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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안은주

최만섭 2015. 10. 10. 09:34

입력 : 2015.10.09 03:00

둥글레

산비탈 무덤가에 올망졸망 둥글레들
이끼를 이불 삼아 일가 이룬 그늘에
바람도 한 식구처럼 무시로 드나든다


뛰노는 햇살 한줌 빌려 키운 그 몸을
아홉 번 찌고 말려 찻물을 끓여내어
찻잔 속 둥그런 품에 두 눈을 담가본다


둥글게 산다는 건 손톱을 다듬는 일
따스한 입담들을 차반 가득 올리면서
갱년의 마른 고개를 너울너울 넘는다

ㅡ인은주(1966~ )

가슴으로 읽는 시조 일러스트

따끈한 차가 당기는 요즘. 차 마시며 '입담' 풀기 좋은 오후면 햇살도 명도를 한층 높인다. 그럴 때 식당 같은 데서도 쉽게 만나는 둥글레차. 특유의 구수한 맛 때문인지 가을이면 더 둥글게 감겨오는 느낌이 푸근하다. 까다롭지 않으면서 몸을 따듯이 해주는 품성도 편안한 이웃 아낙 같다.

고른 햇살 공양에도 자주 쓸쓸해지는 가을날. '갱년의 마른 고개'라면 더 마를 수 있으니 '너울너울 넘는' 여유가 필요하다. 차를 마시며 덥힌 속을 풀어내거나 뾰족해진 마음의 '손톱을 다듬는' 것도 하나의 방법. 자신을 둥글리며 조금씩 숙이면 '아홉 번'이나 '찌고 말려' 차가 된다는 둥글레처럼 푸근해지기도 하리라. 오늘 당신 앞에 오른 둥글레차 같은 둥근 가을을 바라듯 이 시린 하늘빛을 오래 마셔본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