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개혁

[사설] "이렇게 안 팔리는 건 처음" 정치권엔 市場 신음 안 들리나

최만섭 2015. 12. 5. 10:10
  • [사설] "이렇게 안 팔리는 건 처음" 정치권엔 市場 신음 안 들리나

입력 : 2015.12.05 03:23

지난 2일 오후 서울 청량리 도매시장은 을씨년스러웠다. 100m 길이 노변 주차장엔 주차된 차가 10대도 채 안 됐다. 그나마 절반은 상점 차량이었다. 한 시간 동안 시장에서 목격한 행인은 30명이 안 됐다. 이곳은 식음료·세제·과자 등을 도매가격에 파는 곳이다. 몇 년 전까지 전국에서 몰려든 동네 수퍼 주인, 시장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20년 영업해왔다는 한 상인은 "창업 이후 올해가 최악"이라며 "작년이 바닥인가 했더니 올해는 그 절반도 안 된다. 200개들이 커피믹스 1통이 오늘 매출의 전부"라고 했다. 이웃 경동시장과 청과물 도매시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40년 넘게 양파 도매업을 했다는 상인은 "양파를 매일 30㎏씩 사던 음식점들이 요즘 일주일에 10㎏도 안 사간다. 그것도 국산 대신 중국산을 찾는다"고 했다.

조선과 중공업 불황 탓에 거제·울산·창원에선 "외환 위기 때보다 안 좋다"며 울상이다. 거제시 중심가는 대낮에도 인적이 뜸하다. 상인들은 "사람들이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거제시 상점은 올 들어 10월까지 전체의 12%, 1500개가 문을 닫았다. 대기업 직원들이 지갑을 닫은 탓이다. 연말 대목이 왔건만 서민들이 겪는 현장 체감 경기는 유례없이 얼어붙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자영업자들은 "손님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3분기 영세 자영업자는 403만명으로 22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거시 지표만 얼핏 보면 우리 경제는 회복세다. 3분기(7~9월) 경제성장률은 1.3%로 5년 3개월 만에 최고였다. 10월 이후 백화점·할인점 매출은 10% 이상 늘었고, 자동차 판매도 20% 넘게 뛰었다. 주택 분양만 50만가구가 넘어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부동산 시장 과열도 일조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착시(錯視)를 부르는 통계일 뿐이다. 정부가 추경예산을 한꺼번에 풀고, 연말까지 자동차세를 내린 데다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 같은 할인 행사에 나서는 부양책을 총동원한 효과인 것이다.

부양책 약발이 사라지는 내년 초엔 소비·성장 절벽을 피하기 힘들다. 외국 연구 기관들은 내년 한국의 성장률을 2%대로 내려 잡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0%대로 주저앉아 디플레이션 우려도 여전하다. 수출은 11개월 연속 감소했다. 2011년 이후 유지해온 '무역 규모 1조달러 클럽' 지위도 5년 만에 반납할 형편이다. 기업 매출마저 작년 한 해 26조원 줄어 사상 처음 뒷걸음질했다.

문제는 경제가 쪼그라들고 있는데도 경기를 끌어올릴 정책 수단조차 바닥이 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기준 금리는 1.5%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더 이상 정부가 단기 부양책으로 경기를 떠받치기 힘들다. 5년 넘게 3% 안팎의 저(低)성장이 이어지면서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교육비와 주거비 부담만 불어 가계의 소비 여력은 더 위축되고 있다.

코앞에 닥친 소비 절벽, 성장 절벽 사태를 막으려면 과감한 제도 개혁을 통해 기업과 가계가 움직이게 몰아가는 길뿐이다. 소비를 늘리려면 일자리를 만들어 가계 소득을 늘려줘야 한다. 노동 개혁 법안 처리와 임금피크제 도입 등 노동 개혁이 그래서 시급하다. 주거비 부담을 덜어 소비를 늘리려면 전·월세 시장부터 잡아야 한다. 노년층 소비를 늘리려면 집과 땅에 묶인 돈을 쓸 수 있게 주택연금, 농지연금 대상을 늘려야 한다. 기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지지부진한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바닥 경기를 살리는 데 효과가 빠른 SOC 투자는 정부 돈 대신 기업 돈을 끌어들이는 민자 사업을 확 늘려야 한다.

이런 일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앞장서도 될까 말까 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예산 나눠 먹기에만 골몰할 뿐 민생 법안 처리는 미루고 있다. 꼭 필요한 노동 개혁 법안과 서비스산업기본법 등 민생 법안, 기업 구조조정 법안은 연내 처리조차 불투명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해 많은 연구 기관이 지금 한국 경제가 20년 전 불황 초입의 일본과 무서울 정도로 닮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 경제는 예고된 몰락(沒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