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갑자기 스마트폰 압수? 엄마, 친구 다 끊긴단 말이야!!"

최만섭 2017. 11. 17. 08:42


"갑자기 스마트폰 압수? 엄마, 친구 다 끊긴단 말이야!!"

스티브 잡스가 '혁신'을 외치며 아이폰을 들고 나온 게 2007년. 그땐 이 혁신이 가정불화의 거대한 불씨가 될 줄 예상이나 했을까.
손바닥만 한 화면에 홀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부모들의 '가정 폰압'이 시작됐다. '폰압'은 정말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막는 방법일까?

[Cover Story] [스마트폰 전쟁]

'폰압' 당한 어느 여중생의 속마음
스마트폰이 뭐길래… 말 잘 듣던 아이도 '폰압'엔 발끈

눈 뜨자마자 침대맡으로 손을 뻗었다. 밤새 쌓인 '카톡(카카오톡)' 메시지와 '페북(페이스북)' 뉴스피드를 확인하지 않으면 잠이 안 깬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있어야 할 스마트폰은 없고 충전기 선만 잡힌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아 참, 나 어제 '폰압'(스마트폰 압수)당했지!
사진=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학생 모델=정지원(14)
사진=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학생 모델=정지원(14)

우리 엄마는 꼰대다. 어젯밤 카톡으로 친구들과 학원 마치고 먹을 저녁 메뉴를 정하다 일이 터졌다. 정신없이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니 엄마가 정한 '스마트폰 셧다운(사용 중지)' 시간인 밤 10시가 넘었다. 엄마가 대뜸 내게 오더니 손에서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일주일간 압수란다. "고작 몇 분 지났다고 이러는 게 어딨어?" 따져도 소용없었다. "한두 번이 아니잖아." 돌아온 건 엄마의 매서운 눈초리. 억울하고 막막하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얘들아 나 폰압당했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에게 '폰압 신고'를 했다.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 답장을 못한 건 폰압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오해가 없다. 종이 울리자 어김없이 '담탱이'(담임선생)가 커다랗고 새까만 '폰압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우리 학교는 매일 아침 수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스마트폰을 수거해간다. 담탱이에게 부모님이 스마트폰을 가져가서 못 낸다고 말했더니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아, 재수. '부모님에게 폰압당했다'는 말은 종종 담탱이에게 폰압당하기 싫은 애들이 쓰는 수법이긴 하다. 아예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공기계'(통신 개통이 안 된 스마트폰) 사 와서 대신 내는 친구들도 봤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카카오톡 PC 버전을 켜자 확인 못 한 메시지에 뜨는 빨간색 숫자가 화면에 가득했다. 그동안 쌓인 메시지를 읽으니 이제야 학교에서 애들이 나눴던 말들이 이해가 간다. '왜 답장 안 해?' '썸남(썸타는 남자)'한테도 메시지가 왔었다. 근데 10시간 넘게 답장을 못했다. 내 인생 어쩌다 이렇게 꼬인 걸까.

카톡 확인했으니 이제 페북 차례. 인터넷 창을 띄운 순간 누군가가 내 등을 찰싹 내리쳤다. 엄마다. "너 진짜 왜 이러니. 엄마 힘들게 할 거야?!" 눈가가 촉촉해진 엄마가 뜬금없이 소리 질렀다. 이해가 안 간다. 뭐야, 진짜 왜 이래. 나더러 어쩌라고.

(※이 글은 '폰압' 경험 있는 중학생들의 실화를 엮은 얘기입니다.)

청바지에 검정 스웨터를 입은 스티브 잡스가 '혁신'을 외치며 아이폰을 들고 나온 게 2007년. 그땐 이 혁신이 가정불화의 거대한 불씨가 될 줄 예상이나 했을까. 서울 구로구에 사는 주부 임모(42)씨는 얼마 전 중학교 2학년인 딸 때문에 울었다. 말 잘 듣고 살가웠던 딸이 스마트폰에 홀려 변했다는 이유였다.

"부모 말은 듣지도 않고 맨날 인상 구기고 있는 애가 스마트폰만 보면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이에요. 하루는 등교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카카오톡을 하느라 침대에서 나오질 않는 거예요. 빨리 준비하라고 보챘더니 '나도 이제 중학생이지 초딩이 아니다'며 대드는데 울화통 터지더라고요."

스마트폰 중독

전국 청소년 10명 중 3명은 스마트폰 사용을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운 '과의존' 상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2016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청소년(만10~19세)의 30.6%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아동(3~9세, 17.9%), 성인(20~59세, 16.1%), 60대(11.7%) 등 다른 설문 대상과 비교해봤을 때 가장 높은 수치다.


손바닥만 한 화면에 홀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부모들의 '가정 폰압'이 시작됐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수업 시작 전 스마트폰을 일괄 압수하는 것에서 유래한 아이들의 은어 '폰압'이 이제 가정에서까지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의 학업을 방해한 스마트폰은 주로 주방 찬장이나 엄마의 화장대에 '수감'되며, 짧게는 하루부터 길게는 두세 달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폰압'에 강력 반발한다. 평소엔 착한 아이들도 '폰압' 얘기만 나오면 화를 내며 대든다. 왜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자기 목숨처럼 애지중지하는 걸까? '폰압'은 정말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막는 방법일까? '폰압'당한 아이들의 속마음을 friday가 살펴봤다.

