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쉬운 해고? 온종일 카톡하다 집에 가도 못 자른다

최만섭 2016. 1. 13. 09:30

쉬운 해고? 온종일 카톡하다 집에 가도 못 자른다

[한노총이 문제 삼은 '일반해고 지침 초안' 들여다보니]

'쉬운 해고'하려면 법 고쳐야… 직원 퇴출 위한 인사 평가도
법원서 수차례 "부당하다" 판결… 전문가도 "노동계, 잘못된 주장"

2014년 부산에서 개업한 세무사 박모(38)씨는 지난해 여직원 A씨의 해고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사무장 1명과 여직원 4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박씨는 A씨가 근무시간 8시간 중 6시간을 친구들과 '카카오톡' 메시지만 주고받는 등 업무를 소홀히 하자 수차례 경고했다. 그래도 A씨의 행태가 고쳐지지 않자 박씨는 공인노무사를 찾아 A씨의 해고 문제를 상담했지만 "현행법상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5인 이상 사업장이라면 그 정도 사유로는 해고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박씨는 A씨를 해고하기 위해 사무장 B씨를 회유해 한동안 '임시 해고'를 한 뒤 A씨를 퇴출하는 편법을 썼다. 박씨는 "근무를 태만히 해도 해고시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줄 상상도 못 했다. 이후로는 직원들을 계약직으로만 뽑는다"고 했다.

◇"근무시간 8시간 중 6시간 카톡해도 해고 못 해"

한국노총은 지난 11일 '노사정 합의 파탄' 선언을 하면서 정부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일반 해고 지침 초안'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오는 19일까지 정부가 이 지침을 원점에서 협의한다는 입장을 천명하지 않을 경우 노사정위원회 탈퇴 등도 불사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일 "(한국노총의 주장은) 노사정 합의 사항 실천을 무한정 지연시키게 돼 바람직하지 않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노사정 파국 부른 쉬운 해고 논란 정리 표

이처럼 노정 갈등의 핵으로 부상한 일반 해고 지침에 대해 노동 전문가들은 "노동계는 '쉬운 해고'라고 주장하지만 그 같은 프레임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일반 해고 지침만으로는 노동계가 주장하는 '쉬운 해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는 "현행 노동법과 법원 모두 '정당한 해고'에 대해 엄격한 기준과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소위 '쉬운 해고'라는 게 가능하려면 지침이 아니라 현행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침이 쉬운 해고로 이어질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전동현(52) 공인노무사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좀 더 쉽게 해고를 하는 것은 인사 규정이 미비하고 고용주와 근로자 모두 해고 관련 법률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며 "해고 관련 판례를 정리한 정부의 일반 해고 지침을 중소기업에 지키라고 정부가 엄격하게 요구하면 중소기업에서는 오히려 해고를 더 어렵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침은 법원 판례가 토대

지난달 30일 정부가 제시한 일반 해고 지침 초안에는 근로기준법에 정한 '해고의 정당성' 규정과 관련해 ▲근로자의 근무 성적 등이 사회 통념상 고용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객관적으로 불량해야 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 평가를 거쳐야 하는 등 그간 판례로 정립된 내용이 요약 정리돼 있다. 판례를 뛰어넘는 정부의 해석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계는 "근무 성적과 인사 평가가 모두 회사와 직장 상사의 자의에 따라 이뤄지는 만큼 정부 지침은 쉬운 해고를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초안에 언급된 판례를 보면 법원의 판단은 상당히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회사 측이 퇴출 인력 목표 규모를 정하고 퇴출 대상자에 대한 부당한 인사 평가 점수를 지시했을 경우 법원은 이를 부당한 인사권 행사로 판결하고 있다. 한 노동 전문가는 "일반 해고 지침은 곧 쉬운 해고라는 잘못된 논리가 노동계에 퍼지는 바람에 노동 개혁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