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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 미국의 바다, 중국의 바다

최만섭 2015. 11. 7. 10:57

[송희영 칼럼] 미국의 바다, 중국의 바다

  • 송희영 주필

입력 : 2015.11.07 03:20

스페인과 전쟁해 태평양 장악 후 美, 신흥국에서 제국으로 발돋움
떠오르는 中은 "태평양 나눠 갖자"
정치 스페인, 경제 미국에 기댔던 쿠바, 갈팡질팡하다 최빈국 전락…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에 경종

송희영 주필
송희영 주필
1898년 4월에 터진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은 언론이 부추겼다. 그해 2월 쿠바 아바나항구에 정박 중인 미국 군함이 의문의 폭발사고로 침몰했다. 255명의 미군 수병이 사망한 원인 모를 참사였다.

그러나 퓰리처나 허스트 같은 미국 언론인들은 쿠바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의 소행이라고 단정했다. '암살자!'라는 제목을 신문 전면에 매번 큼지막하게 걸었다. 선전포고를 부추기는 노골적인 선동이었다. 미국 의회는 결국 70일 만에 스페인을 상대로 전쟁을 결정했다.

미국·스페인 전쟁은 미국이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장악하는 결정적 기회를 제공했다. 미국은 쿠바와 필리핀, 괌 같은 주요 거점에서 스페인을 몰아냈다. 이 전쟁에는 남북전쟁에서 서로 적(敵)으로 싸웠던 미국인들의 아들 세대가 참전했다. 아들들이 손을 잡고 '비겁한 암살자'를 징벌하는 '정의로운 싸움'에서 승리하자 당시 막 신흥국으로 떠오르던 미국의 국가 에너지는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식 제국주의가 전 세계에 날개를 활짝 펼치게 된 것이다.

110년이 흐른 뒤 이번엔 중국이 태평양 귀퉁이에 발을 넣기 시작했다. 남중국해 암초 7곳에 중국제 인공섬이 만들어졌다. 3000m짜리 활주로 2곳 외에 헬기장, 5~6층 빌딩도 들어섰다. 레이더·대공포를 설치할 움직임도 있는 모양이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이 잠시 점거했던 바다다. 하지만 지난 70년은 아무도 도전하지 못했던 미국의 안마당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남중국해를 '아시아의 지중해'라고 부른다. 자원·상품 이동 등 경제의 젖줄이어서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는 바다라는 말이다.

반면 중국으로서는 이곳이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중국의 북쪽은 한국·일본·대만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다. 중국 전투기나 함정이 태평양으로 나갈 때 사전 허가를 받거나 실시간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남중국해에 거점을 마련하면 태평양 루트가 확보되는 전략 요충지인 것이다.

언론 보도를 검색해보니 중국이 태평양에 처음 관심을 표시한 것은 2006년이었다. 중국 해군 사령관이 당시의 키팅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에게 "태평양을 둘로 분할하자"고 제안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이어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세계 2위 경제대국 등극을 맛보면서 남중국해는 중국의 6개 '핵심적 이익'중 세 번째로 꼽혔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이 등장한 뒤 태평양의 등급은 또 한 번 상승한다. 서쪽 대륙으로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을 전개하면서 동쪽으로는 태평양 진출 전략을 추진하는 모양새이다. 시 주석은 2013년 캘리포니아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새로운 대국(大國)관계'를 제안하며 "넓은 태평양에는 중국과 미국 두 대국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다"고 했다. 이런 떠보기에 오바마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시 주석은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똑같은 뜻을 미국에 전했다.

전략가들은 강대국이 되려면 자기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앞바다(Midland Sea)'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로마 제국은 지중해를 지배했고, 영국도 지중해와 대서양을 장악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됐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지중해와 흑해, 구소련은 흑해와 발트해·오호츠크해를 자신들만의 앞바다로 삼았다.

강대국 패권이 바뀌면서 바다를 둘러싼 전쟁이 치열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바다 전쟁에서 최대의 희생은 2차대전 때 대서양에서 나왔다. 6년 전쟁에서 3500척 이상의 연합국 선박, 780척 이상의 독일 U-보트가 대서양에 침몰했다. 연합국 측 8만5000명, 독일인 3만명이 그곳에 수장(水葬)됐다. 참혹한 희생 끝에 영국은 대서양 지배권을 미국에 넘겼다.

얼핏 보면 넓은 바다는 여러 나라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설탕에 이어 원유와 자동차가 더 많이 바다를 건너면서 바다의 가치는 갈수록 달라졌다. 게다가 바다의 오랜 역사를 보면 결정적 순간에는 합리적 논리나 국제 규범보다는 힘(파워)이 바로 정의(正義)라는 것을 일깨워 주곤 했다.

미국·스페인 전쟁 무렵 쿠바는 스페인 지배 아래 있었지만 경제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담배, 설탕 등 쿠바산 수출품 90%가 미국으로 팔려갔고, 쿠바의 수입품 40%는 미국서 들어갔다. 정치는 스페인에, 경제는 미국에 기대고 있었다. 미국과 동맹을 맺고서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점점 높아만 가는 우리의 처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쿠바는 당시 어떤 독립운동도 성공하지 못했다. 국민이 미국파와 스페인파로 분열돼 양쪽 눈치를 보며 스스로 자립할 힘을 키우지 못했다. 쿠바는 스페인에서 독립한 뒤에도 경제적으로는 미국 식민지로 전락했다. 쿠데타와 사회 혼란, 이념 싸움이 이어지면서 100년 세월이 흐른 지금껏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남아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당당하게 홀로서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던 쿠바의 비극(悲劇)을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