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최만섭 2007-09-04 14:49:12
제목 : 소통(疏通)
그곳으로 가는 전철은 항상 만원이다. 옆구리에 체온계를 끼고 사는 젊은이가 휴대전화로 시시각각 변하는 몸 온도를 그의 여인에게 보고하고 있다. 그는 “왜? 창밖으로 지나가는 세상과 끊임없는 이별을 해야 하나?”라고 고함까지 질러대었다.
나는 폐기 물품을 처리한 후 끊임없이 걸려오는 문의 전화에 몇 날 밤을 시달려야 했다. 그들이 갖는 의문은 그 절차와 결과가 아니라 카멜레온 같은 그들의 감정이었다.
전철은 거침없이 그곳으로 달려가는데, 내 마음은 말에 치여 옴짝달싹 못한다.
나는 나의 작고 초라한 어깨 위에 십여 년간 의탁하여 사는 낡은 가방에서 70년대 여인의 초상화를 꺼냈다. 여인의 깊고 맑은 눈동자는 *우수(憂愁) 속으로 떨어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대나무 관을 통해서 바다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희망을 잡는 데 실패하여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가슴에 사는 또 다른 희망은 나를 가볍게 들어 지상으로 날라다 주었다. 희망과 절망은 불통(不通)으로 야기된 사건(Happening)일 뿐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언어를 잃어버린 백치(白痴) 여인이 속이 확 트인 소리로 울고 있다. 우리는 서둘러 그녀 곁으로 달려가야 한다.
* 그곳 : 인간이 갈망하는 행복(幸福)을 상징함.
* 우수(憂愁) : 근심과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