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김기림(金起林.1908.5.11∼?) 시인

최만섭 2015. 9. 29. 21:49

김기림(金起林.1908.5.11∼?)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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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와 활동.

 시인, 문학평론가. 본명 인손(仁孫), 필명 편석촌(片石村), 함북 학성군 학중(鶴中) 출생. 1921년 서울 보성고보(普成高普) 중퇴, 1930년 일본 니혼(日本)대학 문학예술과 졸업, 이후 도호쿠(東北)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고향인 함경도의 경성중학에서 영어 교사를 하다가 1930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 활약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특히 시 창작과 비평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문학 활동은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한 33년경부터 본격화되어, I.A.리처즈의 주지주의(主知主義) 문학론에 근거한 모더니즘의 새로운 경향을 소개하고, 그러한 경향에 맞추어 창작에 임하기도 하였다. 1935년 장시 <기상도>를 발표하고 이어서 발간된 첫 시집 <기상도(氣象圖)>(1936)는 현대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주지적인 성격, 회화적 이미지, 문명 비판적 의식 등을 포함한 장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시집 <태양(太陽)의 풍속(風俗)>(39)에서는 이미지즘이 더욱 분명한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8ㆍ15광복 후 월남하였으며 [조선 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정치주의적인 시를 주장하였고, 서울대학ㆍ연세대학ㆍ중앙대학 등에서 문학을 강의하다가 6ㆍ25전쟁 때 납북되었다. 월북 작가로 분류되었다가 1988년 3월 해금 되었다.

 1990년 6월 9일 서울 보성고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김광균, 구상, 조병화, 김규동, 박태진 등 김기림의 동료와 그로부터 시를 배웠던 원로시인들에 의해 세워진 이 시비에는 그의 대표 시 <바다와 나비>가 새겨 있다.

2. 시인과 지식인 

 시인은 순결한 영혼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마음이 청정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면 그 청정이란 무엇일까? 첫째는 어린아이 와 같이 천진난만한 마음이요. 둘째는 선정(禪定)이다. 속정(俗情)을 끊고 마음을 가라앉힌 상태를 말한다. 김기림이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은 후자다. 김기림은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은 지성을 갖춘 인간의 사유와 행위이기 때문이다.  

 “문학을 하려거든, 시인이 되려거든 우선 물리, 화학, 수학, 역사, 영어 이것 모두를 착실히 잘하는 것이 급선무다.” “누구든지 서정시 한두 편은 쓸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시인이 되기 어렵고 논문 한두 편 썼다고 비평가가 되게 아니다.”라는 김기림의 주장을 음미하면서, 나는 그가 문인이기보다는 지식인으로서 살고자 하였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3. 김기림의 문학세계.

  김기림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한국적 모더니즘 문학 운동을 선언하고, 자연발생적 시를 배격하고 주지성을 강조하였으며, 감상성을 거부하면서 문명 비평의 정신을 앙양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론과 창작을 겸한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로서 활약하였다. 김기림은 30년대 모더니스트 시인으로서 우리 문학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그는 이전의 한국시에 대해 두 가지의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하나는 1920년대 전반기 시단의 주류를 이룬 낭만주의 시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20년대 후반기 시단의 주류를 이룬 사회주의 시에 대한 것이다. 그는 과거의 낭만주의 시가 감수성의 분열 상태를 일으켰다고 보고 그 극복책으로서 형이상학적인 시의 이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이것은 물론 외국문학이론에 힘입은 것이지만 어떻든 우리 시가 나아가야 할 또 하나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이바지한 셈이 된다.  

 한편, 김기림은 사회주의 문학에 대해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가차 없는 비판을 가했다. 이 부분은 임화(林和)와의 기술주의 논쟁 속에 비교적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김기림은 이미지스트[Imagist] 시인들처럼 단순한 감각적 이미지들을 의미와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시의 형이상학을 구축하고자 했는데 그의 이러한 시적 인식 태도는 이데올로기의 경직화 현상을 빚은 프로 파 시인들과는 판이한 양상을 보여 주었다.

*‘김시태 한양대 교수, 동아일보(1988. 1. 19)’에서 인용.

4. 김기림의 대표작.

