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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대통령 권력의 逆說

최만섭 2015. 11. 14. 10:01
  • [강천석 칼럼] 대통령 권력의 逆說

입력 : 2015.11.13 22:55 | 수정 : 2015.11.13 23:22

대통령에 비해 너무 작거나 대통령과 너무 먼 대통령 사람들
두려움 망설임 없이 보좌할 사람 곁에 있어야

강천석 논설고문 사진
강천석 논설고문

개헌 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나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처럼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다. 유승민 전(前) 새누리당 원내대표처럼 배신하는 인물로 몰렸던 전과(前科)도 없다. 진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말에 힘이 느껴진다. 숨은 그림 찾기 게임에서 이제껏 찾지 못했던 조각을 찾아내 정국(政局) 전체 윤곽을 가늠할 수 있었다는 반응도 있다.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친박(親朴) 가운데서도 '진실한 친박'을 가리키는 '진박(眞朴)'이라고 한다. 홍 의원은 "5년 단임제 대통령 제도는 이미 죽은 제도가 됐다"고 했다. 김무성 당대표가 오스트리아 방식의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을 꺼냈다가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시킨다"는 대통령의 한 방을 맞고 다음날 무릎을 꿇은 게 작년 10월이다. 대통령이 변했든지 대통령 주변이 크게 달라졌든지 둘 중 하나다. "외치(外治·외교와 국방)를 맡는 대통령과 내치(內治)를 하는 총리로 나누는 제도(이원집정부제)가 5년 단임제보다 정책의 일관성을 살리고 다양한 국민 견해를 수렴할 수 있다"고 나갔다. '반기문 대통령에 친박 총리의 조합(組合)도 나돈다'는 떠보는 말에 "옳다, 그르다를 떠나 가능성은 있다"고 스스럼없이 받았다.

최경환 부총리는 '진박'의 좌장급(座長級)이다. 그도 며칠 전 "5년 단임제 정부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 매우 어려웠다. 앞으로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몇 달 전까지 대통령 주변은 개헌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한데 무슨 소리냐'고 손사래를 쳤다. 대통령의 개헌 가이드 라인이 정말 풀린 것일까.

모두가 대통령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야당 쪽으로도 밀려들지만 정말 두려워하는 쪽은 새누리당 사람들이다. 새누리당 다음 대통령 후보로 한두 번 이름이 오르내렸던 인물일수록 고개가 꺾어지는 각도가 크다. 김무성·김문수·오세훈, 그렇게 보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원래 공손한 인물이지만 더 공손해졌다.

이명박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감옥으로 보낸 김영삼 시대에도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사랑받는 지도자가 되려 하기보다 두려워하는 대상이 되는 게 낫다'는 서양 통치 교과서가 옳다면 대통령은 성공적으로 임기 후반기로 들어서고 있다.

대통령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누리는 콘크리트 지지율이다. 그곳에서 국회의원 명함이라도 파려면 대통령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된다. 유승민 의원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사선(死線)을 통과할 수 있느냐에 시선이 쏠리는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다음 대통령을 꿈꾸는 여당 인사가 TK 지역의 집단적 비토 대상에 오르는 날이면 그 순간 후보 꿈도 접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남 지지와 견줘보는 사람도 있지만 두 현상은 근본이 다르다. 70대 후반 대통령의 퇴임 후 영향력과 60대 중반 대통령의 퇴임 후 영향력은 지속 기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에 대한 두려움이 새누리당 울타리 너머로 번져가는 현상을 이해하려면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작년 말 청와대 비밀 문건 유출 사건이 사나운 불길로 커갈 무렵 대통령은 "나는 겁나거나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 했다. 두려움을 모르는 최고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제왕적(帝王的) 대통령으로 권좌(權座)에 들어서 식물 대통령으로 마감하는 것이 5년 단임 대통령의 정해진 주기(週期)였다. 대통령은 과거와 다른 궤도를 달리고 있다.

대통령이 고립(孤立)된 듯 비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 권력의 역설(逆說)이다. 청와대 안에선 비서실장이 24시간 보좌하고 있고, 청와대 밖에선 국무총리가 총력을 기울여 국정(國政)을 뒤받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는 반론(反論)도 있을 것이다. 국민 눈에 그들은 대통령에 비해 너무 작거나 대통령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국민은 그들이 두려움 없이 대통령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경우 논리 정연한 반론보다 국민의 단순한 직감(直感)이 늘 옳았다.

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4개월 여러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외교·국방·경제·교육 어느 하나 만만한 산이 없다. 개헌은 낭떠러지에 걸린 굽이굽이 길이다. 대통령이 누구와 상의하며, 이 산을 넘고 누구 말을 지도(地圖) 삼아 이 아슬아슬한 길을 무탈하게 걸어갈 수 있을까. 대통령의 책과 어록(語錄)을 뒤적이며 '진실한 사람' '배신' '은혜'의 말뜻이나 헤아리는 사람들이 의지(依支)가 될 턱이 없다. 국민 귀에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이분을 모시고 계속 정치하는 구상을 다듬고 있다'는 일부 친박의 충성스러운 목소리는 오히려 불충(不忠) 하게 들린다.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보다 '국민이 미더워하는 사람'이 대통령 곁을 지킬 때가 됐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