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개혁

[주용중 칼럼] OECD의 충고에 귀 막은 사람들

최만섭 2015. 12. 11. 08:51
  • [주용중 칼럼] OECD의 충고에 귀 막은 사람들

입력 : 2015.12.10 03:20

지난 1년간 조선일보엔 OECD 관련 기사 341건 실려
연금·노동 개혁하라는 충고를 특히 野黨은 줄기차게 외면
OECD가 각국 정치 평가하면 우리 정치권은 몇 위나 할까

주용중 부국장 겸 국제부장
주용중 부국장 겸 국제부장
우리나라는 내년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20주년을 맞는다. 구본영씨는 OECD 초대 대사로 부임하면서 "20년 뒤에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희망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 시스템이 이만큼 자리 잡은 데는 OECD에 29번째로 가입한 공이 크다. 이른바 '선진국 클럽'의 글로벌 모범 사례를 따르려고 나름대로 각 분야에서 애를 써왔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 위기가 1996년 OECD 가입 때문이라는 주장도 한때 퍼졌으나 낭설로 판명 난 지 오래다. 단기 자금 유출입은 OECD 가입 이전에 이미 자유화돼 있었다. 당시 외환 위기는 기업의 과다 차입, 미흡한 금융 감독 체계, 국제 채권자들의 비정상적 군집(群集) 행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조선일보에서 지난 1년간 OECD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를 검색해보니 341건이나 됐다. '교통사고 비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아' '남성의 가사 노동은 OECD 회원국의 3분의 1수준' ' 여성의 초산(初産) 연령 OECD 1위'…. 우리는 어느 틈에 우리 수준을 OECD 회원국들과 일일이 비교해 보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비교가 발전을 낳는다는 점에서 OECD는 우리를 비추는 거울, 그리고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골프 칠 때 'OECD 가입'이란 게임 룰이 유행할 정도로 OECD는 우리와 가까워졌다.

하지만 OECD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기형적이다. 성장률, 실업률, 1인당 구매력 등 경제 관련 수치는 좋은 편이다. 반면 자살률, 노인 빈곤율 등 사회 관련 수치는 얼굴을 못 들 정도로 창피하다. 행복지수는 OECD 34개국 중 27위다. 왜 이렇게 됐을까. OECD 대사를 지낸 허경욱 KDI 교수는 "우리나라는 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만큼 복지 경험이 짧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제일 빠른 데다 가정이 급속도로 해체됐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노인·여성·장애인·아동 등 4대 약자(弱者)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과거처럼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OECD의 2013년 한국사회통합보고서, 2014년 한국경제보고서, 2015년의 구조개혁보고서는 줄기차게 우리 사회의 개혁을 권고하고 있다.

연금 개혁에 대한 주문은 OECD의 단골 메뉴다. 그러나 여야는 6년 후면 세금으로 메워야 할 적자 폭이 현재 수준(2조9000억원)으로 되돌아가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지난 5월 말 통과시켰다. 언 발에 오줌을 눈 격이다. 국민연금은 적자 폭이 점점 커져 2060년이면 바닥이 난다. 그런데도 야당은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오히려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야는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노동 개혁 5개 법안을 끝내 통과시키지 못했다. 정규직·비정규직의 이중 구조 완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를 통한 일자리 늘리기 역시 OECD가 일찍부터 충고했다. 그런데도 야당은 또 발목을 잡았다.

노무현 정권의 경제부총리를 지낸 권오규씨는 OECD 대사로 일한 22개월 동안 17건의 보고서를 서울로 보냈다. OECD의 모범 사례를 국정에 반영하려 했던 그는 "현재 야당이 연금 개혁이나 노동 개혁을 주저하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다. 그는 우리나라 재정 형편상 '보편적 복지'는 무리이며 '족집게 복지'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기업들이 사외이사를 도입하고 주주권 행사 요건을 완화하는 등 지배 구조를 국제 기준에 맞추도록 노력한 배경엔 OECD의 잔소리도 한몫했을 것이다. 지난 10월 OECD 대사를 마치고 돌아온 이시형 외교부 본부대사는 "각 부처 공무원들이 정책을 만들 때 'OECD 팩트북'을 들춰보는 것이 관행이 됐다"고 말했다. 그래야 '증거에 근거한 정책(evidence-based policy)'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거꾸로 '정책에 근거한 증거(policy-based evidence)'에 갇혀 있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례들을 짜깁기해서 정략적 억지 주장을 펴며 유권자들을 홀린다.

OECD는 정치·외교·군사에 관한 통계는 만들지 않고 이런 주제로 회의도 하지 않는다. 만일 OECD가 정치에 관 해서도 각국을 평가하면 우리 정치권은 과연 몇 위를 할까. 우리나라가 올해 OECD에 낸 분담금은 70억원이다. 미국·일본 등에 이어 10위다. OECD 내 발언권도 우리의 경제 규모 수준인 10위 정도로 평가받는다. 그런 우리나라가 OECD의 핵심 권고(key recommendations)를 무시해 다시 위기에 빠진다면 찾아들어 갈 쥐구멍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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