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사람을 만나던 바람둥이가 뜻밖에 배우자와 맞닥뜨렸다. "여… 여… 여보… 인사해. 우리 처제(妻弟)야." 하필 아내의 여동생이라고 둘러댔다는 우스개다. 그런데 왜 내 처제가 아니고 우리 처제일까.
집단주의가 짙게 밴 우리말에선 웬만하면 '나(내)'가 아니고 '우리'다. "우리 회사가 너희보다야 낫지" 하거나 "우리 마누라가 한번 놀러 오래" 식이다. 이 '우리'를 낮추는 말은 '저희'인데…. 얼마 전 미국 대통령 부인을 맞은 김정숙 여사가 그랬다.
"저희 나라를 찾아주셔서 마음을 다하여 환영합니다." 나라만큼은 낮춰 이르지 않는 말법이기에, '우리나라'라 했으면 좋았을 텐데. 큰손님을 잘 모시고자 하는 대통령 부인 마음이야 어찌 탓하랴만…. 외교를 책임진 장관 말에서도 '우리'가 집을 잃어 안타깝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대책을 듣는 지난 7월 국회 외교통일위. "그 부분(미국의 일방적 북한 제재)은 저희와 긴밀히 공조할 것" "주요 회원국이 힘을 합쳐야 할 부분이라 저희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건 조금 무리" "저희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건 남북 대화, 남북 관계 복원"…. 강경화 장관은 이 대목에서 세 번이나 '저희'라 했다. '저희'가 외교부를 가리켰다면 문제없다. 한데 암만 봐도 나라 차원의 대응을 얘기한 것 아닌가. 게다가 듣는 이도 같은 무리, 바로 우리나라 국회의원이니 '우리'라 해야 마땅했다.
10월 국정감사장 녹음(錄音)을 마저 틀어보자. "사드에 대해서 (중국에) 사과나 유감 표명할 수 있습니까?"(의원) "저희가 사과할 일은 없습니다."(강 장관) 역시 나랏일을 같은 국민한테 한 말이어서 '우리'가 옳은 표현이다. '저희'라 하면 '외교부에서 사과할 일은 없다'가 돼버린다. 만약 국제무대에서 영어로 잘못 말했어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을까.
큰일 맡은 사람의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무거운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낡은 잣대로 여길 수 없는 까닭이다. '바담 풍(風)'이 아니라 '바람 풍' 소리를 듣고 싶다.
10월 국정감사장 녹음(錄音)을 마저 틀어보자. "사드에 대해서 (중국에) 사과나 유감 표명할 수 있습니까?"(의원) "저희가 사과할 일은 없습니다."(강 장관) 역시
큰일 맡은 사람의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무거운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낡은 잣대로 여길 수 없는 까닭이다. '바담 풍(風)'이 아니라 '바람 풍' 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