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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하늘과 땅을 잇는 영혼의 사다리

최만섭 2018. 4. 5. 06:19

[박해현의 문학산책] 나무는 하늘과 땅을 잇는 영혼의 사다리

나무는 예술가들에게 영감 주고 문학의 재료가 되기도… 거대한 인문학의 뿌리
나무가 만물을 엮는 반지라고 生前 노래했던 오규원 시인, 숨 거둔 뒤에도 나무 아래 잠들어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꽃바람이 허공에 가득하다. 평소 무뚝뚝이로 살던 사람이라도 꽃 핀 나무 앞에선 얼굴 근육을 편다. 절로 마음 한구석이 너울거리는 느낌의 파문을 억누를 순 없다. 늘 앞만 보던 시선을 잠시 위로 옮긴다. 꽃이 솟아난 나뭇가지를 오래 올려다본다. 때론 뒷짐을 지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한다.

허리를 숙여 두 손 모으는 것과는 정반대의 자세지만, 하늘을 향해 외경심을 드러내기는 마찬가지다. 저 먼 곳이 불쑥 이곳으로 강림한 듯한 환상에 사로잡혀 가슴이 울렁인다. 사람은 봄나무에게 대꾸할 말을 찾아 심장을 더듬는 척한다. 어찌 나무의 언어를 사람의 말로 옮기랴. 하르르 꽃잎 떨어진 자리엔 시심(詩心) 향기만 그윽하다.


나무는 숱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재료가 되기도 했다. 이런 우화(寓話)도 있다. 어느 정원사가 조수에게 월계수(月桂樹)를 다듬으라고 했다. 가지치기를 해서 나무 머리를 둥근 공처럼 보이게 하라고 했다. 조수는 열심히 가지를 잘라내고 잎사귀들을 깎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좌우 균형을 맞추기 힘들어 한쪽으로 찌그러진 공 모양이 생길 뿐이었다. 조수는 자르고 또 잘랐다. 결국 공 모양이 됐지만, 훤칠한 나무 몸통에 야구공처럼 작은 머리를 얹은 꼴이 됐다. 정원사는 조수가 한 작업을 보더니 "아무튼 공 모양이기는 한데, 월계수는 어디 갔나?"라고 물었다.

독일 시인·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우화다. 지나치게 형식에 치중해 내용이 없는 예술을 조롱했다. 나무가 적절한 비유로 활용됐다. 만약 돌이 등장했다면 깨진 돌 부스러기에 불과한 이야기가 됐을 것이고, 네 발 동물을 공처럼 다듬는 설정이었다면 눈 뜨고 못 볼 잔혹극이 펼쳐졌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우화를 읽은 대부분의 독자는 멀쩡한 월계수를 훼손한 조수의 어리석음에 혀를 찬다. 나무는 인공(人工)의 대척점에 있는 자연의 상징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꽂혀 있기 때문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나무 덕분에 인간은 신화와 종교, 문학을 빚어냈다고 한다. 우주의 중심에 연결된 나무는 신화의 핵심 요소다. 종교가 제시하는 영원한 신비는 문학에서 나무를 통해 형상화된다. 소박한 나무가 거대한 인문학의 뿌리인 것이다. 하지만 '나무의 문학'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은 국내에선 보기 드물다.

다행히 올해 식목일을 맞아 우찬제 교수(서강대 국문과)가 연구서 '나무의 수사학'(문학과지성사)을 내놓았다. 한국 현대문학에 나타난 '나무의 상상력'을 샅샅이 찾아내 그 글맛을 한꺼번에 음미할 수 있게 했다. 문학 독자뿐 아니라 식물 애호가에게도 색다른 기쁨을 안겨줄 듯하다.

우찬제 교수는 "인간은 나무에 상상적인 접목을 통해 창의적인 몽상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다"고 했다. 나무는 신화, 상징, 생명을 두루 가리키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신비로운 사다리, 영매(靈媒)'라는 것이다. 그가 골라낸 숱한 나무의 문학 중에서 오규원(1941~2017) 시인의 시 '나무에게'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물의 눈인 꽃과/ 물의 손인 잎사귀와/ 물의 영혼인 그림자와/ 나무여/ 너는 불의 꿈인 꽃과/ 이 지구의 춤인 바람과/ 오늘은 어디에서 만나/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오느냐.'

나무는 물을 마시고 자란다. 시인은 그 나무를 물의 육체라고 봤다. 심지어 나무 그림자에 어룽대는 물의 영혼도 읽어냈다. 시인은 물의 몸통인 나무가 불같은 꿈을 꾸기에 꽃을 피우고, 바람과 더불어 춤을 춘다고 노래했다. 나무가 지상의 만물을 엮는 반지가 된다는 것이다.

오규원 시인은 투명한 언어의 세계를 탐구하는 시를 많이 썼다. 그는 말년에 폐기종을 앓았다. 공기 맑은 시골에서 투병 중일 땐 나무를 카메라에 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날(生) 이미지' 시론(詩論)을 제시한 시인이기에 생생한 나무 사진으로 시를 대신했다. 그는 병상에서 의식이 가물거리던 순간에 마지막 시를 썼다.

간호하
던 제자(이원 시인)가 펼친 손바닥에 시인은 손톱으로 시를 새겼다. 영특한 제자는 그 시를 외워 세상에 전했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시인이 숨을 거두자 유족은 그의 뜻을 기려 수목장을 결정했다. 시인은 강화도 전등사가 조성한 수목림에 묻혔다. 한 그루 아름드리 나무 밑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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