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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시조] 變調.73-정수자

최만섭 2015. 10. 16. 15:24

[가슴으로 읽는 시조] 變調.73

  • 정수자 시조시인

입력 : 2015.10.16 03:00

가슴으로 읽는 시조 일러스트

變調.73

당신이 내 속에서 너무 크게 자라나면
내 영혼은 오히려 새가 되어 떠나고
당신은 또 내가 되어 창을 내기 바쁠까
눈 감고 돌아서도 훤히 뵈는 그 음성
그렇지, 내가 울어 너 꽃으로 돋아나면
우리들 기나긴 얘긴 천근일까, 만근일까


ㅡ류제하(1940~1991)

푸른 하늘을 섬기고 싶은 나날. 햇살이 아까워 밖으로 나간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져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너무 좋은 날씨 앞에선 슬며시 괴는 슬픔도 있다. 이 좋은 날을 두고 아프거나 먼저 떠난 누군가가 늑골에 스미는 것이다.

일찍이 정형의 변조(變調)를 꾀한 시인도 많이 아프다 떠났다. 그중 맑은 연시풍의 시조 앞에 서니 투명한 행간을 새가 건너다닌다. '당신'이 너무 커지면 '내 영혼은 오히려 새가 되어 떠나고' 그러면 '당신은 또 내가 되어 창을 내기 바쁠까'라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게 더 큰 사랑일까. 이즘의 '밀당'과는 격이 다른 듯한 마음 끝에서 '내가 울어 너 꽃으로' 돋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조금씩 길어지는 가을밤, '우리들 기나긴 얘긴' 그렇게 또 피어나리. 하얗게 서리가 내릴 때까지 '천근일까, 만근일까' 재보는 것도 좋으리.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