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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司試 존치, 어른 대한민국에 아기옷 입히는 꼴

최만섭 2015. 12. 24. 16:42

[시론] 司試 존치, 어른 대한민국에 아기옷 입히는 꼴

  •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력 : 2015.12.24 03:00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지만 기본적으로 대법원 소속인 사법연수원은 판·검사를 양성하는 직무교육 기관이다. 법률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변호사 교육기관으로는 부적절하다. 변호사 업무를 '서초동' 중심으로 보는 한에서는 로스쿨 제도가 불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을 다루는 영역은 서초동에 한정되지 않는다.

법이라는 텍스트만으로 경제, 사회, 문화, 국제관계 등의 콘텍스트에 덤벼드는 법률가는 법률 환경에 대한 지식의 빈곤 때문에 시장에서 배척당하기 십상이다. 일개 외국 기업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외국에서 국제 분쟁을 제기하고, 국내 기업이 외국 법원에서 제소당하거나 수조원짜리 특허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때 우리 정부나 대기업조차 국내 변호사를 외면하고 외국 변호사를 선호하는 것은 외국어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박지성과 류현진이 영국과 미국의 프로 스포츠 리그에 진출할 때, 국내 변호사가 외국 구단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변호사가 경제 분석이 필요한 공정거래 분쟁에, 의학 전공자가 의료 분쟁에, 이공계 전공자가 특허 분쟁에, 문학 전공자가 표절 분쟁에, 정치외교학 전공자가 영유권 분쟁 또는 국제기구 진출에 뛰어든다면 법학 전공자가 개별 사건을 공부해 가면서 처리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로스쿨 제도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필자가 아는 사례를 소개한다. 변호사가 되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던 패션 전공 학생이 우연히 저작권법 특강을 들은 후 법학에 흥미를 느껴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조만간 패션 분야 전문 법률가가 될 것이다. 래퍼 출신으로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는 열악한 래퍼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법률 지식을 연마하고 있다. 취미로 마술을 배운 로스쿨 학생은 현재 공익법무관 재직 중인데 제대하면 마술협회에서 이보다 더 좋은 변호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들은 아직 기성 변호사에 비해 미약하지만, 조만간 해당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로스쿨 제도가 가져온 변화의 시작이다.

다양한 학부 전공자가 법률가로 진출하는 것은 사시 제도하에서도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합격률 3%인 이 시험에 도전하느라 제 전공을 소홀히 한다면 무늬만 타 전공자일 뿐 사실상 법학 전공자나 다를 바 없다. 로스쿨 도입 이전 대학 도서관마다 고시원이었던 풍경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이때 사시라는 끝 모를 시험의 문을 다시 활짝 열면, 고시 낭인화는 과거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다.

사시 존치에 일부 변호사가 동조하는 속내는 결국 변호사 숫자의 감축에 있고 로스쿨은 그 타깃이 된 것뿐이다. 송무(訟務) 중심으로 보면 변호사 수가 과다한 것이 분명하지만 법률가의 영역을 넓게 보면 아직 그 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장애인 단체,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백만원 수입도 보장받지 못하는 창작자 등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한 곳은
여전히 많다.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법률 환경에서 개인, 기업, 정부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법률가가 필요하다. 사시는 이런 요구를 충족하는 데 로스쿨에 결코 앞설 수 없다. 사람이 성장하면 어릴 때 입던 옷을 입을 수 없다. 이미 어른 몸이 되었는데 과거에 맞지 않아 장롱 속에 넣어둔 옷을 다시 꺼내 입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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