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friday] 늙은 나보다 먼저 병석에 누운 젊은 안사돈

최만섭 2017. 11. 17. 08:49

    [friday] 늙은 나보다 먼저 병석에 누운 젊은 안사돈

    입력 : 2017.11.17 04:00

    [삶의 한 가운데]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이해는 이해를 부르고 배려는 배려로 돌아온다는 것을 남보다 일찍 깨닫는 게 인생의 지혜일 겁니다. 소중한 인연을 맺으면서, 이해와 배려로 첫 단추를 끼우는 마음이야말로 상대를 위하고 나를 위하는 지혜겠지요. 그러나 오늘 사연 속에 가장 돋보이는 지혜는 고마움을 알고 보답하는 마음인 듯합니다. 지혜가 지혜를 부르네요.

    홍여사 드림
    [friday] 늙은 나보다 먼저 병석에 누운 젊은 안사돈
    일러스트= 안병현

    남들보다 늦어진 결혼에, 10년 가까이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생하다 30대 후반에 아들 하나를 간신히 낳았습니다. 그랬으면 그 녀석이 늙은 부모 생각해서라도 일찌감치 장가들어주면 좋으련만, 서른을 넘기고야 여자 친구를 데려오더군요. 제 나이 일흔을 바라볼 때였고 남편은 이미 세상을 뜬 뒤였지요.

    홀몸으로 하나뿐인 아들을 장가보내게 생긴 저에게 먼저 며느리 본 친구들은 이런저런 훈수를 두었습니다. 들을수록 심란하더군요. 세상이 바뀌어서 지금은 신부 쪽이 큰소리하고 장모가 휘어잡는 세상이랍니다. 시어머니는 그저 말없이 하자는 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큰 분란이 일어난다고요. 상견례 자리에도 단단히 각오하고 나가라더군요. 무슨 폭탄 발언을 듣게 될지 모른다고요.

    시어머니 짓 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도 그런 말을 웃어넘길 수 없었던 데는 제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며느릿감 나이가 무척 어렸고 사부인 될 분은 심지어 쉰을 조금 넘긴 ‘젊은이’였거든요. 사돈 간의 세대 차이가 혹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더군요. 더구나 그 댁은 딸만 셋인 집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아들 하나뿐인 제 처지에 공감해주긴 힘들 것 같았지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괜한 걱정에 불과했습니다. 상견례에서 만난 안사돈은 제 예상보다도 더 젊고 세련된 모습이었지만, 대화를 나누어보니 세대 차이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돈이기 전에 연장자로 저를 대우해주니 곤두섰던 마음이 풀어지더군요. 무엇보다도 부족한 제 아들을 칭찬해주고, 그 아들을 키운 저의 수고를 인정해주는 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저도 답례로 며느릿감을 칭찬해주었지요. 그랬더니 그 양반 하는 말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으니 사부인이 잘 가르쳐 달라고, 참 빈말이라도 그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해주지 않겠어요. 아들 칭찬을 넙죽넙죽 받기만 한 제가 부끄러워지더군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부인은 저의 외로운 처지도 이해해주는 듯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다만 몇 년이라도 데리고 계시지 왜 분가를 시키시느냐고 오히려 저에게 묻는 것 아니겠어요. 요즘 상견례 자리에 나가면 ‘분가’부터 조건으로 다는 사돈이 많다던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두 아이 얼굴을 살피게 되더군요. 그랬더니 며느릿감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지 않겠어요.

    웃음이 나더군요. 짐짓 모르는 척하고 대답했습니다. “저희야 모시고 살겠다고 합디다만 제가 싫다 했습니다. 아직은 혼자가 편합니다.”

    그때 우리 사부인이 한 말을 저는 두고두고 기억합니다. “사부인이 그렇게 아이들을 배려해주시는 뜻을 저 아이들이 알아야 할 텐데요. 그리고 딸뿐인 집이라 친정에 정을 못 떼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마음 잘 압니다. 하지만 걱정 마셔요. 저희 내외는 아직 젊고, 둘이잖아요. 효도는 사부인께 먼저 다하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먼 훗날에 받을 일이 있겠지요.”

