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발자취] 38년간 담담히 고독 읊조린 '제비꽃' 지다

최만섭 2017. 8. 29. 10:34

[발자취] 38년간 담담히 고독 읊조린 '제비꽃' 지다

입력 : 2017.08.29 03:05

[포크 음악의 대부 조동진]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 등 남겨… 데뷔 후 앨범 6장 낸 '과작 음악가'
기획사 설립, 들국화·어떤날 배출… 암 투병하며 준비한 공연 매진돼

2015년 19년 만에 신곡을 내고 인터뷰하는 조동진.
2015년 19년 만에 신곡을 내고 인터뷰하는 조동진. /고운호 기자
한국 대중음악의 큰 수원(水源) 하나가 말라버렸다.

'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 등 명곡으로 널리 알려진 포크 가수 겸 작곡가 조동진(70)이 28일 오전 3시 43분 별세했다. 고인은 최근 방광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이날 수술받기 위해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 입원할 예정이었다. 동생 조동희씨는 "오빠가 경기도 일산의 자택 욕실에 쓰러져 있는 걸 조카가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가던 중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그는 다음 달 16일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공연에서 13년 만에 무대에 설 계획이었다. 전날 오후 공연 티켓이 매진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몇 시간 만에 비보가 날아든 것이다.

고인은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화 '철조망' '육체의 길' 등을 만든 조긍하 감독이다.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지만, 부친의 영화 제작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2년 만에 중퇴했다. 그때부터 취미로 하던 음악을 생업으로 삼았다. 미8군 클럽 무대에 서는 록밴드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곧 전자 기타를 내려놓고 통기타를 잡았다.

작곡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양희은이 불러 유명해진 '작은 배'가 조동진의 첫 히트곡이다. 32세 때인 1979년 뒤늦게 데뷔 앨범을 내놓았다. 주로 저항 정신을 담던 당대 포크 음악과 달리 조동진은 고독, 체념 같은 개인감정이나 어머니의 죽음 같은 주제를 노래했다. 음악평론가 이경준씨는 "서정과 사유가 억압당했던 시대에 혜성같이 나타나 음악이 문학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음을 증명한 음악가"라며 "다른 장르 음악까지 꾸준히 작품 세계를 확장해 나가면서 대중음악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한국 포크음악의 대부(代父)로 통했던 조동진이 30대 시절 공연하던 모습.
한국 포크음악의 대부(代父)로 통했던 조동진이 30대 시절 공연하던 모습. /푸른곰팡이
38년간 낸 앨범이 6장밖에 되지 않는 과작(寡作) 음악가였고, 대중적 히트곡은 더 적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후배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른바 '조동진 사단'이라는 후배 음악가 무리는 1980년대부터 걸작 음반을 쏟아내며 한국 대중음악의 새 흐름을 만들었다. 조동진 집을 드나들며 어울리던 전인권과 최성원이 밴드 '들국화'를 결성했고, 그의 동생 조동익은 형의 앨범에서 기타를 치던 이병우와 포크 듀오 '어떤날'을 만들었다. 그가 주도해 만든 음반 기획사 '동아기획'과 '하나음악'을 통해 김광석, 유재하, 장필순, 김현철, 이소라, 한동준, 유희열 등이 세상에 나왔다. 이날 고인의 빈소엔 후배들의 조문 행렬이 밤늦도록 이어졌다. 제주도에 사는 조동익·장필순 부부도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왔다. 전인권은 "당신이 만든 노래가 히트해도 씨익 웃으며 낚시만 다니던 선배"라고 했다. 이장희, 유희열, 윤종신은 소셜미디어 등에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다. 한 팬은 빈소를 찾아와 조의금 100만원을 내고 갔다.

고인은 '언더그라운드의 대부'로 불렸다. 데뷔 때부터 방송에 출연하는 일 없이 음반 제작과 공연 활동만 했고,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배들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작년, 20년 만에 6집을 냈을 때도 음악감상회를 한 번 연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지난 7월 방광암 진단을 받은 후 장필순 등 후배 가수들이 한데 모여 그를 위한 공연을 열기로 했던 것이다. 공연 이름은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였다. 고인과 가깝게 지낸 신현준 성공 회대 교수는 "일생 서두르는 일이 없던 형이었는데, 세상 떠나는 건 조금 서두른 것 같다"고 했다. 공연 주최 측은 "장례 일정이 끝나기 전이라 조심스럽지만, 예정된 공연은 헌정 형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아들 조범구·조승구씨가 있다. 빈소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30일 오전 5시 30분, (031)900-0444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8/20170828032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