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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시] 유리창

최만섭 2015. 10. 12. 15:28

유리창-문태준 시인

누군가 또박또박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누군가 내 눈을 감기고 누군가 내 입에 재갈을 물린다
엄청난 우레도 지나가고 잔잔한 미풍도 흘러갔다
얕은 계곡과 녹색 잎사귀들이 비스듬히 햇빛 쪽으로 기운다
어떤 후회나 흔들림도 없이
누군가 또박또박 내 밖으로 걸어 나간다

누군가 나를 응시한다, 아주 우호적으로 한 무리 양 떼가 지나간다
나는 읽힌다

―송종규(1952~ )

[가슴으로 읽는 시] 유리창
우리는 바깥과 매순간 마주하고 있다. 바깥은 스쳐 가지만 때로는 우리의 내부를 유심하게 살피고 때로는 영향을 끼친다. 가령 싱싱한 아침의 한 잎사귀, 잘 익은 들판, 햇살, 붉은 한 알의 사과, 가을밤의 냉담한 공기 등은 우리와 마주하면서 우리의 내부에 영향을 끼친다. 이것들은 우리를 읽고,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그러고 보면 유리창 너머의 풍경은 매우 입체적이다. 또한 또렷하고 정밀하다. 또박또박 우리의 내부로 걸어 들어왔다 또박또박 걸어 나간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아주 객관적으로 우리를 읽는다. 마치 이 가을이 우리 모두에게 고르게 작용하듯이.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