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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우리는 어리석은가

최만섭 2016. 1. 6. 09:50

[선우정 칼럼] 우리는 어리석은가

慰安婦 문제 25년… 밖으로 분출하던 증오가 결국 안으로 역류했다
격려와 위로는 사라지고 "일본 돈에 魂을 팔았다"는 험한 삿대질이 시작됐다

선우정 논설위원
선우정 논설위원
정부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타결에 대해 야당 대표가 말했다. "정부가 10억엔에 우리 혼(魂)을 팔아넘겼다"고. 그는 정말 '내 혼이 일본에 팔렸다'고 생각할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야당 대표처럼 이번 타결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중한다. 무엇보다 위안부를 위한 우리의 기나긴 분투(奮鬪)가 우리 공동체의 분열과 반목으로 마무리되는 게 슬프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된 지 25년을 맞았다.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이 나온 게 1991년이다. 위안부 문제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부분과 전체를 함께 보지 않으면 허상(虛像)에 집착하게 된다. 1992년 일본 총리의 첫 사과가 있었고, 1993년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한 고노(河野) 담화가 나왔다. 노태우·김영삼 정부의 성과였다.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에게 나는 고노 담화를 꼼꼼히 읽어보라고 권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두 축을 사죄와 배상이라고 한다면 그중 한 응어리는 그때 풀고 전진해야 했다.

담화 이후 한·일 위안부 협의는 10여 년을 뛰어넘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재개됐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위안부 문제를 외교 쟁점으로 삼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방일(訪日) 때 "위안부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제기해 달라"는 피해자의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여당은 지금 "당신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비난한다. 부당한 비난이다. 위안부 문제보다 더 중요한 시대적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란 그 시대의 최대 가치를 선별해 밀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다음 정부의 진통이 당시의 공백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엊그제 야당 대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업적을 자랑했다. 2005년 정부 위원회가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권이 살아 있다'고 확인한 것을 말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위안부 협의 의무를 부과한 2011년 헌법재판소의 일명 '부작위(不作爲) 위헌 결정'은 이를 근거로 나왔다. '정부가 피해자 배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를 내팽개친 것은 위헌이니 실천하라'는 것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결정은 2011년에 났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의 위헌 소송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제기됐다. 말로만 배상권 운운하다가 '부작위' 소송을 당한 것은 야당 자신이다.

야당은 정부를 원색 비난하기에 앞서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타결한 한·일 어업 협정도 상기해야 한다. 독도 앞바다의 중간 수역 설정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정부가 일본 경협 자금에 독도를 팔아넘겼다"는 거센 비판을 들었다. 이 비판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10억엔에 혼을 팔아넘겼다"는 막말을 이 정부에 쏟아부어선 안 된다. 여당도 야당이던 당시를 상기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때 "매국(賣國)했다"며 얼마나 정부를 몰아붙였나. 번갈아 물어뜯으니 그들 말대로라면 이 나라 정치판엔 지금 '매국노'뿐이다.

이 정부는 역사를 중시하는 듯하지만 실은 역사에 대한 사유(思惟)가 없는 듯하다. 위안부 해결의 다른 한 축인 배상은 사죄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위안부 배상 요구를 할머니들의 외고집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1991년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이 거대한 반향을 일으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르완다·유고슬라비아 내전(內戰)을 거치면서 전시(戰時) 여성의 성(性) 착취 문제가 1990년대 인권 운동의 주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 후 '위안부 배상'은 피해자들과 인권 운동가들에게 이념으로 다져졌다. 정부는 이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들도 정부를 존중하지 않는다.

다만 기억했으면 한다. 위안부 문제 타결 당일 88세 피해자 할머니는 말했다. "정부가 애쓰고 법이라는 게 있으니까 정부가 하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 이 목소리는 그 후 타결 내용에 대한 거센 반발 속에 묻혔다. 정부에 순응하란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할머니 이야기대로 '정부가 애썼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증오를 축적했다. 상대를 이해하려 하는 대신 일본 정치가의 말 한마디, 삼류(三流) 언론의 글 한 줄까지 들춰내 화내고 흥분했다. 분노를 버팀목으로 25년을 지내오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를 이해해주던 응원단은 곁을 떠나고 서로 삿대질하는 우리만 남았다. 위로와 격려는 사라지고 분노만 역류하고 있다. 우리의 기나긴 25년 분투를 이렇게 어리석게 마무리할 수는 없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