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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교과서, 천천히 서두르라

최만섭 2015. 10. 24. 11:10

[강천석 칼럼] 교과서, 천천히 서두르라

입력 : 2015.10.23 23:12 | 수정 : 2015.10.23 23:30

檢定 한국사는 偏向에 앞서 3流라는 게 문제
교학사 교과서 실패 거듭 말고 여러 가능성 열어놔야

강천석 논설고문
강천석 논설고문

현행 한국사 검정 교과서는 재미가 없다. 편향(偏向)은 그다음 문제다. 역사 수업 시간에 졸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이 많다는 게 헛소문이 아니었다. 역사(History)는 그 자체가 스토리(Story)이기 때문에 억지로 재미난 이야기를 꾸며낼 필요가 없다. 모래를 쪄 찰기 자르르 흐르는 쌀밥을 짓는 건 기적이다. 그럼 쌀을 쪄 모래 밥을 짓는 건 뭐라 불러야 하나. 무능(無能)이란 단어밖에 없다. 재미하고 담 쌓은 지루한 교과서 탓에 학생들이 두고두고 역사를 멀리할까 걱정이다.

엊그제 이기동 교수의 조선일보 인터뷰를 읽고 궁금증이 몇 가지 풀렸다. 검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교수 대부분이 민중사관(民衆史觀)에 붙들린 교수이고, 그나마 대표급(代表級)은 뒤로 빠졌다고 한다. 왜 대표급은 뒤로 빠졌을까. 중·고등학생용 역사 개설(槪說)을 쓰는 건 시시하다고 여겼을까. 그렇다면 큰 착각이다. 어느 분야건 개설은 아무나 무턱대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야만 유려(流麗)한 필치로 쉽고 균형 잡힌 개설을 풀어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검정 교과서의 멋대가리 없는 문장에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馬遷)이나 '로마제국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은 당대(當代)의 대문장가였다. 훌륭한 역사서를 곁에 두고 읽는 즐거움의 하나는 좋은 문장을 접하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겠다고 뜻을 세운 학생이라면 한국사 검정 교과서를 멀리하는 게 좋을 듯싶다.

검정 교과서 편향 논란의 핵심인 현대사 부분도 그들 작품이다. 서양에선 역량이 뛰어난 학자들도 현대사 집필에 나서려면 몇 번 망설인다. 어설픈 각오로 도전했다 성과가 시원찮으면 긴 세월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기 때문이다. 현대사 연구의 어려움은 고대사 연구의 어려움과 이유가 반대다. 현대사는 자료가 흘러넘쳐서 탈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끌어모은 자료의 99%가 허위·날조·편견·일방적 주장·조각난 부스러기들이라는 데 있다.

현대사 전문가의 필수 요건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진짜 자료를 가려내는 감식안(鑑識眼)이다. 이런 눈을 갖지 못한 저자가 쓴 현대사 책은 출판된 지 몇 년도 안 돼 책값이 아니라 종이 값으로 고물상에 넘겨진다. 책이 딛고 선 기초 사료가 허위로 드러나 제풀에 주저앉기 때문이다. 북한 역사학은 김일성이 신(神)이 된 이후 '역사를 찾는 역사학'이 아니라 '역사를 만드는 역사학'으로 퇴화(退化)했다. 검정 교과서 집필자들이 북한 사료(史料)의 진위(眞僞)를 가리겠다는 생각이라도 가졌을까.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마르크스학파 역사가다. 현대 세계를 다룬 그의 저작 '극단의 시대(Age of Extremes 1914~1991)'는 현대사는 고전(古典) 반열에 오르기 힘들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현대의 고전이 됐다. 검정 교과서 집필자들을 향해 맞춤한 듯한 홉스봄의 말이 있다. "꾸물거리는 버릇 덕을 톡톡히 봤어.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나…."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 집필 사료를 쌓아두고도 5년 동안이나 게으름을 피웠다. 그 사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홉스봄이 부지런해서 계획대로 집필을 밀고 나갔다면 '극단의 시대'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고전 반열에 오르긴커녕 종이 값에 고물상에게 넘겨졌을지 모른다. 검정 교과서가 책값에 팔리느냐 종이 값에 넘겨지느냐를 결정하는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다. 북한은 검정 교과서 집필자들 기대만큼 오래 버티긴 힘든 처지다. 그날이 오면 검정 교과서는 종이 값만 받겠다 해도 살 사람이 없을 것이다.

비상(砒霜)도 약(藥)이라는 말이 있다. 목숨을 끊는 사약(賜藥)의 원료이지만 극미량(極微量)을 섞으면 때로 몸을 보(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민중사관은 비상과 같다. 한 방울 떨어뜨리면 역사의 진행에서 대중이 차지하는 역할을 보는 눈을 밝혀주는 효험이 있다. 그러다 잘못 쏟으면 목숨을 앗아간다. 검정 교과서 속 비상은 적량(適量)을 초과했다. 대상이 청소년이란 걸 감안하면 그들의 '생각의 틀'을 망가뜨리지 않았나 염려가 된다.

역사 교과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바꾸면 이 모든 해악(害惡)에서 벗어날 길이 열릴까. 정부 스케줄대로 밀고 나가 20여명의 새 집필진을 끌어모아 한 집필자가 20여 페이지씩 쓱싹쓱싹 써내려가면 어떨까. 그럼 학생들은 2017년 봄 학기 기품(氣品) 있고 쉬운 문장으로 쓴 정확하고 재밌고 균형 잡힌 새 국정교과서를 받아볼 수 있을까.


역사를 쓰는 일은 전기밥통으로 밥을 짓는 일과 다르다. 최소 한의 숙성(熟成) 기간이 필요하다. 교학사 교과서의 참패(慘敗)가 불과 몇 해 전이다. 국정(國定)은 과거의 대안(代案)이었다. 지금도 대안일 수 있을까. 쫓기듯 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 "천천히 서두르라." 1950년대 냉전(冷戰)의 살얼음판에서 어느 미국 대통령이 입에 달고 다녔다는 이 말은 현재 이곳에서도 유효(有效)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