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 필요성 공감하지만 노조가 반발할까봐 망설여
그나마 농협금융지주만 개인 평가 방안 마련 나서
결집력 좋고 발언권 강한 은행노조 "절대 수용 못해"
최근 서울 강북의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 지점장과 고참 차장 간에 말다툼이 있었다. 올해로 8년째 차장 직급에서 승진을 못하고 있는 A차장이 하루가 멀다고 외근을 나가서 종일 자리를 비우는 통에 다른 직원들 업무에 과부하가 걸렸다.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차장이 사실상 업무를 놓다시피 하는 걸 참다못한 일부 직원들이 지점장에게 불만을 터뜨렸고, 지점장이 "선배답게 처신하라"고 주의를 주자 A차장이 대들면서 일이 벌어졌다.금융 당국이 A차장 같은 '베짱이 은행원'을 걸러내기 위해 임금에서 성과급 비중을 높인 성과주의를 도입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은행들은 노조와의 관계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은행 경영진, "성과주의 하긴 할 건데…"
시중 은행에는 승진을 포기하고 대충 일하면서 고액 연봉을 챙기는 '승진 포기자(승포자)'들이 적지 않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은행권의 성과급이 시늉만 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별 평가는 하지 않고 지점별, 부서별 집단 평가만 하고 있다. 이러니 지점 동료나 후배들에게 업무 부담을 주면서 베짱이같이 근무해도 월급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은행들의 생산성과 수익성 악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을 절감하고 있는 은행들은 금융 당국이 "성과주의를 확산하라"는 드라이브를 걸고 나서자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최근 "은행장들을 만나보니 성과주의 도입의 필요성을 다 공감하고 있더라"고 했다. 하지만, 은행장들은 자신들의 임기 중에 노조와 마찰을 일으킬 일을 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은행 임원은 "성과주의 확산이 필요하다. 금융 당국 말이 백번 맞다. 그런데 얼마나 시끄럽겠느냐"고 말했다.
그나마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농협금융지주 정도다. 김용환 회장이 최근 "개인 평가 구체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실무진에 지시를 내렸다. 연말 평가부터는 지주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인실적평가를 해서 근무 성적에 반영할 계획이다. 지주 관계자는 "지주부터 시작한 다음 결과를 보고 계열사 전체로 확대할지 노조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노조와의 마찰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개인 평가를 해서 공개하는 자가진단 서비스를 한다고 했다가 노조의 거센 반발에 후퇴한 적이 있다. 당시 노조는 대번에 담당 부행장의 출근을 저지하면서 강경 투쟁에 나섰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개인 실적을 스스로 자가진단할 수 있게만 하고 성과급에는 반영하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저렇게 세게 나오는데 실제로 성과급을 강화한다고 하면 상황이 어떻겠느냐"면서 "노조와 합의할 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은행 노조들, "성과주의 확산 막겠다"
은행권 노조들은 벌써부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은행권 노조들은 전국금융산업노조조합(금융노조)에 속해 있어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파업 등을 강행하기 때문에 결집력이 좋고 발언권이 강하다. 최근 은행원 개인 평가 및 성과주의 분위기가 조성되자 노조가 먼저 엄포를 놓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한 은행 노조간부는 "은행 측에 개인별 평가를 하고 이를 연봉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이미 여러 루트로 전달한 상태"라고 말했다.
당국도 노조가 가장 걸림돌인 사실을 안다. 진웅섭 원장은 "성과주의 특성상 노조의 반발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노조의 반발을 감안해 성과주의 확산 속도를 조정할 생각이다. 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에서 모범 사례를 만들어 시중 은행으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이고, 비노조원에 대해 100% 도입한 뒤 노조 합의가 필요한 일반 직원으로 넓혀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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