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30 03:15
극단적 주장이 난무하는 세상에 獨 신부의 '알맞게'가 눈길 끌어
'善行과 결점 극복' 각오보다는 매사에 주의 기울이며 살면 돼
![김한수 종교전문기자](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708/29/2017082902966_0.jpg)
'돈'과 '영성(靈性)'은 상극(相剋)이라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런 선입견이 반드시 옳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가 알셀름 그륀(72) 신부다.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가진 세계적 가톨릭 영성가인 그륀 신부는 독일 성(聖)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차흐 대수도원의 재정 담당자로 40년 가까이 일했다. 기부금과 수도사들이 만든 물건 판매 수익과 자신의 저서 인세와 강연료 등 수도원의 모든 수입과 지출을 챙기고 은행을 상대하는 자리다. 그는 이 업무를 위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항상 각종 청구서와 영수증 더미와 씨름하며 살아온 그가 '21세기 영성가'로 꼽힌다는 점은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신기한 일이다.
그륀 신부가 자신의 영성 수련 비결(?)을 살짝 공개했다. 최근 번역된 2014년 저서 '딱! 알맞게 살아가는 법'을 통해서다. 그는 엄청난 다작(多作) 작가다. 국내 인터넷 서점에 올라 있는 저서 목록만 100권이 넘는다. 이 정도 집필량이면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뭔가 쓰고 있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그가 집필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6시간에 불과하다고 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그리고 일요일 오후 2시간뿐이란다. 그것도 글이 잘 안 써지면 10분 정도 침대에 누워 쉰다. 강연도 무수히 많이 하지만 그 나름의 원칙이 있다. 강연 전 10~15분은 반드시 침대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쉰다. 그도 인간인지라 유혹을 느낀다고 한다. "글은 실제보다 재미있게 쓰고 싶고, 강연 때에도 더 주목받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알맞게' 쉬고 나면 그런 생각이 가라앉으면서 글쓰기와 강연 자체가 기다려지고 더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륀 신부가 이런 생활 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알맞게' 살기 위해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 베네딕토 성인의 표현을 빌리면 '슬기로운 절제' 즉 '중용'의 삶이다. 이 책에 눈길이 간 이유도 제목의 '알맞게'라는 단어에 끌려서다. 극단적이고 선명한 주장이 선호되면서 '알맞게'의 미덕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단어 자체도 잘 쓰이지 않는다. 그륀 신부는 '알맞게'의 미덕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그는 '알맞게'란 단지 '보통 수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중간'이 아니라 양극단을 배제한 상태를 이른 불교의 '중도'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정신이다.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708/29/2017082902966_1.jpg)
그는 '주의 기울이기' 노력을 일상에서 실천한다. 가령 수도원 가구가 낡아 새것으로 바꿔야
극단의 함성이 높고 '중도'와 '중용'이 매도당하는 시대, 그래서 더욱 '슬기로운 절제' '알맞게'의 정신이 귀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