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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파탄 베네수엘라… '차베스 포퓰리즘'에 등돌렸다

최만섭 2015. 12. 9. 08:48

경제 파탄 베네수엘라… '차베스 포퓰리즘'에 등돌렸다

입력 : 2015.12.08 03:00 | 수정 : 2015.12.08 12:10

[총선서 16년만에 野 압승]

오일머니로 무상의료·교육, 油價 추락하자 경제 치명타… 물가 폭등에 생필품도 못사
"野 승리 땐 복지 사라진다" 대통령 호소에도 민심 싸늘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南美 좌파정권 몰락 줄이어

폭력 선동 등 혐의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베네수엘라 유력 야권 정치인 레오폴드 로페스의 아내 릴리안 틴토리가 6일 투표장 앞에서 투표용지를 들고 “정치범의 자유를 위해”라고 외치고 있다. 그는 야당 지도부와 함께 선거 유세를 하며 현 정권 심판을 호소해왔다.
폭력 선동 등 혐의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베네수엘라 유력 야권 정치인 레오폴드 로페스의 아내 릴리안 틴토리가 6일 투표장 앞에서 투표용지를 들고 “정치범의 자유를 위해”라고 외치고 있다. 그는 야당 지도부와 함께 선거 유세를 하며 현 정권 심판을 호소해왔다. /AP 뉴시스

16년 동안 좌파 정권이 지배해온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우파 성향 야당이 압승했다. 임기 5년의 국회의원(단원제) 167명을 뽑기 위해 6일(현지 시각) 치른 총선에서 야권 연대인 민주연합회의(MUD)가 8일 0시 현재 최소 99석을 얻어 46석에 그친 집권 좌파 정당 통합사회주의당(PSUV)을 제치고 원내 다수당을 차지했다. PSUV가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야권 지도자 엔리케 카프릴레스는 "베네수엘라가 되돌릴 수 없는 승리를 거뒀다"고 말했고, 집권당 소속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도 "모든 선거에서 이길 수는 없다"며 패배를 시인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임기는 2018년까지이고 헌법상 대통령 연임 제한 규정이 없어 이번 총선 결과가 정권 교체는 아니다. 그러나 로이터통신 등은 "의회 주도권을 장악한 야당이 내년에 대통령 중간 평가를 추진하는 등 정권 교체를 위한 사전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살인적인 물가와 치안 부재

6일 총선의 투표 마감 시각은 오후 6시였다. 하지만 전국의 투표소에 몰려든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는 바람에 한 시간 연장됐다. AP 등 주요 외신은 "나라를 파산 상태로 몰고 간 집권당을 심판하려는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소로 몰려들었다"고 보도했다.

경제 상황이 공황에 빠지자 남미에서 가장 뚜렷한 좌파 노선을 걷는 집권당에 민심이 등을 돌렸다. 베네수엘라의 올해 물가상승률은 159%에 달한다. 내년에는 204%가 될 전망이다. 화폐 가치가 휴짓조각에 가까운 초(超)인플레이션이 나타난 것이다. 기초 생필품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 국민이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경제 파탄은 집권 세력이 좌파 포퓰리즘 정책을 대거 도입하고, 시장경제를 박대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차베스는 에너지 기업을 국영화해서 원유 판매 수입을 정부가 독차지하게 만들었다. 차베스가 2013년 암으로 사망하자 뒤를 이어 집권한 마두로는 서민들을 위한다며 군부를 동원해 물건값을 올리려는 기업인들을 체포해 산업 기반을 억눌렀다. 그러다 보니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原油)에 의존하고, 소비재는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갖게 됐다.

그래도 기름값이 비싼 시절에는 어느 정도 경제가 굴러가 무상 교육·의료 등 대규모 복지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유가가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빠른 속도로 몰락하게 됐다. 나라 살림이 어렵다 보니 치안 부재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10만명당 살인으로 사망한 사람은 53.6명(2012년)으로 온두라스에 이어 세계 2위였다.

마두로 정권은 300만명에 달하는 공무원들에게 친(親)정부 집회에 참석을 강요하고 "야당이 이기면 복지 혜택이 사라진다"고 호소하며 표심 붙들기에 나섰지만 민심은 싸늘했다.

남미 좌파 몰락 가속화

서방 언론은 이번 베네수엘라 총선을 계기로 남미에서 좌파가 본격적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집권 시절 쿠바 등 인근 사회주의 국가에 원유를 싼값으로 제공하면서 '좌파 벨트'를 키웠지만 재정난과 총선 참패로 사회주의 노선을 밀어붙이기 어려워졌다.

실정을 거듭하고 있는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인 것 역시 남미식 좌파의 몰락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우파 진영은 지난달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야당 후보인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승리하는 등 점점 세력이 커지고 있다.

향후 베네수엘라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지켜봐야 한다. 마두로가 군부를 동원해 돌발 행동을 벌이거나 의회를 장악한 야권이 개헌(전체 의원의 3분의 2 찬성으로 가능)을 통해 마두로의 조기 축출을 시도해 정국이 혼란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AP통신은 "야당이 집권기였던 1990년대에 실정(失政)을 거듭해 차베스에게 집권 기회를 제공한 만큼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