'폰압 푸는 방법' 공유하는 아이들

"폰압 푸는 법 알려주세요! 엄마한테 할 말은 대충 생각해놨는데 수정 부탁드려요."

인터넷 사이트에선 이런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엄마에게 '폰압'을 당했는데 어떻게 말하면 스마트폰을 돌려받을 수 있느냐는 내용이다. '폰압 3년 경력의 제가 말씀드리죠'라는 제목의 답글엔 답변자가 '폰압 푸는 멘트'를 코치하는 내용이 상세히 달렸다. "'곧 시험이 끝나는데 반 친구들이랑 다 같이 놀러 가기로 했어요. 근데 폰이 없으면 친구들 위치를 놓치고, 엄마한테도 잘 있는지 알려줘야 하는데 못 하잖아요. 이제 밤 10시까지 엄마한테 폰 제출하고 밤에는 폰 충전도 엄마 옆에서 할게요. 그러니까 폰압 풀어주시면 안 돼요?'라고 해보세요."

/일러스트=김의균·안병현
/일러스트=김의균·안병현

요즘 아이들,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15년 청소년 252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2명(19.5%)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면 온 세상을 잃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아이들이 필사적으로 폰에 목매는 이유다.

포털사이트에 '폰압'을 검색하면 아이들끼리 '폰압 푸는 방법'을 공유한 글이 쏟아진다. "저는 안 먹던 양파를 먹으니깐 (부모님이) 돌려주더라고요." "시험을 잘 치는 게 최선입니다." "보통 엄마들은 화장대에 폰을 넣어놓습니다. 엄마 없을 때 쓰다가 돌아오실 때쯤 다시 넣어두세요."

사소한 내용도 있지만, 다소 심각한 방법도 있다. "중고나라(중고 거래 사이트) 가면 2만원이면 공기계 구할 수 있어요. 집에서 와이파이 연결해 쓰면 돼요." "스마트폰 없어서 친구들이랑 소통이 안 돼 왕따당하고 있다고 하세요." "밤에 집에 올 때 이상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 주실 거예요."

폰압은 폭압?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겪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폰압'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울산에 사는 고등학생 강태영(17)군은 시험 기간만 되면 부모님에게 스마트폰을 압수당하는 게 불만이다. 강군은 "당장 학원에서 내준 영어 듣기 평가 숙제를 하려면 스마트폰이 있어야 하는데 부모님은 '공부하는 데 폰이 왜 필요하냐'며 안 돌려주신다"며 "반 친구들끼리 모여 만든 중간고사 대비 카톡방에도 못 들어가 답답하다"고 했다.

부산에 사는 고등학생 강미진(17·가명)양은 "폰압은 곧 메신저 내용 확인하는 '폰검'(스마트폰 검사)으로 이어지고, 폰검 결과가 안 좋으면 '외금'(외출금지)이 떨어진다"며 "폰압이 아니라 제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하려는 부모님의 폭압이다"고 했다. 아이들의 소통이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 중학생 봉재경(14)양은 "카톡으로 항상 친구들과 연락할 수 있기 때문에 약속 시간과 장소를 두루뭉술하게 정한다"며 "폰압당하면 친구들과 약속을 못 지키는 게 가장 곤란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강제적인 '폰압'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김은주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아이가 스마트폰 때문에 욕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졌다며 상담하러 오는 부모님이 많다"며 "원인을 물어보면 부모가 화를 못 참고 무작정 스마트폰을 빼앗거나 와이파이를 끊어버렸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폰압은 아이가 그만 써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부모에게 건넸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대화 없이 무작정 빼앗는 것은 아이의 반발심과 스마트폰에 대한 집착만 키울 뿐 중독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알고 보면 부모가 더 쓴다

스마트폰 조사

서울 강동구에 사는 김모(44)씨는 얼마 전 초등학생 딸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카카오톡 계 모임 단톡방에서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느라 딸이 건넨 말을 못 들은 것이다. "매일 딸에게 스마트폰에 정신 팔지 말라고 혼내는데 저 역시 딸아이 말을 못 들을 정도로 카톡에 빠져 있었더라고요. 그날 이후 딸에게 스마트폰 얘기만 꺼내면 '엄마도 폰 본다고 내 말 안 듣잖아'라고 하는데 할 말이 없어요." 그는 "생각해 보니 똥 묻은 부모가 겨 묻은 자녀한테 뭐라고 하는 격이더라"고 했다.

엄나래 한국정보화진흥원 스마트쉼센터 수석연구원은 "아이의 스마트폰 과의존은 부모의 스마트폰 사용 습관 탓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6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1일 평균 이용 횟수(주중)는 청소년이 22.5회로 성인 평균 25.1회보다 오히려 적은 편이었다.

부모가 편의를 위해 아이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주고선 아이 스스로 절제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문제다. 실제 부모의 자녀 스마트폰 이용 허락 주요 이유는 '오락/재미있으라고'(22.5%), '다른 아이들도 다 사용하기 때문에'(17.4%), '나(부모)의 시간이 필요해서'(17.1%) 순이었다. 엄 수석연구원은 "어른도 하기 어려운 스마트폰 사용 절제를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아이를 못하게 하려면 부모도 같이 사용을 줄여 본보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