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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기록해야 두려워한다

최만섭 2016. 1. 29. 10:14

[데스크에서] 기록해야 두려워한다

입력 : 2016.01.29 04:29

정우상 정치부 차장
북한인권법이 곧 처리될 모양이다. 2005년에 처음 발의됐으니 11년 만이다. 그동안 '내정 간섭' '남북 대결 조장법'이라며 온갖 이유로 반대했던 야당이 이제라도 법안 처리에 일단 합의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든 아니든 나중에 따질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북한인권법 저지의 전선(前線)에 섰던 정치인들의 해명은 꼭 듣고 싶다. 그냥 시류나 당론 때문이 아니라 소신을 갖고 북한인권법을 반대했던 의원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4년 미국에 서한까지 보내며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을 반대했던 당시 집권 여당 의원들이다. 열린우리당 소장파 의원 26명은 '북한 내정에 대한 간섭이며, 북한 정부의 몰락을 겨냥해 남북 대화를 중지시킬 수 있다'며 북한인권법 반대 서한을 보냈다. 서한을 접수하지 않겠다는 데도 굳이 주한 미국 대사관까지 찾아가 전달하는 퍼포먼스도 했다. 이것이 12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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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전경. /조선일보 DB

2004년 미국에 서한까지 보내며
북한인권법 제정 반대했던
당시 집권 여당 의원 26명

이 서한에 서명했던 의원 중 상당수는 여전히 야당에서 왕성하게 일하고 있다. 당시에는 초선(初選)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야당 지도부, 국회 상임위원장, 지방자치단체장 등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고, 이번 총선에도 출마한다. 이들이 북한인권법의 국회 표결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찬성한다면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 반대한다면 그 이유는 뭔지 듣고 싶다.

12년 전 그런 비상식적 행동을 했던 데는 운동권 출신의 관성(慣性)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으로 북한이 이 지경이 됐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인권 탄압이 발생했다는 내재적 관점. 한때 대단한 이론으로 추앙받았던 '식민지 반(半)봉건사회론'에 입각한 운동권 논리. 그래서 정치처럼 공적(公的) 영역에 진입한 전직 운동권들은 과거와 어떻게 결별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이런 요구를 사상 검증이니 색깔론이니 비난하는 정치인일수록 인사청문회 때 장관 후보자 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문제 삼는 걸 자주 봤다.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에 대법원이 2009년 이적 단체로 규정한 단체의 간부 출신 인사가 들어왔다. 그에게 지금 생각이 바뀌었는지를 물었다. "난 문학을 사랑했고, 김영삼 정부는 아직 권위주의 잔재가 남아 있었고, 당시에도 활동 방식에 대한 이견이 있었고…". 그런데 그가 이적 단체 간부로 활동했던 시기는 노무현 정부 때였다. 이런 식의 대답이니 30분 가까운 이야기를 듣고도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없었다.

법이 통과되면 정부는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김씨 왕조의 인권 유린을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법무부에 기록을 보관하는 것은 형사소추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그것만 남길 게 아니다. 광화문 미국 대사관에 달려가 북한인권법을 반대했던 이들의 기록이 현재 남아 있다.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다 슬그머니 제1야당에 둥지를 튼 일부 인사의 행적도 앞으로 기록될 것이다. 기록해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