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뉴스

시한부 前남편의 마지막 인사

최만섭 2017. 7. 7. 13:05

시한부 前남편의 마지막 인사

제 나이 쉰넷. 혼자 사는 게 차라리 편한 나이라고 해야 할지, 이도 저도 아니게 어중간한 나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한때는 저도 결혼의 틀 안에서 짝을 지어 살았더랬습니다.

입력 : 2017.07.07 04:00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우리의 마음은 용서를 원합니다. 용서해야 마음이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날마다 한 걸음씩 용서를 향해 다가갑니다. 하지만 용서라는 큰 바다를 만나게 되는 건, 걸음 수를 다 채운 어느 날이 아닙니다. 그전에 바다가 우리를 덮쳐오기도 합니다. 그토록 원망했던 그 사람 몫의 후회까지 내가 대신 하게 되는 용서의 순간이 닥쳐오기도 합니다. 그 바다를 맞이하는 날을 위해 어쩌면 우리는 충분히 미워하고, 방황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지요.

홍여사 드림

제 나이 쉰넷. 혼자 사는 게 차라리 편한 나이라고 해야 할지, 이도 저도 아니게 어중간한 나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한때는 저도 결혼의 틀 안에서 짝을 지어 살았더랬습니다. 딸 하나 낳고, 맞벌이하며 이십여 년을 앞만 보고 살았죠. 그 결혼이 깨진 건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남편은 본인의 외도에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제가 스스로를 더 이상 여자로 여기지 않았고, 남편을 남자로 대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자기는 외로웠고 가정에 마음을 붙일 수 없었다고…. 이혼해달라 조르면서도 남편은 고양이 쥐 생각해주듯 제 앞날을 걱정하더군요. 당신은 아직 한창 때이니 자기 자신을 찾으라나요.

불행 중 다행히도 딸아이 먹여 살릴 능력쯤은 있었기에 미련 없이 이혼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그 가증스러운 말만큼은 콧방귀를 뀌어주었지요. 남편은 젊고 싱싱한 여성과 바람이 났을 뿐입니다. 그녀에 비교해보니 이십년 함께 살아온 마누라가 너무 메마르고 쭈글쭈글하고 처져 보였던 것뿐입니다.

그 뒤로 저는 달라졌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니 제 또래 사십대 여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이더군요. 행복한 여자들은 그들대로 자신을 가꾸고, 불행한 여자들은 또 그들대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저도 거기에 뛰어들었어요. 트레이닝을 받고 마사지를 받고 쇼핑에 큰돈을 썼습니다. 이를 악물고 원수를 갚듯 쇼핑을 했죠. 그다음 단계는 성형이었습니다. 그 흔한 쌍꺼풀 수술조차 안 해본 제가 성형외과를 수퍼마켓 드나들듯 했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저를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자기들끼리는 수군거렸겠죠. 하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느 구석에서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하고 시드는 것보다는 손가락질이라도 당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화려해지니 하던 사업도 더 잘되더군요. 뒤에서는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우러러보는 걸 느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제 사생활이 달라지지는 않더군요. 남편과 헤어진 이후 고백하건대 저는 단 한 사람의 남자와도 사귀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주름살이나 머리숱과 관련되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는데 제 마음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남편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커서 사람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두 번 저 같은 처지의 남자를 소개받기도 했으나 잠깐 차를 마시는 그 짧은 시간조차 가시방석처럼 여겨졌습니다.

결국 십년의 세월을 자의 반 타의 반 혼자 지내왔네요. 그 사이 딸아이는 대학을 가고 취직을 했다가 다시 유학을 떠났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잔소리를 보내옵니다.

딸이 이렇게 잘 컸으니 저의 지나간 결혼 생활도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다 자위할 수 있을까요? 부쩍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요즘인데 뜻밖의 소식이 제 마음에 또 하나의 파문을 일으킵니다. 남편에게서 연락이 온 것입니다. 한번 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아니, 봐야 할 일이 있다고요.

저는 남편의 근황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꼭 봐야 할 일이면 까짓 거 못 볼 이유도 없지만, 약속을 잡은 뒤로 며칠은 심란하더군요. 한때는 부부로 살던 사이면서 지금은 남보다 먼 관계. 남편은 내 변한 모습을 알아보기는 할는지….

그러나 뜻밖에도 남편은 저를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익숙하게 대하더군요. 제 외모가 변했다는 사실을 못 느끼는 듯했습니다. 예전과 달리 돈깨나 준 명품을 두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더군요. 왜 이렇게 말랐느냐? 어디 몸이 안 좋으냐고 물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그래, 남편이란 인간들은 어차피 마누라를 자세히 보지도 않아. 그래도 십년 만에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었던 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여심이겠지. 저는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요.

그런데 남편의 대답이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자신이 암 투병 중이고 이미 말기라고 하더군요. 3년 전에 1차로 항암 치료 했었는데 재발을 했다고. 아무래도 가망이 없는 것 같아 더 처참해지기 전에 작별 인사나 한번 하고 싶었다고요.

그제야 제 눈에도 남편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기억 속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르고 거무튀튀한 초로의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순간 뜻 모를 눈물이 제 눈에서 뜨끈하게 솟는가 했는데 희한하게도 실제 눈물은 한 방울도 안 나오더군요.

남편은 저한테 말했습니다. 당신은 또 왜 이렇게 얼굴이 못해졌느냐고, 당신이 건강해야 우리 딸 걱정 않고 떠난다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제일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그날 저는 끝내 눈물 흘리지 않고 남편과 헤어졌습니다. 택시에 오르기 전에 뒤로 손을 내저으며 끝내 돌아보지는 않던 남편을 보며 슬프기보다는 기가 막혔습니다. 무엇인가에 속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를 속인 것은 세월일 뿐 다른 누가 아니겠지요. 여자에 빠져 사람을 버리고, 남자에 속아 분노 속에 방황한 것이 다 어리석게 느껴지며 남편 몫의 후회까지 제가 하게 되더군요.

우리가 동고동락 세월을 함께 넘어 오늘에 이르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남편을 보내는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여자의 행복이겠지요. 하지만 인연은 비켜갔고 오늘따라 거울 속의 변해버린 제 모습만 더욱 낯설게 느껴질 뿐입니다.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이메일 투고 mrshong@chosun.com
독자의견 댓글 troom.premiu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