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행복산책] 행복해지기 위해 시험보다 중요한 것들

최만섭 2017. 11. 20. 09:20

[행복산책] 행복해지기 위해 시험보다 중요한 것들

한국인이 시험에 매달리는 건 스스로 보는 자기 모습보다 사회의 인정에 무게 두기 때문
지나친 경쟁심도 불행감 높여
내 행복의 평가자는 '나'이니 너무 긴장 말고 有終의 美 찾길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모두를 놀라게 했던 지난주 지진 때문에 수능 시험을 이번 주에 치른다. 시험 때 늘 야속한 꽃샘추위로 심술부리던 자연이 올해는 한술 더 뜨는 것 같다. 주변에서는 수험생들에게 그저 준비한 만큼 편하게 시험을 보라고 할 것이다. 수험생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비현실적인 말이지만. 수고한 수험생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함을 어른들이 달리 표현할 수 없어서 하는 말일 것이다. 시험을 마친 이번 주말만큼은 수험생, 가족, 선생님 모두 한껏 웃으며 한 해의 긴장을 풀었으면 좋겠다.

몇 해 전 어느 신문사에서 한국인의 삶을 함축하는 수필 공모전을 주최했다. 여기에 당선된 최우수작의 제목은 '시험'이었다. 숨이 턱 막히지만, 한국인으로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다. 엄마의 손을 놓고 세상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수없이 많은 시험의 문턱을 넘으며 산다. 시험을 보는 당사자도 힘들지만, 가족 전체의 삶도 수험생의 리듬에 맞추어진다. 가족이 어디에 살며 돈을 어떻게 쓸지도 수험생에게 맞춰진다. '기러기 아빠'가 우리에겐 낯선 단어가 아니지만, 이 현상을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전면 기사로 소개한 적이 있다. 수험생이 가족이라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이 외국인에게는 다소 놀라운 일이다.

왜 시험은 우리 삶의 이토록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을까? 이런저런 현실적 이유가 있다. 하지만 심리적 요인도 분명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개인이 자신에 대해 가지는 주관적 평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령 혼자서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자칫 주변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명문대 졸업장과 같은 '객관적 증거물'을 확보해야 한다. 수많은 자격증과 증명서를 취득하려는 노력 또한 이런 동기에서 비롯된다. 시험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험이 인생의 가장 큰 주제가 되다 보면 행복의 걸림돌이 될지 모를 사고의 습성들이 생겨난다.

2018학년도 대입 수능이 연기된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노량진 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우선 타인의 평가에 촉각을 계속 세우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보다 남의 눈이 더 중요해지는데, 이것은 모순적인 행복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령 사람들에게 작은 하트 모양 초콜릿과 큼직한 바퀴벌레 모양 초콜릿을 맛보게 하면, 작은 하트 모양이 더 맛있다고 한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집에 가져가라고 하는 조건에서는 큰 벌레 초콜릿을 선택한다. 더욱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합리주의(lay rationalism)라고 하는 이 현상은 암묵적으로 타인의 평가를 과하게 의식하기 때문에 자신이 더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또 다른 부작용은 세상 사람들이 그저 나의 경쟁자로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생에서 누군가의 득은 나에게 실'이라는 단순한 제로섬(zero-sum)적 시각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잘하는 주변 사람을 보면 축하의 마음보다 위협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쟁적 피해 의식은 수험생 신세를 벗어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행복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실제로 이렇게 '남의 득은 나의 실'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은 낮고, 과도하게 경쟁적이며 남에게 호감을 덜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시험이 아니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고, 자신이 그 경험의 주인공이자 평가자이다. 비빔국수가 멸치국수보다 좋은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듯 왜 내게 행복할 자격이 있는지 세상에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 생각에 확신을 가지면, 행복해진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시험과 달리 행복은 몇 번의 기회로 결과가 결정되지 않는다. 한평생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행복이다. 마지막으로 그 어떤 일도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의 행복도, 불행도 가져오지 않는다는 현인의 말을 수험생들에게 전하고 싶다. 물론 큰 시험이지만 너무 긴장하지 말고 유종의 미를 거두시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19/20171119021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