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어둠에 갇힌 이들에게 빛이 되는 기술

최만섭 2017. 8. 28. 09:09

어둠에 갇힌 이들에게 빛이 되는 기술

입력 : 2017.08.28 03:04

삼성전자 C랩, 시각 보조 앱 '릴루미노' 개발

기어 VR 쓰면 사물·글자 또렷하게 보여
시각장애인 1~6급 모두 사용 가능
더 편리하도록 '안경' 개발 착수


"어? 앞에 있는 사람…. 엄마? 엄마야?"

머리에 '기어 VR'을 착용한 소녀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저시력 장애를 지닌 소녀는 바로 코앞에 있는 사람이나 물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시력이 약하다. 그런데 책상 맞은 편에 앉아있는 엄마를 알아봤다. 딸의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①삼성전자 C랩 프로그램에 참여한 ‘릴루미노’ 팀의 조정훈 CL(Creative Leader)이 시각장애인들이 사물이나 글자를 보다 뚜렷이 볼 수 있게 보조해 주는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소개하고 있다.
①삼성전자 C랩 프로그램에 참여한 ‘릴루미노’ 팀의 조정훈 CL(Creative Leader)이 시각장애인들이 사물이나 글자를 보다 뚜렷이 볼 수 있게 보조해 주는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소개하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지난 18일 서울 태평로 삼성전자 브리핑룸. 한빛맹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릴루미노' 테스트 장면이 상영됐다. 릴루미노(Rel�m�no)는 라틴어로 '빛을 되돌려준다'는 뜻. 삼성전자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든 기어 VR용 시력 보조 애플리케이션(앱)의 이름이기도 하다.

②릴루미노 앱에서 ‘독서모드’를 적용할 때의 효과를 보여주는 이미지.
②릴루미노 앱에서 ‘독서모드’를 적용할 때의 효과를 보여주는 이미지./삼성전자 제공
◇기어 VR 쓰고 앱 실행하면 캄캄하던 세상이 환해져

삼성전자가 릴루미노를 오큘러스 스토어에 무료로 공개했다. 앞을 전혀 못 보는 전맹을 제외한 1~6급 시각장애인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앱이다. 시각장애인이 기어 VR을 쓰고 릴루미노를 실행시키면 어둡고 흐릿하던 세상을 보다 또렷하게 만날 수 있다. VR에 장착한 스마트폰 카메라에 비치는 이미지를 시각장애인이 인식하기 쉬운 이미지로 수정해 보여주는 게 릴루미노 앱의 핵심이다.

③릴루미노 앱은 윤곽선 강조, 밝기/대비 조정, 색 반전, 색상 필터 등 여러 기능을 갖추고 있다.
③릴루미노 앱은 윤곽선 강조, 밝기/대비 조정, 색 반전, 색상 필터 등 여러 기능을 갖추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릴루미노는 ▲윤곽선 강조 ▲밝기/대비 조정 ▲색 반전 ▲화면색상 필터 등 여러 기능을 갖추고 있다. 백내장이나 각막혼탁 등으로 시야가 뿌옇거나 빛 번짐이 있는 경우는 물론, 굴절장애나 고도근시를 겪는 시각장애인도 이 앱을 활용해 사물이나 글자를 기존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비장애인의 눈에 비친 장면.
비장애인의 눈에 비친 장면.
시야에 까만 점 모양으로 안 보이는 부분이 생기는 '암점'과 시야가 좁아지는 '터널시야'를 가진 시각장애인들에게 유용한 기능도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있는 이미지를 보이는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부분시야모드'를 통해 답답함을 덜어준다.

사용법도 어렵지 않다. 삼성전자 갤럭시S7 이후 출시된 스마트폰에 릴루미노 앱을 내려받은 뒤 기어 VR에서 작동시키면 된다. 수백만원이 넘는 기존의 시각 보조기기와 비교해 성능은 유사하면서도 훨씬 낮은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김찬홍 한빛맹학교 교사(시각장애 2급)는 "학생들의 테스트가 끝난 뒤 직접 릴루미노를 사용해봤는데 고가의 확대 독서기를 사용하는 느낌이었다"면서 "맹학교 학생들이 공부할 때 쓰면 무척 유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암점’이 생겨 보이지 않는 부분이 발생한 모습.
‘암점’이 생겨 보이지 않는 부분이 발생한 모습.
◇삼성전자 C랩 과제로 출발… '안경' 형태로 개발 중

릴루미노는 삼성전자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C랩(Creative Lab) 과제 중 하나로 시작됐다. 앱 개발을 총괄한 조정훈 CL(Creative Leader)은 "시각장애인들이 집에서 TV를 보거나 독서를 할 때 조금 더 잘 볼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릴루미노 과제를 제안한 이유를 설명했다.

릴루미노 앱 ‘부분시야모드’를 적용한 후의 모습.
릴루미노 앱 ‘부분시야모드’를 적용한 후의 모습.
지난해 5월 이 같은 아이디어로 C랩 과제에 선정된 조정훈 CL은 팀원 2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릴루미노 개발에 착수했다. 올해 1월부터는 문남주 중앙대 안과 교수팀과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교정시력 0.0~0.1인 시각장애인이 릴루미노를 착용하면 시력이 0.8~0.9로 향상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찬홍 한빛맹학교 교사가 삼성전자 C랩 프로그램에 참여한 임직원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력 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사용한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김찬홍 한빛맹학교 교사가 삼성전자 C랩 프로그램에 참여한 임직원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력 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사용한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 2017'에 참가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기어 VR로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 다른 시각 보조기기에 비해 접근성이 높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C랩 과제는 원칙적으로 1년 후 종료되지만 릴루미노는 이례적으로 1년 더 후속 과제를 진행한다. 릴루미노 팀은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안경' 형태의 제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기어 VR용 릴루미노도 사용자의 불편사항에 귀를 기울이며 지속적으로 성능을 개선해나갈 계획이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상무는 "릴루미노는 전 세계 2억4000만명 시각장애인의 삶을 바꿔줄 '착한 기술'"이라며 "후속 과제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릴루미노 설치와 사용법은 홈페이지(www.samsungrelumino.com)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 C랩(Creative Lab)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독립 스타트업 설립 지원

C랩은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다. 임직원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12년 처음 도입했다. IoT, 웨어러블, VR등 IT 분야 과제는 물론, ‘릴루미노’와 같은 사회공헌 분야 과제도 수행한다. 지난 5년간 750여 명의 임직원이 총 180개의 과제를 진행했다.
삼성전자는 2015년부터 C랩 과제 중 사업화 가능성이 큰 과제를 선정해 임직원들이 독립적인 스타트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25개 C랩 과제가 스타트업으로 독립했다. 이 중 산업 건축용 진공 단열 패널을 설계·생산하는 ‘에임트(AIMT)’는 40억원 규모의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허밍으로 작곡하는 앱을 개발하는 ‘쿨잼컴퍼니(COOLJA
MM company)’는 최근 세계 3대 음악 박람회 ‘미뎀랩(MIDEMLAB) 2017’에서 우승했다.

이 밖에 ‘망고슬래브(MANGOSLAB)’는 점착식 메모 프린터 ‘네모닉’을 개발해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최대 가전전시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스타트업으로 독립한지 불과 1년 만에 양산 제품을 생산해 9월 판매를 앞두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7/20170827009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