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크랩] 휴머니즘 그리고 휴머니스트

최만섭 2015. 9. 28. 16:35

                                                  

                                                               

    


 

 

                        제목- 휴머니즘 그리고 휴머니스트

 

1. 마음

신이 세상의 삼라만상, 산과 들 그리고 동네 공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초상화를 검정으로 그릴 것을 명령하였다. 초가지붕 위에 걸터앉은 굴뚝을 빠져나온 연기가 부채모양으로 흩어져 하늘로 날라 갈 때, 여기저기서 아이들을 찾는 어머니들의 안타까운 합창이 붉은 저녁놀 위에 가파른 악보를 그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는 여름 해가 떠서 그 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친구들과 떼를 지어서 사방치기, 말 타기, 술래잡기 놀이 등을 하면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 당시 우리 부모들의 유일한 걱정은 배 꺼지지 않게 너무 뛰지 말라는 것이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는 것은 보리를 삶아서 광주리에 건져 놓았다가 감자를 넣고 다시 끓여 뜸을 들인 감자 섞인 깡 보리밥이었다.

배고픔과 추위에 잠 못 이루던 겨울 날밤에 죽음이 나의 초라한 흙 벽돌 집에 침입하여 공포의 왕국을 건설하였다. 나는 공포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톨스토이의 부활, 헤르만 헷세의 싣달타 그리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수십 년간 복용해야만 했다.

지난 세월 내가 그토록 두려워한 것이 배고픔과 죽음이었을까?  아니면 배고픔과 죽음을 덮고 있는 검은 그림자, 허상이 었을까? 나는 왜 수십 년간 사실이 아닌 허상에 매여 번민의 날들을 헤매야 했을까? 아마도  마음이 온전치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주자학에서 말하는 심성론(心性論)과 이기론(理氣論)을 통해서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심성의 사전적 의미는 1. 본디부터 타고난 마음씨. 2. 지능적 소질·습관·신념 따위의 정신적 특성. 3. 참된 본성, 곧 ‘진심’을 불가에서 이르는 말이다.

심성론자들은 심성은 선과 악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행위의 구체적 실천을 통하여 결단을 촉구하는 자유의지로 결정되어 지는 것이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란 진실한 행위로 인해 생성된 자유의지라는 것이다.

심성(心性)은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로 구분된다. 본연지성이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천리로서, 도덕적 본성을, 기질지성은 인간 형성에 관여하는 기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육체와 감각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인간 본능을 의미한다.

심성론(心性論)을 기본으로 하는 이기론(理氣論)은 사단칠정[四端七情]으로 발전 되었다. 이를 뜻하는 사단은 사람의 본성인 인(仁)·의(義)·예(禮)·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수오·사양·시비의 네 가지 마음씨를 말한다.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가) 측은지심(惻隱之心) : 인(仁)에서 우러나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 즉 곤경에 처한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나) 수오지심(羞惡之心) : 의(義)에서 우러나는 부끄러워하는 마음, 즉 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다). 사양지심(辭讓之心) : 예(禮)에서 우러나는 사양하는 마음, 즉 남을 공경하고 사양하는 마음 (라). 시비지심(是非之心) : 지(智)에서 우러나는 시비를 따지려는 마음, 즉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능력.

기(氣)를 뜻하는 칠정은 기쁨·노여움·슬픔·두려움·사랑·미움·욕망의 일곱 가지 인간의 자연적 감정을 가리킨다.

서양인들이 자랑하는 지성과 양심의 문명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유라고 생각 한다. 그들이 말하는 마음인 사유는 이(理)라고 사료되는데, 이는 모든 사고의 근본을 뇌에서 시작하는 서양인들의 사고에서 연유한 것이다.

나는 오장육부(五臟六腑)에서 완전히 소화된 양질의 칠정이 뇌로 보내져 증류수같이 맑은 기로 보존되어 있는 상태를 동양인들이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오늘날과 같이 놀랍게 발달한 세상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1960년대의 경기도 연천군에는 문명의 이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들기름을 채운 사기 주발에 목화 솜으로 심지를 만들어 불을 붙이는 것이 유일하게 어둠을 밝히는 수단이었다. 나는 밀가루 반죽에 굵은 콩을 넣어 만든 개떡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이라고 믿었었다. 우리 동네에는 단 한 대의 라디오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유선 방송 업자가 틀어 주는 라디오 방송만을 스피커를 통해서 들어야 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에 나에게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지금도 그때 읽었던 라이나 마리아 리케의 시를 낭송할 때 행복하며, 나의 꿈은 아직도 해탈과 열반이다.

