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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정치인의 밥그릇

최만섭 2015. 12. 23. 10:39

  • [朝鮮칼럼 The Column] 정치인의 밥그릇
  •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입력 : 2015.12.23 03:20

생존·자리·이권이 지배하면 정치인 밥벌이는 국민적 災殃
정치의 본연은 公共 봉사… 정치가 왜소해진 건 밥벌이 탓
자기 밥그릇 과하게 채우지 않고 철학·비전으로 설득해야 새정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사진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기사님은 목적 장소를 모르시겠다고 했다. '내비'에 찍어보시라고 하자 그제야 꺼져 있던 내비게이션을 켜신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찍는 한글 자모에 오타가 섞여 검색이 더디다. 귓가를 성기게 덮은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이 오래전에 예순을 훌쩍 넘겼다. 200만 명을 헤아린다는 고령 운전자는 이제 별로 낯설지 않다.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희망퇴직 한파가 12월의 추위를 더하고 있다. 말이 좋아 '희망'이지 작가 김훈의 산문 제목처럼 '밥벌이의 지겨움'을 알기도 전에 젊은이들이 퇴직한다. 실업급여 신청자 10명 중 4명이 2030세대라고 한다.

요즘 부쩍 '밥'이 화두다. 청년은 일자리가 부족해 아우성이고, 중년은 밥벌이 기간을 늘리느라 허덕이며, 노년은 100세 시대의 여명을 굶지 않으려 발버둥이다. '집밥'이나 '세끼'를 타이틀로 인기를 끌고 있는 TV 프로그램에서는 모조리 남자가 음식을 한다. 밥 짓기에도 이제는 남녀가 따로 없다. 그만큼 밥그릇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밥벌이는 신성한 일이 되었다.

정치인에게 밥그릇은 의미가 좀 다르다.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건 국민의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종종 자신의 밥과 국민의 밥을 혼동하는 데 있다. 수많은 개혁 논의와 온갖 이합집산을 일삼으며 때로는 통합을, 때로는 낡은 정치 타파를 기치로 내세우지만, 결국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이유는 늘 그 뒤에 웅크린 밥이라는 현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밥은 생존일 수도 있고, 자리일 수도 있으며, 이권일 수도 있다. 어떤 비전이나 명분도 맥을 못 추게 하는 '밥벌이의 무서움'이 정치인을 지배하면 그들의 밥벌이는 더 이상 신성한 것이 아니라 재앙이 되어 국민에게 돌아온다.

얼마 전 청와대가 선거구 획정만 직권 상정하겠다는 국회의장을 향해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라고 하자, 정의화 국회의장은 '(밥그릇이라는 표현은) 아주 저속할 뿐 아니라 합당하지도 않다'고 맞받아쳤다.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법은 국민 밥그릇법, 선거법은 의원 밥그릇법이라는 이분법에 대항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런가 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최재성 의원은 불출마 선언을 하며 '솥단지를 제 손으로 깨뜨린다'는 '분주파부(焚舟破釜)'의 고사를 인용했다. 기득권을 버리고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뜻인 것 같은데 엄밀히 말하면 밥솥을 채워주는 건 국민의 몫이다. 문재인 대표와 등을 돌리고 탈당한 안철수 의원을 두고 '과연 그릇이 될지…'라며 염려하는 사람이 많다. 그중 상당수는 '과연 안 의원이 내 (밥)그릇을 채워줄 수 있을까'를 저울질하고 있을지 모른다.

왜 개각이며 창당이며 모든 정치활동이 선거라는 꼭짓점을 향해 움직이는지, 왜 멀쩡한 정치인과 고위 관료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몰려다니며 홍위병 노릇을 자처하는지 궁금하면 '밥벌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보면 된다. 정치 울타리에서 명망을 쌓은 사람들이 험지를 피해 손쉬운 곳에 안착하려는 것은 밥벌이를 좀 쉽게 해보려는 심산이다. 남의 후광에 의존해서 정치(밥벌이)를 하려면 독자적인 비전이나 철학을 내세워선 안 된다. 출석부에 도장 찍듯 패거리끼리 어깨를 맞대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게 그들 나름의 밥벌이 방식이다.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매일 가족의 식탁을 걱정해야 하는 국민은 정치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로마시대 정치인은 봉급을 받지 않았다. 지금은 돈이 들지 않는 정치를 생각하기 어렵지만 정치란 원래 사익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공공의 운명을 책임지는 명예직 같은 일이었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두 가지 방식을 말했다. 하나는 정치를 '위해서' 사는 것, 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방식이다. 베버는 어느 한 쪽이 옳다는 입장은 아니었으나 보수를 받건 받지 않건 정치의 본연이 공공봉사임은 분명하다.

정치가 왜소해진 건 밥벌이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은 낡은 정치와 결별하며 창당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무엇이 새 정치인지 명료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새 정치란 새 밥그릇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 밥벌이 방식의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밥그릇보다 국민의 밥그릇을 앞세우고, 자기 밥그릇을 과하게 채우려 탐하지 않는
사람들만 새 정치를 열 수 있다.

내년 4월 총선에 나갈 예비 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정치 구직자들이 줄을 잇는다. 어떤 공천 혁명이 들어서도 정치 밥그릇의 성분이 바뀌지 않는 한 공염불이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선거법이 '정치인 생존권 보호법'이 되면 어쩌나 우려를 낳고 있는 요즈음 정치가 자칫 저성장 고령화 시대 최고의 밥벌이 각축장이 될까 걱정이다.



焚舟破釜(분주파부) 입니다

 

焚 불사를 분

舟 배주

破 깨뜨릴 파

釜 가마 부

 

 

釜 가마 부는

가마솥입니다.

 

 『손자병법』 구지편(九地篇)에 나오는 말로

전투에서 지면 타고 돌아갈 배도 없고

 더 이상 밥해 먹을 솥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병사들이 오로지 승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