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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읽기] 우리 내부의 가치 통합이 統一의 선결 과제다

최만섭 2015. 12. 28. 17:08

[북한읽기] 우리 내부의 가치 통합이 統一의 선결 과제다

  • 홍관희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입력 : 2015.12.28 03:00

정치적 통합의 필수 전제는 가치와 체제에 대한 동의
北의 '유일 수령제' 대체하려면 남측의 확고한 사상 무장 절실
향후 통일의 호기 오더라도 우리가 준비돼야 주변국도 협조

홍관희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사진
홍관희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정치체제의 통합 사례를 관찰해 온 통합 이론가 칼 도이치(Deutsch)는 '가치와 체제에 대한 동의'가 통합의 필수 전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소련(蘇聯)의 해체는 중앙정부의 공산주의 철권통치를 자치정부들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 대한 티베트의 저항은 불교 이념과 중국식 사회주의 통치 간의 피할 수 없는 가치 대결이 원인이다. 이에 비해 미국이 남북전쟁 이후 다민족 간 '멜팅폿(melting pot)'을 실현한 것은 가치 통합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70년간 분단의 대립과 갈등을 지속해 온 남북한에 '가치 중심 통합' 원칙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북한의 '주체(主體)'에 입각한 유일 수령 체제를 남한의 '자유민주'에 입각한 법치 체제로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남북 통합의 최대 숙제다. 지난 12월 초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도 양측이 지향하는 가치가 충돌했다. 한국은 이산의 아픔을 해소할 목적으로 인권 차원에서 접근했으나, 북한은 수령 체제를 온존시키려는 목적으로 외화 획득 통로인 금강산 관광 재개만을 고집해 결렬되고 말았다.

북한의 혹독한 유일 체제를 대체하기 위해선 우리의 확고한 사상 무장이 절실하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내부가 가치 차원에서 심각하게 분열돼 있는 것은 우리 주도의 통일 노정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진보적 민주주의' 이름으로 북한식 사회주의와 대남혁명전략을 추종했던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후에도 그 잔존 세력이 여전히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더욱이 자유민주체제의 근간이라 할 법치가 위협받고 공권력이 면전에서 공격받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특히 계급적 개념이 짙은 민중민주주의 이름으로 상시적인 법질서 위반이 정당화되고 있어 혼란을 부채질한다. 폭력으로 점철된 11·14 시위가 '불법시위' 대 '과잉진압'의 양비론식 논쟁으로 비화된 것은 본말 전도의 전형적 사례다.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킴으로써 구현될 수 있음을 국민 모두가 통렬히 인지해야 한다.

통일의 호기가 오더라도 우리가 준비돼 있지 않으면 주변국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의 분열을 목도한 주변국이 한국의 통일 역량에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한국 분열'이 지속되면, 유사시 북한 지역에 대한 '분할 통치' 등 강대국 밀약이나 국제 음모가 생겨나 통일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권력 세습 5년 차에 접어든 김정은 정권이 공포정치로 권력을 유지하고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가운데, 북한 내부에서는 '장마당'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경제질서 구축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배급 체제가 수명을 다한 지금, 정권 차원에서 인민 생활을 향상할 목적으로 부득이 시장경제 요소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북한 내에서 시장 요소의 확산으로 중산층이 형성되면, 맹아(萌芽)적 형태의 시민사회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보 유입과 의사소통 확대가 궁극적으로 권력의 통제를 막고 새로운 체제 변동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 내 시장 질서 구축의 성공 여부는 결국 김정은 정권이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사적 소유의 인정은 수령 통치에 대한 정면 도전을 의미하므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만약 2009년 화폐개혁 때처럼 정권이 또다시 강압적으로 부(富)를 갈취하면 주민들이 좌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장마당 확산 이 개혁·개방의 선순환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수령 옹호 세력과 중산층 간 충돌로 체제 경착륙을 불러올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북한 정세 변화에 일희일비하거나 희망대로만 보지 말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다양한 북한 변화 시나리오 대비에 만전을 기하되, 모든 통일 준비가 먼저 남한 사회 내부의 가치 통합으로 뒷받침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