   김기림은 절반의 성공을 이룬 시인으로 평가된다. 김기림의 시론보다 시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 ‘감상적인 로맨티시즘 부정’이라는 시론의 주장과는 달리 시에서의 농후한 감상성, 문명 비판의 차원이 피상적인 점 등 때문이다. 특히 ‘모더니즘론’은 김기림을 평가하는 데 핵심적인 사항이 된다. 평가의 핵심은, 일제 말기 김기림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피상적 모더니스트’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냐, 아니면 초기부터 가졌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식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냐에 있다.

   김기림의 작품은 시적 공감과 심정의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세계를 그린 김기림다운 일련의 작품인 ‘공동묘지’ ‘못’ 등으로 평가해야만 하며 해방공간에서의 김기림의 좌파 활동 역시 1930년대 초기부터 김기림이 지향했던 ‘지성’과 ‘현실 간여’의 인식론적 지평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일제 말기 ‘모더니즘론’ 또한 1930년대 초기 모더니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제목 : 바다와 나비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는 1920년대 낭만주의 병적 감상성과 경향 파의 정치적 관념을 부정한 이른바 모더니즘 운동의 대표작이다. 초기 시 <기상도>에서 자주 보이던 낯선 외래어의 사용이나 경박함이 배제되고,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연약한 나비와 광활한 바다와의 대비를 통해 `근대`라는 엄청난 위력 앞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1930년대 후반 한국 모더니스트의 자화상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이 시는 영국의 대표적인 시인 `S. 스펜더`의 시 <바다의 풍경> 제3연과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 그의 시에서는 두 마리의 나비가 익사하는데, 김기림의 시에서는 나비가 바다로 내려갔다가 지쳐서 되돌아온다. `나비`는 생명체 곧 인간을, `바다`는 죽음 또는 영원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제목 : 공동묘지.

일요일 아침마다 양지 바닥에는
무덤들이 버섯처럼 일제히 돋아난다

상여는 늘 거리를 돌아다 보면서
언덕으로 끌려 올라가곤 하였다

아무 무덤도 입을 벌리지 않도록 봉해 버렸건만
묵시록의 나팔 소리를 기다리는가 보아서
바람소리에조차 모두들 귀를 쭝그린다

호수가 우는 달밤에는
등을 일으키고 넋없이 바다를 굽어본다.

 `공동묘지`에 나타나는 무덤의 이미지는 묵시론 적인 예언자의 목소리를 깔고 있을 뿐 아니라 역동적인 생명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늘 돌아다보면서 끌려 올라가는 상여’의 이미지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힘으로 끌리어가는 피동성과 죽음의 이미지를 거느린다. 입을 벌리지 못하도록 강제 당한 무덤의 이미지에는 강제성과 굴욕 성이 있다. 그러나 그 무덤은 ‘묵시론 적인 나팔 소리’에 귀를 쫑긋하는 내적 에너지와 생명력을 가진 것이다. 호수가 우는 달밤에 등을 일으키는 무덤은 신비적이고 미묘한 분위기를 아우른다. ‘넋 없이 바다를 굽어보는’ 무덤 이미지에는 예언자의 시선이 깔렸다. 이 같은 예언자적이고 엄숙한 ‘죽음’의 이미지는 일제 말기를 살면서 시의 장래를 예견하고 우리말의 운명을 조심스럽게 낙관했던 지식인 김기림 목소리의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김기림의 예언자적 인식과 침묵의 수사(조영복/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에서 인용.

5. 시인의 임무.

 사람들은 내게 “당신은 왜 일상을 그리지 못하는가?” “당신은 왜 김소월처럼 아름다운 서정시를 창작하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 이 땅에 시인들은 일상을 김소월같이 노래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기림은 집안에서 ‘감상적인 로맨티시즘’에 젖어서 일상을 표현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집 밖으로 뛰쳐나가 일터에서, 거리에서 현실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집안에서 창작을 하는 시인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집 밖에서 현실에 비판적으로 간여하는 시인(詩人)은 ‘무엇을 쓸 것인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보다는 무엇을 그려야 하느냐에 일생을 바친 김기림 같은 시인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을까? 시대의 아픔과 부조리를 온몸과 마음으로 고민하는 것이 시인의 사명임을 생각하면, 죽어가는 인간성과 파괴되고 있는 자연을 외면하는 것은 시인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기림은 `시의 장래`에서 시인의 임무를 ‘내일의 발견’이며 ‘생존의 신념’이라고 정의 했다. 나는 그의 절박한 물음을 외면할 수가 없다. “내일을 예감하고 생존의 신념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당신은 무었을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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