해탈은 인간의 근본적 아집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인도사상과 불교에서는 이것을 종교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생각하였다. 즉 범부는 탐욕·분노·어리석음 등의 번뇌 또는 과거의 업(業)에 속박되어 있으며, 이로부터의 해방이 곧 구원이라고 한다.

열반은 첫째 일체의 번뇌에서 해탈한 불생불멸의 높은 경지를 의미하며 둘째 죽음, 특히 해탈한 인간의 죽음을 뜻한다. 기도와 참선으로 기(氣)가 강해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낯선 손님은 죽음이 아니라 열반이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에게 열반은 잠자리에 드는 것과 같은 일상의 한 단면일 뿐이다. 물론 나는 해탈과 열반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은 아니다. 단지 불안에서 탈출하여 평정 심을 찾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사회학자 리영희 선생의 생활신조인 `HIGH THINKING, SIMPLE LIFE`가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은 높게`는 이(理)와 정신과 신의 세계를, ` 생활은 간편하게`는 기(氣)와 육체와 인간 세상을 뜻한다. 똑같이 부처님 앞에 앉아 있어도 세상에 미련이 많은 소인은 무당이 되고 세상을 포기할 줄 아는 대인은 보살이 되는 것이다.

종교는 꽃의 향기를 미신은 꽃의 아름다운 자태를 갈구한다.

한 인간에 있어서 인생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이 오십 넘어서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가 있다면 나는 그 의미를 부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역사는 자유와 슬픔 그리고 기쁨이라는 세 단어 속에 함축되어 있다.

2. 인생(人生)

가) 보헤미안(자유)

보헤미안의 의미는 첫째 자유를 추구하는 지성인 둘째 방랑의 운명을 타고난 고독한 집시다. 자유란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고독에 대한 향수다. 나는 이 가을에 불청객같이 찾아온 보헤미안에게 기꺼이 따스한 의자를 내주려 한다.

나)알리사(슬픔)

좁은 문의 알리사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다. 좁은 문은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이드의 장편소설이다. 유년기에 시작된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은 청년기까지 지속한다. 그러나 알리사가 갈망(渴望)하는 사랑은 성(聖)스러운 가치를 통하여 주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고, 제롬이 생각하는 사랑은 알리사와의 세속적인 행복이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알리사가 격은 갈등은 절대적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이다. `주여,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기에는 너무도 좁은 길입니다.`

다). 셰닌 블랑(기쁨)

셰닌 블랑(Chenin Blanc)은 배, 멜론, 살구, 빨간 사과, 복숭아 등의 향이 나며 약간 달게 느껴질 때도 있는 풍부한 맛의 백포도주이다.

나는 바람이 멈춘 미루나무 아래서 감미로운 종달새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바비큐 그릴에선 푸짐하게 살이 붙은 양 갈비가 익어가고 알루미늄 쟁반에선 검붉은 토마토소스가 수북이 싸인 강낭콩에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셰닌 블랑을 유리잔에 가득 부어 마신 후 그 산뜻함과 시원함이 온몸에 퍼질 때까지 기다렸다.

햇빛이 백포도주 잔에 부딪혀 다섯 개의 별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질 때, 기쁨이 번개같이 나의 몸을 관통했다. 환희란 시간에 반비례하는 기(氣)의 속도(速度)일 뿐인가?

3.휴머니즘 그리고 휴머니스트

나는 휴머니즘이외의 인간이 만든 모든 주의(SM)를 거부한다. 휴머니즘은 휴머니스트의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휴머니스트는 첫째 마음이 올바르고 둘째 정의롭게 산 타인의 삶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셋째 자신이 써 내려간 사랑의 역사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다.

나는 보헤미안과 알리사 그리고 셰닌 블랑(Chenin Blanc)으로 구성된 나의 자서전, 휴머니스트를 가슴에 안고 감회에 젖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진정한 휴머니스트로서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휴머니스트로서 바라본 세상이 가장 아름답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2007년 6월 12일



출처 : 의정부중공업고등학교총동문회
글쓴이 : 최만섭(중 20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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