨는 "온누리교회 출석한 지는 4년이지만 3대째 신앙 생활 하면서 은혜받았고, 언젠가 세상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면서 "이재훈 목사님의 권면과 이주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지금이 그때'라는 생각에 결심했다"고 했다.

이재훈 목사는 이날 설교를 통해 '산마루가 온누리를 도왔다'고 말한
이유를 설명했다. "비슷한 계층, 신분,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 편안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편안함이 교회의 위기를 부릅니다. 노숙인과 일반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산마루교회 예배당은 작아도 하나님껜 크고 위대하게 보일 것입니다."

산마루로 옮기는 온누리 교인들은 26일 주일 예배부터 참석할 예정이며 이날 산마루교회는 환영식을 열 계획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1/20171121001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