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폭력시위, 이젠 끊자] [3] 짓밟히는 질서유지선
1999년 평화시위 정착 위해 최루탄 없애며 처음 도입
2002년 등장한 '차벽' 시위대 공격 목표로 전락
선진국선 가차없는 제재, 일본은 징역형에 처해
지난 주말 서울 도심을 점령한 불법·폭력 시위 때 경찰을 공격한 시위대가 주로 동원한 무기는 철제 사다리와 갈고리를 단 밧줄이었다.
경찰이 폴리스라인(police line· 질서유지선)으로 삼은 경찰 버스 차벽(車壁)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리 준비해 온 장비였다. 시위대는 정치적 집회와 시위가 금지된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로 진출하기 위해 사다리를 버스에 걸쳐 오르고, 갈고리를 경찰 버스에 걸어 줄다리기하듯 끌어당겼다. 이 과정에서 경찰 버스 4~5대가 차벽에서 이탈해 시위대 쪽으로 끌려나오면서 폴리스라인이 무너졌다.
이처럼 폴리스라인이 폭력 시위대의 핵심적인 '공격 목표'가 돼 있는 게 한국의 시위 현실이다. 합법 집회를 보장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치는 폴리스라인이 시위대의 공격으로 툭하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 경찰은 허수아비? 우리나라 시위 현장에선 폴리스라인을 시위대가 조롱하듯 넘나드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3년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한·중 FTA 중단’ 집회에서 경찰(붉은색 원)이 지키고 있지만 풍물패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폴리스라인을 넘고 있다. /남강호 기자
폴리스라인이 처음 도입된 건 1999년이다. 당초 평화 시위 문화를 정착시키자면서 정부도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도입했다. 그런데 최루탄은 사라졌어도 폴리스라인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자 경찰은 2000년 비무장 여경(女警)들을 내세운 일명 '립스틱라인'을 도입했다. 이것 역시 시위대가 여경들을 향해 성(性)희롱 발언과 욕설을 하고 심지어 몸을 더듬는 일이 빈발하면서 실패했다.
고심끝에 정부가 경찰과 과격 시위대를 아예 일정 거리 이상 떨어뜨려 놓는 방안을 궁리해냈다. 그게 바로 차벽이다. 경찰과 시위대가 직접 부닥치면 어김없이 폭력사태로 번지는 한국적 시위 문화가 만들어낸 질서유지선이자 안전선인 셈이다.
경찰 버스를 잇닿게 주차하는 형태의 차벽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여중생 추모 집회 때였다. 노무현 정부는 차벽이 경찰과 시위대의 피해를 줄이는 묘안(妙案)처럼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허물어보려는 시위대의 끈질긴 공격을 받았다.
한국에선 차로(車路)에 설정된 폴리스라인도 무시되기 일쑤다. 집회·시위는 원칙적으로 신고만 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차로 행진은 경찰이 허가한 차선 범위 내에서 할 수 있지만 한국 시위대는 차로에 설정된 폴리스라인을 무시하고 도로 전체를 점거하는 일이 다반사다. 지난 4~5월 세월호 1주기 관련 집회·시위와 지난 14일 시위 때도 어김없이 서울 한복판의 세종대로와 종로 등의 전(全) 차로가 시위대에 점거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넘지 않으면 차벽을 설치할 필요도 없고, 물대포를 쏠 일도 없다"고 말했다.
- 연행되는 의원 - 미국에선 폴리스라인을 무단으로 넘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체포한다. 2013년 10월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민법 개정 촉구 시위를 벌이던 찰스 랭글(왼쪽에서 셋째) 하원 의원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랭글 의원 말고도 하원 의원 7명이 더 연행됐다. /AP 뉴시스
시민의 통행을 전면적으로 막는 차벽은 위헌(違憲)이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들어 차벽 자체를 불법(不法)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헌재나 법원은 일반 시민의 통행을 원천 차단하는 수준의 광범위한 차벽만 아니면 차벽 설치 자체는 위헌·위법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화적이지 않은 의사 표현은 비정상적인 것이고, 이는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폭력과 불법으로 치닫는 한국 시위가 평화적인 의사 표현의 수단으로 정상화되기 위해선 가장 먼저 폴리스라인 준수 원칙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