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단상(斷想)

최만섭 2015. 9. 29. 21:32


작성자 최만섭
작성일 2007-11-2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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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상(斷想)

                                                                                             


1.자식 포기 각서를 쓰고 연로한 부모를 추운 거리로 내모는 중년들의 이야기, 이른바 현대판 고려장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고 나는 가슴에서 치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 그림은 불효자의 가슴에 그려진 어머니의 가련한 형상이며 나의 미래의 모습이며, 수락산에서 만난 불쌍한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수락산 입구는 검은 그림자로 춥고 무겁게 시작되고 있었다.
벤치에선 회색 누더기를 거친 노파가 때 묻은 절편으로 늦은 아침을 들고 있다.
초겨울 산에서 맞는 황혼은 서럽고 불쌍하다. 


두 번의 현기증을 아내의 부축으로 견디며 꼴딱 고개에 올랐다.
어둠 속에서 불행한 여인의 울음소리에 눈물 흘리며
햇빛이 쏟아 붓는 당혹감에 미소를 지울 때
희망은 도망치듯 하산하였다.'

2. 습관대로 나는 전철역 신문 가판대에서 영자신문을 한 부 샀다. `오늘은 북문에서 오시 내요?`.` 네? 아저씨 건강하시죠?` 우리는 지난 십 년간 똑같은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남문을 이용한 적이 없는데, 왜 그는 내가 남문을 사용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는 머리까지 차는 긴 나무 지팡이에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지친 몸을 지탱하고 위태롭게 서 있었다. 나는 이 가련한 70대 노인을 안쓰럽게 보고 있지만 그의 처지에서 보면 자신은 지난 십 년 동안 단 하루도 앓아누운 적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다. 결국, 우리의 인사는 상대에 대한 배려다.

나는 영자신문에 기재된 영어 작문 문제를 영영사전, 영한사전, 한영사전 등을 찾아가며 작성하였다. 영작문을 할 때마다 나는 20대로 돌아가 첫사랑 여인에게 연애편지를 쓸때 처럼 가슴이 설랜다. .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하여 그녀를 감동시킬까?.` 이렇게 완성된 문장(文章)은 창조된 번역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영어공부를 하면서 내가 느끼는 점은 이 세상에는 본래 창조 적인 학문과 모방 적인 학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명사를 공부하는 사람과 고유 명사를 외우는 사람이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퇴근 전철 안에서 나는 콘스탄틴 커다피의 시를 소설화한 200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기 시작했다.

"어째서 모든 거리와 광장이 그렇게도 빨리 텅 비어 있는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깊은 생각에 잠겨 다시 집으로 향하는가?
저녁이 되었어도 야만인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이 변경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더는 야만인들이 없다고 말했다.
야만인들이 없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사람들은 일종의 해결책이었다."

야만인은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제국을 존속시키기 위하여 만들어 낸 가공이 적이다. 야만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식민주의 자들이 그들이 행한 본능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가난하고 힘없는 피식민주의 자들에게 덮어씌운 덤터기이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서 자신에게 닥칠 가혹한 운명과 고통을 두려워하면서도 포악한 제국주의자에게 대항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람은 왜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물질적 이익에 부합되지 않음에도 정의의 편에, 진실의 편에 서려고 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정의에 대한, 진실에 대한 개념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제목 : 진실 -최만섭 작시

"날 새기가 두려워 울어 대는 자명종에 잠이 깨어
산으로 달려가 대지가 밤새 흘린 눈물을 마셨다.
진실은 나 자신의 솔직하고 주관적인 고백이었고
거짓은 담장에 올라 타인의 삶을 염탐하면서
나의 진실을 가름하는 것이었다.

진실의 주체는 나 자신이며 정의의 주체는 세상이므로
나는 존재하며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도인(道人)이 바라본 미명(未明)의 세상에는  정의는
존재지 않는다."

3.나는 법 구경을 읽으면서 희망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 낯이 두꺼운 사람, 중상모략이나 일삼고 남을 헐뜯는 사람, 뻔뻔하고 비열한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삶은 너무나 쉽고 간편하다. 부끄러워할 줄 알고 그 영혼의 순결을 지켜 가려는 사람, 매사에 신중한 사람, 언제 어디서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려는 사람, 이들에게 삶은 너무나 힘든 고행의 길이다.`

희망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 바라보는 밝은 세상이며 절망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비열한 사람이 바라보는 어두운 세상이다.

인간은 오염된 사상과 제도 그리고 편견에서 탈출함으로써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2005월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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