    저는 그때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아들 없는 집 맏딸이라고 제가 좀 마뜩잖아했는데 그 말이 어쩌다 사부인 귀에까지 들어간 것인지…. 사람들 인품도 모르고 그저 조건만 가지고 남의 귀한 자식에게 뭐라 했던 게 부끄럽더군요. 내 자식 흠잡는 사람 곱게 보이지 않을 텐데, 넓은 아량으로 덮어주는 사부인도 더욱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순조롭게 사돈의 인연을 맺었지요.

    시작이 좋으니 모든 것이 좋게 흘러가더군요. 아직 어린 며느리라 가끔은 철없는 행동도 합니다만 이상하게 잔소리를 안 하게 되더군요. 딸은 친정 엄마 닮는 법이니 우리 며느리도 그렇게 속 깊은 여인으로 커갈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친정 엄마가 반듯하게 가르친 딸인데 그 딸이 어디 가려고? 그런 믿음으로 기다려 주니 며느리도 저를 어려워하지 않고 더 따르는 듯했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 사돈이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못 하도록 만들어놨잖아요. 자기 딸 보호하려고 무리수 두는 친정 엄마보다 몇 수 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 그 나이에 벌써 그런 지혜가 깃들었을까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10년 세월이 흐른 요즘 그 감탄이 아픈 탄식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지혜를 가진 아까운 사람에게, 그런 병이 찾아들었을까요? 우리 젊은 사돈이 중한 병을 얻어 투병 중이라 합니다. 아직 발랄하고 예쁘장하던 모습, 젊어서 경쾌하던 그 몸이 알아볼 수도 없이 많이 상했다 합니다. 저는 차마 병문안도 못 했습니다. 달라진 모습을 보는 것도 두려웠고 늙은 내가 어쩐지 부끄러워서요. 그리고 먼저 효도 받으시라 했던 사부인의 말이 너무 슬프고 미안해서요.

    그동안 저는 남의 딸을 데려다 당당하게 대접을 너무 잘 받았습니다. 나이 먹은 시어미라고 일은 제가 두 팔 걷고 다 하고, 이것저것 사다 나르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지요. 병원 수발도 아들 아닌 며느리가 더 앞장섰습니다. 그럴 때 저는 그냥 고맙다 소리만 했지, 나한테 하는 만큼 친정 엄마한테도 잘해드리라 소리는 안 해봤네요. 사부인 말대로 늙은 내가 먼저 효도받고 나 죽은 다음에 그분들께 차례가 갈 거라고만 생각했죠. 이렇게 순서가 뒤바뀔 줄이야 알았나요?

    어머니 병환에 많이 수척해진 며느리한테 제가 그랬습니다. 이제부터는 친정 엄마를 시어머니처럼 모시라고요. 마음으로만 울지 말고 손수 돌봐드리라고요. 나는 늙었어도 건강하니 당분간 신경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단한 배려 같지만 따지고 보면 저를 위한 결심이기도 합니다. 며느리가 제 부모에게 원 없이 효도하고 나야 시어미에게도 미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친정 엄마에게 못 떠드린 밥술을 시어머니에게 떠드리고 싶을까요? 제가 나중에 며느리 손에 밥 얻어먹고 싶어 하는 말은 아니고, 하루빨리 사부인이 건강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그야말로 뒤바뀐 순서가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염치없이 넙죽넙죽 받기만 하던 늙은 사돈이 속 깊은 젊은 사돈에게 이 자리를 빌려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늙은 시어머니 먼저 가마 타고, 그다음이 젊은 친정 엄마 차례라고, 이런 일은 정말이지 순서를 지키는 거라고요.

    사부인 부디 힘내세요.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이메일 투고 mrshong@chosun.com
    독자 의견 댓글 troom.trave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